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정제되지 못한 간증의 위험

조회 수 1544 추천 수 115 2007.04.14 13:10:30
지역교회의 연중행사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아마 초청간증집회일 것입니다. 또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상당수의 사이트에서 다양한 간증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꼭 간증의 형식을 취하지는 않더라도, 설교나 강연을 통해 신앙의 성공 내지 승리 경험들이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신앙경험 내지 간증 내용이 어떤 것이든지, 이를 전달하는 형식이 무엇이든지, 명목상 최종 목적은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무랄 데 없고 권장할 만한 가치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당한 일’의 역기능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간증에는 의도하지 않은(또는 짐작하지 못한) 부정적 요소가 스며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하지만, 오히려 영광가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역기능의 가장 현저한 모습은 간증자 자신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목회사역이든, 신유체험이든, 은사구현이든, 아무리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이라 할지라도, 만약 간증자가 조금이라도 부각된다면 이 간증은 하지 않음만 못한 것이 됩니다.

이를 역으로 증명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청취자가 ‘간증자에 비해 나는 형편없는 성도’라는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면, 이는 간증자가 드러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잘못되거나 유해한 간증일 가능성이 큽니다.

도널드 맥컬로우 목사님은 ‘삶의 한계의 은혜’를 역발상적인 시각으로 잘 설명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영적 승리와 이적과 기사와 황홀경을 간증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의자 밑으로 기어들고 싶어진다.”고 설파했습니다(모자람의 위안 p.110).

참 재미있는 통찰입니다. ‘영적 승리와 이적과 기사와 황홀경’은 전형적인 간증의 소재입니다. 자랑할 만한 것이지요. 그런데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의자 밑으로 기어들고 싶어진다.’고 했습니다. 간증자에 비해 형편없음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맥컬로우 목사님의 통찰이 예리함은 바로 이점에서 나타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의 죄성(무가치성)을 인지하고 있는 자입니다. 천국은 바로 이런 자들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해인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첫 번째 복인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입니다. ‘가난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프토큐오’(ptokuo)인데 ‘움츠리다/굽실거리다/구걸하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형용사 ‘프토코스’(ptokos)는 ‘가난한’이라는 뜻뿐 아니라 ‘무능한’의 의미도 지닙니다.

가난한 자란 ‘자격과 능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부와 지위와 명예와 지식과 권력과 능력 등 어느 것도 지니지 못한 자입니다. 자랑할 만한 신앙체험도 가지지 못한 자입니다. 당연히 간증다운 간증거리가 하나도 없는 자입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 나올 수조차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무언가 그럴 듯한 근거(가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든지, 박사학위를 가졌든지, 목사직분을 가졌든지, 장로라도 되든지, 헌금을 많이 내든지, 기도를 유창하게 하든지, 봉사라도 많이 하든지, 세계 최대교회를 세웠든지, 동시통역을 할 정도로 외국어에 능통하든지, 하다못해 자식에게 교회를 대물림할 정도의 옹고집이나마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이런 능력 지닌 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하나님께서 들어 쓰지 않으실 도리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야무진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이러한 착각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쐐기 박는 기술이 바로 ‘간증’입니다.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았다거나, 처참한 교통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났다거나, 천국을 다녀왔다고 주장한다면, 동일한 체험을 하지 못한 이들은 간증자의 주장을 부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특이체험이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최상의 간증 요건이 됩니다. 객관적인 증빙자료까지 제시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간증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전부 인정하지요. 하지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는 심각히 짚어 봐야합니다. 이것은 ‘심령이 충만한(부유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물론이요 심지어 하나님 앞이라 할지라도 뭔가 내놓고 자랑할 것이 있다는 영적 포만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시는 것과 정반대의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분명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시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산상수훈의 첫 번째 복은 틀린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심령이 부유한 자’가 복 받은 자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모해야 뭐라도 주지시 않겠느냐는 생각인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시종일관 “심령이 가난해야” 복 받는다는 진리를 양보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것은 정말로 가난한 것입니다. 뭐가 됐든 조금이라도 내놓을 것이 있으면 결코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간증 - 좋은 것입니다만 간혹 간증자가 부각된다면 이는 하지 않음만 못한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간증을 듣는 성도들도, 간증 자체에 주눅 들어 신앙의 정체를 초래한다거나 아니면 나도 그러한 체험을 해야겠다는 허무한 욕망을 부추킨다면 이는 듣지 않음만 못합니다.

