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12: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 들어가기
▲ 지난번 2회에 걸쳐 같은 제목으로 묵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모세의 부름받은 초기와 임종시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했었습니다.
▲ 사실 모세는 아무리 살펴봐도 위대한 인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고 이스라엘 민족이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 오늘은 모세의 또다른 측면에서의 위대함을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 민12/16장에는 목사의 권위를 보증하는 명백한 근거 구절이 있다?
▲ 간혹 「평신도는 목사를 존경하고 목사에게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아니 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는 주장을 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부인하지 못할 근거구절로 제시되는 곳이 바로 민수기 12장과 민수기 16장입니다.
▲ 이 두 곳에서 모세 등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분명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렸고, 고라 일당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신 목사에게 반항하지 말고 무조건 복종하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하더라도, 반론을 제기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명백한 근거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 목사님 말씀은 뭔가 이상해!”라며 물어보려던 성도들도 그만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 하지만 이런 해석이 성경의 본 뜻에 부합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깊이 다루어야 할 부분이지만 오늘 묵상 주제가 아니기에, 민12/16장은 목사권위 보증의 근거 가 될 수 없다는 점만 지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구약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사항 중의 하나는, 구약의 모든 예표는 주님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표를 인간에게 적용하면 철저하게 실패합니다.
○ 먼저, 구약에서의 모세의 참 위상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인간이었으나 주님의 예표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이었습니다(출4:16; 7:1 등). 이 모세의 신분은 하나님께서 직접 수여하신 것입니다(출3장). 아론과 그 아들들이 모세의 중재로 제사장의 직분을 위임받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광야교회의 주인 역시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만, 모세를 머리(중보자 내지 대리자)로 지명하셨습니다(신5:5). 그래서 모세는 주님의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신18:15).
○ 다음으로,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과 아론, 모세에게 항거한 고라 일당이 누구인가도 살펴야 합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와 함께 광야교회를 이끌어야 할 최고지도자 그룹의 핵심 멤버였습니다. 고라도 제사장이었고 그에게 동조한 일당들도 모두 유명한 족장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 대비한다면, 미리암/아론/고라는 전임사역자(목사), 그 외 족장들은 장로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 이 정도만 이해해도, 민12/16장의 의미를 오해하지 않습니다. 즉, 12장은 교회 최고핵심층 내부의 권력 싸움이었고, 16장은 교회 중견지도층의 항명 사건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지도자들 간의 권력다툼 내지 시기 비방 사건이었으되, 그 지향점은 모세였습니다.
○ 무슨 뜻이냐 하면, 민12/16장의 사건은 모세(주님의 예표자)의 절대주권에 대한 항거였던 것입니다! 민12:6-8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직접 해설이 이를 증거합니다. 특히 8절 하반부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는 말씀은 변명조차 허용치 않으시는 분명한 뜻입니다. 또 모세도 이 사건을 “하나님을 거스린 사건”(민16:11) 내지 “하나님을 멸시한 사건”(민16:30)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민12/16장의 교훈은 모세라는 개인에 대한 항거가 아니라 모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반항이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해석입니다.
○ 이제 좀 명확해졌습니다. 민12/16장의 교훈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하려면 평신도(=미리암 이하라는 인식)의 목사(=모세라는 인식) 순종을 강조하는 구절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목회자(=미리암 이하라는 인식)의 성령(=모세라는 인식) 순종을 강조하는 구절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는 목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의 성령순종을 강조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를 차지했다.”(마23:2)고 확인해 주셨는데, 이는 바리새인들의 불법점유를 지적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목사)이 모세의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모세의 자리’는 오직 ‘주님의 자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교훈은 생각지도 못하고 평신도 억압의 절대근거인양 착각한다면 이는 참으로 비참한 현상입니다.
