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시78:60)
▣ 들어가기
● 출애굽기 25장 이후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의 식양을 자세히 알려주시면서 성막제작을 명하십니다. 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린 예물로써 아름다운 성막을 제작하여 드디어 출애굽 제2년 정월 초일일에 최초의 성막이 세워지게 됩니다(출40:1).
● 학자들에 의하면 성막은 히브리어로 ‘오헬 모헤드’로서 그 의미는 ‘만남의 천막’이라고 합니다. 영어의 ‘the Tent of Meeting’이라는 표현은 아주 적절한 번역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말로는 성막, 회막, 장막, 천막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성막이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백성들과 만나서 교제하시는 장소’라고 이해하면 가장 정확할 것입니다.
● 이같은 성막의 기능을 가능케 하기 위한 근원이 존재합니다. 바로 언약궤입니다. 언약궤란 히브리어로 ‘아론하베릿’(aron habberit)(민10:33)이라고 합니다. 증거궤라 부르기도 합니다(출25:22). 이 언약궤 안에는 율법이 기록된 증거 돌판(출40:20)과 한 병의 만나(출16:33)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히9:4)가 들어 있습니다. 이 언약궤는 반드시 성막의 최 심장부인 ‘지성소’에 보관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 번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언약궤는 가장 거룩한 장소인 성막의 지성소에 보관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언약궤와 성막이 상당 기간 동안 엉뚱한 장소에 격리 보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기간은 줄잡아도 약 100년 이상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룩한 지성소에 보관되어야 할 언약궤가 왜 100년 이상 엉뚱한 곳을 방황해야만 했는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성경을 통해, 언약궤와 성막의 별거상황을 추적해 보고, 왜 생이별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언약궤와 성막의 이동 경로
● 위에서 언급한대로, 언약궤는 항상 성막의 지성소에 보관되어야 하므로, 언약궤와 성막은 같은 경로로 이동되어야 합니다. 가나안 입성 이후의 언약궤/성막 이동경로를 살펴보면 이해가 쉽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 제1기는 가나안 입성 초기의 이동경로입니다.
○ 가나안 경내에서 언약궤와 성막이 맨 처음 머무른 곳은 길갈입니다(수4:19). 길갈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초기 작전중심지 역할을 한 곳입니다(수10:15).
○ 가나안이 완전 정복되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실로로 옮깁니다(수18:1). 이곳에 옮겨진 성막은 엘리 제사장 시절까지 대부분 실로에 머뭅니다(삼상1:3). 하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여기저기 지역을 옮겨 다닌 것으로 보입니다.
○ 여호수아의 유언 선포 당시 성막은 세겜에 있었습니다(수24:1, 26). 그러다가 다시 실로로 옮겨집니다(삿18:31). 그 후 벧엘에 옮겨졌다가(삿20:27), 또다시 실로로 돌아왔습니다(삼상1:3).
○ 제1기 동안의 이동경로는 약간 복잡합니다만, 어쨌든 언약궤와 성막은 함께 움직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제2기는 성막은 실로에 그대로 남아있고, 언약궤는 이방지역과 이스라엘 변방지역을 전전하는 기간입니다.
○ 선지자 사무엘이 장성했을 때 블레셋과의 전쟁이 발발했고, 언약궤가 성막을 떠나 생이별을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삼상4:3). 전장에 있던 언약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은 전사하고 엘리 제사장 자신도 죽게 됩니다.
○ 에벤에셀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긴 언약궤(삼상4:11)는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징계하시기 시작하자, 하나님의 징계에 혼줄 난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보관하지 않으려고 서로 핑퐁 작전을 구사합니다. 그리하여 언약궤는 아스돗(삼상5:1)⇒가드(삼상5:8)⇒에그론(삼상5:10) 지방으로 옮겨 다닙니다. 이 기간은 7개월입니다(삼상6:1).
○ 하나님의 징계를 견디다 못한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벧세메스에서 이스라엘에게 인계합니다(삼상6:9). 곧바로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으로 이동된 언약궤는 20년간 이곳에서 보관됩니다(삼상7:2; 대상13:7).
