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장례 절차부터 가르쳐라.
저희는 만 55세 이상의 노인들만 입주가 가능한 실버타운(Silver Town)에 살고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인지라 집들은 낡았어도 조경이 아주 잘 되어서 단지 전체가 공원 같으며 무엇보다 노인들의 편의 시설이 단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슈퍼마켓, 약국, 소방서, 은행 등은 물론이고 동쪽 문을 나가면 곧바로 큰 종합병원이, 서쪽 문 곁에는 1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랜차이즈 장의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체 TV 방송국이 있을 정도로 대단지인지라 케이블 방송은 물론 광고 전단지가 노인 취향에 맞춰져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웃픈 광고지가 하나 배달되었습니다. 예의 O'Connor라는 장의사가 입주민들에게 장례 준비를 잘하도록 가르쳐주는 무료 세미나를 인근의 유명한 식당 프랜차이즈에서 여는데 점심 식사도 공짜로 제공한다고 합니다. 아예 식사(천국행?) 티켓 두 장을 봉투에 넣어주었습니다. 곧 닥칠 죽음을 준비하면서 맛있는 식사를 함께 나눠야 하는데 과연 어떤 맛으로 느껴질지 당장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어쨌든 저희가 현재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해졌습니다.
전단지 내용에는 우선 벤자민 프랭클린의 “준비에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라는 격언부터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유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서 장례를 잘 치르려면 미리부터 백 가지가 넘는 사항을 따져서 결정해야 한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장례 비용을 절감하고, 유언을 정확히 작성하고, 이사나 여행할 때 죽어도 준비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는 세 가지 이유로 미리 준비해야 하고 공짜 식사의 참석인원이 한정되었다고 그럴싸하게 꼬드깁니다.
안 그래도 저희 부부는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단지 생존 기간만 연장한다면 산소 호흡기 같은 장치를 달지 말라고 사전에 승낙하는 서류를 캘리포니아주 정부에 곧 제출할 작정이었습니다. 프랭클린의 격언처럼 “죽을 준비를 잘하는 것이 잘 살아가는 준비다”라고 합니다.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왔기에 저희는 영적으로는 잘 죽고 잘 살아갈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 식당의 유명한 시카고식 피자가 유혹하고 자식에게 육체적 죽음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참석할지 말지 조금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례 준비를 저희 같은 노년층만 행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코비나-19보다 더 심각한 펜데믹이 언제 다시 전 지구를 덮칠지 모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나날이 고조되는 남북한 간과 중국과 대만 간의 갈등이 핵전쟁 발발의 위험성을 크게 늘렸습니다. 무엇보다 지구온난화의 재앙이 급속히 대규모로 모든 이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부쩍 늘어난 마약중독자와 정신질환자들의 무작정 무차별 살인까지 염려해야 할 판입니다. 마침 이번 주는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으로 아무 죄 없는 어린이와 여인이 졸지에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세상을 하직하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이 그야말로 실감이 납니다. 이 세대는 모두가 장례 세미나에 참석해야, 아니 학교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LGBTQ 교육보다 더 우선해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0/11/2023)
미리 장례 준비를 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벤자민 프랭클린의 격언을 인용한 전단지.
점심 식사 티켓 두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