○ 게다가, 신약교회의 목사 직분은 구약교회의 제사장의 후임직분이 될 수도 없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민12/16장을 평신도의 목사복종의 근거로 제시한다는 것은 바른 해석이 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민12/16장을 근거로 평신도의 무소신적 굴종을 요구할 때는 잘 새겨들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은 모세의 위대성에 대한 또 다른 영적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온유’라는 단어의 뜻
▲ 성경에는 온유라는 단어가 여러번 나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문자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 먼저, 한글사전입니다. 사전은 온유를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gentleness'라고 부연하고 있지만, 좀 모호합니다.
○ 온유는 ‘겸손’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겸손의 정의도 알아야 합니다. 겸손은 “남을 높이고 제 몸을 낮춤”(modesty)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 문자적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불가불 히브리어 및 헬라어를 살피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먼저 히브리어입니다.
○ 히브리어로 온유는 ‘아나우’라고 하는데 ‘겸손’이라는 뜻입니다.
○ 그런데 이 단어(아나우)는 ‘괴롭히다/압박하다/겸손히 행하다/굴복하다/낮아지다/비천해지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나’(ana)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합니다.
○ 아울러 ‘아나’로부터 겸비(아나와), 가난한(아니), 고뇌/가난(오니)라는 말이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 정리하면, 〔온유=겸손=괴로움/가난/고뇌와 연관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 다음은 헬라어입니다.
○ 헬라어로는 형용사 프라우스(praus)와 명사 프라우테스(prautes)가 있는데 모두 ‘온화’의 뜻입니다.
○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온유’를 프라우스로 12회 번역했다고 하는데, 원래의 히브리어가 ‘종 혹은 낮은 자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용어로서 ‘비천한 어감’을 지니고 있어, 하나님께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모세오경에서 프라우스는 오직 모세(오늘 본문인 민12:3)에게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약에 와서 ‘비천한’ 어감을 지닌 프라우스를 주님께 직접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a)에서 온유가 곧 프라우스입니다. 학자들은 그 의미를 ‘억지로 시키고 거칠게 다루거나 복수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부드럽고 사려깊은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 명사 프라우테스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에 포함됩니다(갈5:23). 간혹 ‘카타르티조’(원 뜻은 준비/예비하다)를 사용하여 ‘부서진 뼈를 맞추거나 찢어진 그물을 깁는 것’으로서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의미로 의역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 아무튼, 헬라어도 히브리어를 번역하면서 ‘비천한’이라는 어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영어입니다. 영어로는 gentle 혹은 humble로 번역되는데, 겸손과 함께 사용될 때는 거의 gentle로, 단독으로 사용될 때는 humble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 지금까지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한글의 ‘온유’에 대한 설명을 대충 살펴보았습니다. 딱딱했지만 ‘온유란 비천하다는 의미가 가미된 용어로구나.’는 이해에 도달했다면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의 humble이 가장 정확한 번역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 모세의 온유의 핵심
▲ 오늘 본문의 현대적 번역은 “세상 사람들 중에서 모세가 가장 온유한 자이다.”입니다. 도대체 뭐가 그의 온유의 근거였을까요? 지루하게 살펴본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뜻이 비추어 생각해야 합니다. ‘비천하다’는 의미를 잊으면 안 됩니다.
▲ 모세를 살피기 전에, 먼저 우리들의 ‘온유’에 대한 선입견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사전의 의미가 조금 모호하다했는데, 이런 뜻입니다.
○ 우리는 ‘온유’하면 ‘우선 뭔가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자신의 교양과 인격으로 자제하여 나보다 못한 자에게 일종의 양보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왕자가 거지로 변장하여 백성의 삶을 살핀다면 이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온유’일 것입니다.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어감에서 유추되는 생각입니다.
