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노래를

조회 수 140 추천 수 0 2016.09.07 19:51:26

사흘 후면 수술 후 십 개월째를 맞습니다. 그동안 목소리는 많이 회복되어 일상대화에선 그리 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고 인조혈관을 덧대어 붙인 혈관도 제대로 잘 붙어 있으며 기력도 다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몇 가지 수술 후유증으로 맘고생 몸고생은 계속 하고 있으니, 이따금 기침이 터져 나오는 것과 주변이 조금 시끄러운 곳에선 제 목소리가 약해 제 자신에게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성량과 호흡이 부족해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약 육개월 만에 합창단 연습에 참여했었는데, 매 소절 첫 한 두 음정 이외엔 소리가 나질 않더군요. 합창단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함에 울컥 슬픈 감정이 솟아났으나, 꿀꺽 삼켰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거늘. . .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건 소리가 아니라 마음일 터이고, 소리로 찬양 못해도 맘으로 찬양할 수는 있으니 립싱크라도 하겠노라 지휘자께 말씀드렸고, 고맙게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립싱크를 하는 중에 목소리가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기쁨을 지레 맛보면서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번 11월의 정기공연을 끝으로 합창단은 그만 두어야겠지요. 

 

"야, 너가 워낙 어려서부터 노래하길 좋아하니까 하나님께서 듣기 싫어도 그냥 내버려두셨는데, 환갑이 훨 지난 나이에도 그만 두지 않고 계속 노래하겠다니까, 이젠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하시곤 네 목소리를 거두신 거야, 하나님 이제 그만 괴롭혀, 안 그러면 네 목소리 영영 안 돌아 올지 몰라." 믿지도 않는 친구 하나가 농으로 던진 얘기였는데, 듣고 보니 그럴듯해서, 맞다 맞아, 내가 참 눈치가 없었구나, 맞장구치며 박장대소했던 적이 있습니다. 

 

늦어도 삼개월이면 목소리가 회복되리라고 장담했던,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내 왼쪽 성대로 인해 곤혹감과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당신은 당신의 최선을 다했으니 이건 당신 탓이 아니오라고 오히려 그를 다독이며, 굳이 합창단에서 노래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적어도 노래를 흥얼거릴 순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어디야 하며 담담하게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목소리를 잃기 전에도 그리 썩 뛰어난 음색과 성량은 아니어서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부러워하던 형편이었던지라, 그리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하고 더구나 억울해 할 일은 전혀 아닌 것이지요. 오히려, 예전엔 제게 더 고운 소리와 재능을 주시지 않았음에 대해 일말의 아쉬움내지 서운함이 있었었는데, 이젠 그 정도나마 제게 주셨음이 커다란 고마움으로 기쁨으로 뒤늦게 다가옵니다.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졌던 것의 가치와 고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의 한 척도일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뒤늦게나마 그 고마움을 깨닫는 것 또한 감사해야 마땅할 은혜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정기공연에선 Amazing Grace로 시작하여 은혜아니면 이란 곡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의 삶이 시종일관 하나님의  은혜로 지탱됨을 고백하는 것이지요.  그 고백을 토해내고자 목소리가 나오든 나오지 않든 그 자리에 설 작정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 해 그리 할 것입니다. 

 

2016. 09. 07


사라의 웃음

2016.09.12 15:17:52
*.198.67.71

어려운 시간들을 이처럼 견디고 계시는군요.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모두 회복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목소리가 나오든 나오지 않든 진정의 찬양을 드리도록 맘을 입혀주시는 울 하나님의 사랑이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김유상

2016.09.13 00:18:56
*.160.150.47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죠? 오늘도 뻔뻔스레 합창단의 연습에 참여했습니다. 발성이 제대로 되질 않으니 합창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데도 그래서 사실 진작에 합창단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도, 틀린 소리를 내는 것보단 차라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낫다는 똥배짱으로, 그리고 전후좌우 몇 사람과 지휘자를 제외하곤 나머지 단원들은 제가 제대로 목소릴 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제게조차 들리지도 않는 노래를 열심히 부르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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