주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유, 어린이와 과부와 나그네를 향하신 애틋한 긍휼, 소자를 잊지 않으신 일관성 등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록 타인과 구별되는 독특한 체험을 간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신앙위축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진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제되지 않은 간증을 남발하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보다는, 아무 간증거리가 없어 영적인 빈곤감을 느끼는 ‘가난한 심령의 성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샬롬!

mskong

2007.04.18 08:25:01
*.226.142.22

간증사역을 꿈꾸는 저같은 사람이 새겨들어야 할 주옥같은 말씀 이군요...감사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주로 서신, 게시판등을 이용한 간증을 시작했는데...
지적 하신대로 역기능이 존재하고요.
갈등도 존재 합니다. 기도속에서 한다고 하지만...항상 부족하고...

마음에 세기도록 하겠습니다.

정순태

2007.04.18 13:26:52
*.75.152.118

mskong 성도님!(형제님이신지 자매님이신지 모르겠군요. ^^)
가끔 가장 중요한 질문 내지 견해를 말씀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데, 간증은 정말 좋은 우리 신앙의 한 국면입니다. 저도 간증의 효과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간 우리는 간증의 순기능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배웠기 때문에 더 이상 살필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간증도 절제되지 않으면 생각지 못한 역기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달도 차면 기운다."(月盈則食)라고 말하며
성경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적절한 선에서 적절히 자제해야 한다는 교훈일 것입니다.

약 3-4회에 걸쳐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던 간증의 역기능을 살펴봄으로써 일종의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성도님께서 이러한 간증의 역기능(주의할 점)을 고려하신다면,
간증 사역으로 주님의 일을 하시는 것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제 견해는 간증의 원천적인 부정이 아니라 과함을 방지하기 위한 자제에 있음을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샬롬!

허경조

2007.04.18 14:00:53
*.80.180.87

역시 정순태집사님다운 정확한 지적에 전적인 동의를 표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정확히는 교인들에게 간증의 역기능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남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때 집사님의 이런 지적이 정말 신선합니다.
오이밭에서는 신발끈을 안매는 사려깊은 지혜가 필요할 것 같군요.

mskong

2007.04.20 17:16:29
*.192.88.143

정순태님께...mskong은 남자이고요...공문수라고 합니다.
여기 싸이트에 워낙 내공이 많으신 분들 때문에 함부로 얼굴을 안 내밀고 있고요...
김문수님이 유명하셔서 저의 이름은 영문이니셜로 살짝 감추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시간으로 새벽 1시가 넘었네요...
오늘 주님께 살짝 데이트 신청을 드렸고 이제나 저제나 임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저의 교만과 인본주의 적인 모습 때문에 화가 나신것도 같고...
오시게 되면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한다고도 말씀 드릴려고요...
참 여기 싸이트를 가꾸시는 분들과 놀러 오시는 분들 모두 축복해 주십사 말씀 드리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 [환우나눔] 의사도 포기한 병든 몸을 이끌고 정순태 2007-08-11 1308
40 [의문] 「거룩한 의문」 시리즈를 마치면서 [2] 정순태 2007-08-04 1256
39 [묵상] 이방신의 축복이 더 풍성하다? [5] 정순태 2007-07-27 1292
38 [환우나눔]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을! 정순태 2007-07-14 1173
37 [환우나눔] 걱정도 팔자네! 정순태 2007-06-23 1172
36 [묵상] 기드온은 정말 큰 용사였는가? [3] 정순태 2007-06-16 2247
35 [환우나눔] 소문은 소문일 뿐, 그냥 섬김이 전부이다. 정순태 2007-06-09 1194
34 [단상] 예수님은 흥하고 목사는 망해야한다! [4] 정순태 2007-06-02 1422
33 [환우나눔] K 형제님을 통한 반면 교훈 몇 가지 [2] 정순태 2007-05-27 1307
32 [단상] 중신아비로 만족할 수는 없는가? 정순태 2007-05-19 1289
31 [묵상] 충분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만나의 은혜 [2] 정순태 2007-05-13 1781
30 [묵상] 천국체험 주장들 -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나? [4] 정순태 2007-05-05 4782
29 [묵상] 수지맞은 구경꾼(출14:1-14) [1] 정순태 2007-04-27 1506
28 [묵상] 아이 손의 사탕을 빼앗으시는 하나님(?) [2] 정순태 2007-04-21 1636
» [단상] 정제되지 못한 간증의 위험 [4] 정순태 2007-04-14 1544
26 [환우나눔] 마음만은 언제나 정순태 2007-04-01 1295
25 [환우나눔] 아주 작은 소자들의 지극히 작은 나눔 이야기 정순태 2007-04-01 1499
24 [의문] 야곱은 하란에 40년 체류했다? 정순태 2007-03-24 1666
23 [의문] 단 지파의 기이한 특공대? [2] 정순태 2007-03-17 1639
22 [묵상] 맛 잃은 소금 [4] 정순태 2007-03-10 5472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