추석을 잃어버린 세대
한국은 오늘 한가위 달이 둥그렇게 떠오르며 오곡백화가 무르익는 추석입니다. 모든 가족 친척들이 모여 송편을 만들고 성묘도 다녀옵니다. 부모님 뵈러 고향 가는 길이 아무리 막혀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득 찬 마음은 신나게 내달려 갑니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저희로선 오랜만에 한국으로 전화하여 안부도 전하고 교회에서 맛있는 한식으로 교제도 나누지만 도저히 추석 같은 기분을 느끼지 못합니다. 한국 명절이 미국 공휴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회사, 학교, 비즈니스에서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바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추석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Thanks Giving Day)입니다. NY에 사는 첫째 아들 부부가 일주일 휴가를 내어 이곳 LA로 올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는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크리스찬이라도 어쩐지 이날도 추석 같지 않습니다. 부모, 형제, 친척, 송편, 성묘, 윷놀이 같은 것이 빠졌을 뿐 아니라 여전히 두고 온 고향 산천의 풍경이 머리 속에 아련하게 떠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저희 같은 교포들은 추석을 두 번 쉬는지, 한 번도 안 쉬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추수감사절을 추석으로 알고 즐겁게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사니까 미국식으로 해야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희의 2세 3세들에게는 어차피 한국 추석을 실감 못할 테니까 말입니다. 이민 1세로선 후손들에게나마 제대로 된 추석을 물려줄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추석을 잃어버린 세대입니다. 즐거워야 할 명절날 오히려 더 서글퍼지는 것이 저희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입니다. 괜히 몸과 마음이 가라앉으려는 추석 아침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400년,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완전 멸망 이후 근 1900년을 추석을 잃어버렸던 국민이었습니다. 반면에 저희는 이민 온지 이제 겨우 15년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들과 도저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제가 잠시 그런 우울에 빠진 것은 사치스런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 방황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잊고 배교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나라로 모든 민족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라는 그 소명을 지킬 때에 분명 복의 근원으로 삼아 주시겠다는 언약을 지키지 않아 그렇게 오랫동안 추석을 잃어 버렸습니다.
저희들이 미국으로 이민 온 것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탓은 물론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곳 이방 땅에서 추석을 잃어버리게 만드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추석날 괜히 서글퍼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 가더라도 하나님이 함께라면 바로 그곳이 고향이고 그날이 추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귀한 이름을 부르는 신자로서 세상 사람 앞에 서 있으라는 뜻 말입니다.
추석날과는 상관 없이 다니엘처럼 항상 예루살렘을 향해 문을 열어놓고 감사하며 두고 온 조국과 지금 살고 있는 미국과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 세상 끝날 까지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 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시137:1,4,5)
9/17/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