○ 제2기 동안 언약궤가 이방지역과 이스라엘 변방을 전전한 기간이 약 21년간인 것처럼 계산되지만 이는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언약궤를 시온성으로 옮기는 제3기까지 수십 년의 시차 공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언약궤는 기본적으로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되었겠지만 때때로 전쟁터로 옮겨 다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례로 사울 시절, 전쟁터인 기브아 변경의 미그론에 옮겨지기도 했습니다(삼상14:18).
● 제3기는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메어 올려서 제2성막(?)에 안치한 기간입니다.
○ 세월이 흘러 다윗이 언약궤를 아비나답의 집으로부터 다윗성으로 메어 올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궤를 제사장들이 메지 않고 수레에 싣고 행진하다 웃사가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삼하6:6). 겁먹은 다윗은 궤를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기고(삼하6:10; 대상13:13) 그곳에서 3개월을 보냅니다.
○ 얼마 후 마음을 다잡은 다윗은 이번에는 제사장들이 메게 하여 다윗성인 예루살렘으로 옮깁니다(대상15:29). 그리고는 다윗이 언약궤를 위해 세운 장막(대상15:1)에 둡니다. 다윗이 세운 장막은 모세가 광야에서 제작한 성막이 아닙니다. 별개의 장막입니다. 마치 제2성막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다시 다루게 될 것입니다.
○ 이후 언약궤는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성전의 지성소로 옮길 때까지 여기(제2장막)에 거하게 됩니다(대하5:2).
● 살펴본 바와 같이, 분명 언약궤가 모세가 만든 원래의 성막에 보관되지 않고 다른 곳에 안치되었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제2기와 제3기가 바로 그 기간입니다. 다시 말해, 언약궤와 모세 성막의 생이별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정확히 검증할 수는 없으나, 대략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계산할 수 있습니다.
○ 엘리 제사장이 늙었을 때 언약궤와 성막이 이별하게 되었는데, 이때는 사울 왕이 세워지기 전이고 사무엘의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노년기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엘리 시대로부터 사울 왕 원년까지는 수십년의 간격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연수 계산은 곤란합니다(학자들이 연구한 연대기로써도 정확히 계산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 사울 왕은 40년간 통치했고 또 다윗 왕도 40년간 통치했습니다. 두 왕의 통치기간은 총 80년입니다.
○ 솔로몬은 제4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왕상6:1) 7년 만에 완공하였습니다. 성전 완공 후 곧바로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는 언약궤가 비로소 지성소에 거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생이별을 청산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 그렇다면 언약궤와 모세 성막의 생이별 총 기간은 이렇게 계산됩니다. α(엘리로부터 사울 왕 원년까지)+40년(사울)+40년(다윗)+11년(솔로몬) = 〔91 + α년〕이 됩니다. 아마도 100년을 넘는 기간일 것입니다.
▣ 성막의 또 다른 이동 경로?
● 역대하 1장을 보면 솔로몬이 유명한 일천번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건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번제를 드린 장소는 기브온 산당입니다. 그곳에 모세 성막과 놋단(번제단)이 있었기 때문에 솔로몬이 그곳에서 번제를 드렸다는 설명입니다(대하1:3-5).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언약궤 앞에서 별도의 번제와 수은제를 다시 드립니다(왕상3:15).
● 기브온은 예루살렘 서북방향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언약궤가 안치된 시온성(다윗성=예루살렘)과는 다른 곳입니다.
● 사실 성경에는 언약궤의 이동경로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성막의 이동경로는 언약궤보다 간략합니다.
○ 실로의 성막을 언급한 이후(삼상4:3), 아무런 언급도 없다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갑자기 놉이라는 곳에 성막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삼상21:1-9). 놉은 베냐민 지파에 소속된 작은 성읍으로서 실로의 성소가 파괴된 후 성막이 있던 곳입니다. 예루살렘 북동쪽, 기브아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엘리 제사장 후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 더 이상의 언급이 없다가 드디어 기브온(대상21:29; 대하1:3)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성막이 언제 어떤 경로로 이동해 왔는지 상세한 내막은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 일부 학자들은 장막과 회막을 엄격히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장막은 언약궤가 머물렀던 아비나답의 집과 오벧에돔의 집 등을 가리키는 것이고, 회막은 길갈/실로/놉/기브온 등지에 있었던 이동 성소(모세 장막)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 언약궤의 이동경로는 이렇습니다. ; 「길갈→실로(↔세겜/벧엘)→블레셋 성읍들→아비나답의 집→오벧에돔의 집→예루살렘→솔로몬 성전」
○ 반면, 성막의 이동경로는 이렇습니다. ;「길갈→실로→놉→기브온→솔로몬 성전」
○ 그렇다면 언약궤와 성막이 헤어져 있을 동안, 언약궤를 보관했던 시설이 필요합니다. 아비나답과 오벧에돔의 집에서는 아마도 임시설비였을 것입니다. 그러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에는 정식 설비를 구비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2의 성막일 것입니다. 이것을 학자들이 ‘장막’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학자들의 설명이 타당할 것입니다.