○ 그러나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다릅니다. 분명 ‘비천하다’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거지가 그냥 거지인 것을 나타냅니다. 거지에게는 그 어떤 가치도 없습니다. 무가치가 거지의 가치입니다(인권 측면이 아닌 사회적 대우 측면의 표현일 뿐입니다). 온유라는 말은 곧 ‘무가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온유와 겸손을 ‘거지같은 마음’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 따라서 〔온유=겸손=무가치=거지다운 심정〕으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 본문에는 모세의 온유를 증거할 만한 직접적 단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2절부터 4절까지의 행간(行間)에 뭔가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 미리암과 아론의 반항에 직면한 모세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쓰다 달다 말이 없습니다. 야단도 치지 않고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침묵만 합니다.
○ 2절의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는 말씀과 4절의 “여호와께서 갑자기”라는 말씀 사이에 오늘 본문이 끼여 있습니다. 모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화를 내십니다.
○ 그럼 모세는 뭐하고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 전후의 행간에 숨겨진 진리입니다. 모세는 오직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를 “무릎 꿇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무릎 꿇음은 자신의 비천함을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신분(비천한 종)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암과 아론의 도전에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내가 잘못했나보다’라며 기도했을 뿐입니다. 이 너무나 답답한 모습에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처결하십니다.
▲ 모세의 이러한 자세가 극명하게 재연된 곳이 바로 민수기 16장입니다.
○ 이번에는 고라를 비롯한 지도자들(유명한 족장들)이 무리지어 모세와 아론에게 항거합니다. 내용은 12장과 유사합니다. 자기들에게도 영적권위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들의 주장은 일부 정당합니다. 그들은 분명 위임받은 지도자들입니다. 그래서 지위에 걸맞는 권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 아무튼, 집단항명에 접한 모세의 행동입니다.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민16:4)라는 말씀은 무릎꿇고 얼굴 땅에 대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요?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아침까지 말입니다(5절). 5절 하반절에 기록된 모세의 말도 그가 임의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말씀이요 해결책이었던 것입니다.
○ 여하튼, 모세는 여기서도 자신의 잘남과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먼저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진정한 뜻과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 모세의 엎드리는 버릇은 가히 체질화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크든 작든 문제가 생겼다 하면 무조건 엎드리고 봅니다(민14:5; 16:45; 20:6 등).
▣ 나가기
▲ 그렇습니다. 모세는 온유한 자입니다. 그런데 그 온유의 의미가 뭐였습니까? ‘자신의 비천함의 인식’이었습니다. 모세의 온유의 핵심은 단 한 마디로, “나는 비천한 존재이다.”라는 정체성을 정확하게 깨닫고 있었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게 바로 모세의 위대성입니다!
▲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비천하다.’는 의미의 ‘온유’라는 개념을 우리 주님께 적용하기도 한다는 진실입니다.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어찌 온유라는 단어로 수식받으실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렇다고 하십니다(마11:29). 주님께서 온유하시답니다. 주님께서 비천한 신분이라고 하십니다.
▲ 우리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결코 온유하실 수 없으신 주님께서 당신 스스로 온유한 자라 하셨으니, 그분의 소유인 우리가 온유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입니다. 우리 성도는 온유한 자 - 가장 비천한 자입니다. 바로 거지인 것입니다. 그것도 거지 중의 거지인 ‘상거지’입니다.
▲ 주님을 믿는다 고백하면서 이 온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고백은 진정성을 따져 봐야 합니다. 잘 났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허영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항상 온유한 자임을 자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오직 온유한 자만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온유는 성도의 참 모습입니다. 모세를 통해 배워야 할 진리입니다. 샬롬!!! ♥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쫓아내되 너희가거저 받았으니거저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골통의 모습 !!
하나님께서 주실때 살만할때~~~~ 싱글벙글 !!! 네네 굽신굽신 !!!
하나님께서 취하실때 거품물때 ~~~Oh ! my God ! 흑흑흑 !!!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골통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아 ~~~저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 흑흑흑 !!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골통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수그리 !!!!!!!!!!!!!!!!!!!!!!
Oh ! my G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