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블랜차드’가 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읽지 않았고 다만 워낙 널리 알려졌기에 책 이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읽지 않았으니 당연히 책의 내용은 모릅니다. 그렇다고 지금 구입하여 읽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추측컨대 그 책의 요지가 ‘칭찬의 순기능에 관한 긍정적 고찰에 관한 것이 아니겠는가?’고 짐작할 뿐입니다.
읽고 배워둘만한 좋은 교훈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어떤 논리로 어떻게 설득하든, ‘칭찬만으로 고래를 춤추게 하지 못한다.’는 진실을 뒤엎을 수는 없습니다! 위의 도서명은 50%의 설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만 맞는다는 뜻입니다.
고래를 춤추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칭찬이 필수불가결합니다. 잘 했을 때(조련사의 의도를 정확히 따랐을 때) 분명하게 칭찬해 줘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조련사의 의도를 제대로 따르지 못했을 경우, 절대로 칭찬해서는 안 됩니다. 고래가 위협을 느낄 정도의 꾸지람은 피해야겠지만(겁먹으면 훈련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므로), 칭찬도 절대 금물입니다. 고래 훈련의 철칙은 “잘 하면 칭찬하지만 못하면 절대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칭찬’이 권장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칭찬만으로는 결코 고래를 춤추게 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칭찬만으로는 10년이 흘러도 불가능합니다. 고래의 춤은 칭찬과 질책(꾸중)이 적절히 배합될 때 실현되는 ‘조화의 미학’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칭찬은 모르핀(마약)과 같다’고 설명하십니다. 동의합니다. 모르핀의 특징(무서움)은 중독성과 효과체감성입니다. 단지 중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점차 그 양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칭찬도 동일한 특징을 지닙니다. 같은 수준의 칭찬으로는 곧 식상하게 됩니다. 점점 강한 칭찬이 필요합니다. 좀더 깊은 좀더 많은 칭찬이 필요해집니다. 칭찬에 길들여진 인격은, 무제한적인 칭찬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한계는 있기 마련입니다. 칭찬거리가 바닥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명백한 잘못임에도 칭찬을 기대하는 지경에 도달됩니다. 오직 칭찬만을 기대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내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몇 대 독자(獨子)를 키워본 분이라면 금방 이해되실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착각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는,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되고 항상 용서와 관용으로 처신해야 한다.’는 율법적 행동규범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이, ‘비판금지가 교회를 교회답게’ 만든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목사님들로부터 자주 듣는 권면이기에 ‘비판금지’라는 지당하신(?) 주장에는, 묘한 오류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하고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참 교회는 때로 ‘비판’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교회생활에서의 비판은 고래를 훈련시킬 때의 ‘보이지 않는 질책’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칭찬만으로는 고래를 춤추게 하지 못하듯이, 비판금지만으로는 교회를 참 교회로 만들지 못합니다.
교회 내에서 비판의 바른 위상이 회복되는 때는 언제일는지 무척 궁금하다 하겠습니다. ♣
흠~~흠~~
순태 형님!!
고래도 춤을 추나요 ?
처음 알았습니다.
형님 은혜로
제가 세상물정에 눈을 뜨고있습니다. ㅋㅋㅋ
오늘 좋은 꿈 꾸세요 !!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