● 어쨌든 성막의 지성소에 위치해야 할 언약궤가 엉뚱한 장소에 방치되었던 기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한 언약궤 - 얼핏 느껴지는 생각은 없으신지요?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 언약궤와 성막의 생이별은 성도의 온전한 헌신의 필요성을 상징한다.
● 성막의 존재 목적과 가치는 언약궤를 보관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면 버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렘7:1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로는 최초의 성막 정착지입니다(수18:1). 벧엘과 세겜 사이의 성읍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와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실로를 포기하고 단념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최초의 성막 정착지라는 거룩한 지위를 제해 버리셨다는 뜻입니다.
●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렘26:6에서 설명하십니다. “내가 이 집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주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 여기서 “실로같이”라는 말씀은 ‘성막을 버리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집’은 성전을 말하고, ‘이 성’은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성전도 실로의 성막처럼 폐허가 된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 시78:60에서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라며 이를 증명해 주십니다.
○ 실로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떠나셨고, 정말로 폐허의 성읍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악이 넘치면 하나님께서는 직접 허락하신 은총도 거두실 수 있습니다.
● 지금으로부터 거의 3천 여 년 전의 옛일이 오늘날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관한 것 같다고요? 아닙니다! 아주 밀접하게 관계됩니다.
○ 이 문제는 너무 쉽게 정리되기 때문에 일일이 근거구절을 인용하지 않고 그냥 함축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신약에서 말씀은 주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언약궤=말씀=주님」의 등식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 성막과 성전은 언약궤 보관 기능이 가장 중요합니다. 신약에 와서 언약궤(말씀) 보관 장소는 성도들의 마음(영혼)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를 ‘질그릇’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가 각각 주님(언약궤)을 직접 모신 질그릇(성막/성전)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성도는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는 것입니다.
○ 여기서 중점을 두어야 할 사실은, 언약궤냐 성막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성막이 중요할까요? 언약궤가 중요할까요? 성막이 아무리 거룩하고 귀중해도 언약궤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언약궤가 유일한 가치입니다! 오늘날의 가르침으로 환언합니다. 성도들에게 주님이 없으면 성도는 아무 가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일 뿐입니다!
▣ 나가기
● 하나님께서는 왜 100여 년 이상이나 언약궤와 성막의 생이별 상황이 지속되도록 방치(?) 하셨을까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일까요? 또 최초의 성막정착지였던 실로가 황폐화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득히 먼 옛날의 일이기에 오늘날의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허투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말씀은 의미를 지닙니다. 단지 그 의미를 완전하게 깨우치지 못할 뿐입니다.
● 오늘 본문의 교훈은 위에서 대충 정리한 그대로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영 속에 담고 있는 성도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배입니다. 그릇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보배가 없어진다면 그릇의 가치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 질그릇이 크냐(목사냐 집사냐), 보기 좋으냐(인정을 받느냐 못 받느냐), 외양이 매끄러우냐(설교를 하냐 안내만 할 수 있을 뿐이냐) 하는 것은 하등 우열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무슨 직분을 맡았든, 무슨 은사를 받았든, 오직 주님이 증거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성도의 가치는 결정될 뿐입니다.
○ 오늘 본문은 만약 주님이 증거 되지 않으면 주님께서 떠나실 수도 있다는 엄청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이 없으면 아무리 휘황찬란한 그릇을 들고 자랑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 오직 예수! 이것만이 우리가 붙들 유일한 진리입니다.
● 우리는 항상 성막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서 거룩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언약궤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언약궤 없는 성막 - 존재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 - 이 고백 외에 성도에게 필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교훈을 감추고 계시는 것입니다. 샬롬!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