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삿6:12(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로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 들어가기
▲ 교회 주일학교 등에서 아주 용감한 성도의 표본으로 가르쳐지는 분들 중에는 기드온과 삼백 용사도 포함될 것입니다. 사사기 6장부터 9장에 기록된 기드온 관련 이야기를 보면 기드온이 대단한 성도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300명을 인솔하여 13만 5천 명의 미디안 연합군을 섬멸하는 장면이야말로 압권입니다. 절로 신이 납니다.
▲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기드온과 300 용사의 용기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우리도 이와 같이 승리의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곤 합니다. 주일학교 어린아이들을 격려하고 고무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면 크게 문제 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들까지 어린아이처럼 이러한 피상적인 이해에 머물러 있다면 조금 생각해 봐야 합니다.
▲ 사실 주일학교의 가르침(설명)은 문제가 있습니다. 부정확할 뿐 아니라 잘못된 관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런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드온 관련 기사에 관한 설명의 오류와 확대된 오해
▲ 성경 여백에 첨가해 둔 ‘각주’는, 학자들이 전심전력으로 연구한 결과이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할 때 참고하면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각주는 부정확한 것도 있고 잘못된 견해도 많습니다. 각주를 참고할 때 아주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 삿7:5절에 관한 일부 성경의 각주도 이에 해당됩니다. 제가 보유한 'NIV한영해설성경/아가페/1997년판’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 :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는 자들을 가리킨다(6절). 여기에서 우리는 잠시라도 방심하지 않고 경계하며, 언제라도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준비된 자세와, 갈증도 없애면서 사욕에 끌리지 않는 군인다운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깨어 있어서 마귀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벧전5:8-9), 사욕에 끌리지 말아야 한다.』
○ 해설자는 300명이 선택될만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무심코 읽으면 그럴 듯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세심하게 분석하면 잘못된 해설입니다. 7장 전반부를 자세히 검토해 보겠습니다.
○ 6장에서 하나님은 미심쩍어 하는 기드온을 억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그리고 7장에 들어와서 기드온과 추종자들이 출전하게 됩니다.
○ 2절입니다. 이 전쟁의 의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는 말씀은 ‘적은 숫자로 적을 섬멸함으로써 이 전쟁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증명하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례로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사가 너무 많습니다. 이 많은 군사로 싸워 이기면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긴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속 심정 그대로입니다.
○ 그래서 겁나는 자는 귀향토록 했는데, 2만 2천 명이 돌아가고 1만 명이 남았습니다(3절). 그런데 하나님은 이 숫자도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 당신께서 제시하시는 방법으로 인원을 선발하시겠다고 하십니다(4절).
○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공대 선발기준이 5-6절에 나와 있는데, 그 기준이 바로 “개의 핥는 것 같이”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에 관한 해석이 중요한데, 일부 학자는 앞서 말씀드린 그런 설명을 시도합니다. ‘남은 300명의 자질’을 중시하는 설명인 것이지요.
○ 저는 바로 이 점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7장을 다시 한번 세밀히 읽어 보면, 하나님의 뜻은 명백합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은 극소수의 사람만으로 치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300명의 자질 따위는 하나님의 안중에는 아예 없습니다. 왜 300명이 선택되었느냐는 질문의 정확한 답변은 단 하나, ‘적은 인원이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만약 “개의 핥는 것”처럼 물을 마신 이들이 9천 7백 명이었다면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 학자들의 설명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소수로써 이기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칼 한 자루 없이 오직 나팔과 횃불과 항아리만 가지고, 450배에 이르는 적군을 섬멸토록 인도하셨습니다!
▲ 이제 이러한 시각을 조금 확대하면, 과연 기드온과 300명이 용감한 자들이었는가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기드온과 용사들의 용감성을 크게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도 평범한 인물에 불과했고, 성경의 보증으로는 오히려 겁쟁이들이었을 뿐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제 견해의 타당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드온과 300 용사는 전형적인 겁쟁이였을 뿐이다!
▲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시는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기드온의 진면목이 어떠했는지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 당시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농산물과 축산물을 전부 미디안이 공출해 가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근근이 연명하는 정도였습니다.
○ 기드온은 매우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합니다. 포도주 틀은 포도를 밟아 포도주로 만들기 위한 시설로서 지하 구덩이 형태입니다. 밀은 땅위의 넓은 마당에서 타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마당에서 타작하면 미디안 사람들에게 빼앗기므로 포도주 틀에 숨어서 몰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알의 단을 훼파할 때, 한 밤중에 몰래 합니다. 사람들의 반대가 겁났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어 그는 ‘여룹바알’이라는 별명까지 얻습니다.
○ 나아가 양털 뭉치로 2번 더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그대로 응해 주십니다.
○ 이러한 일련의 기록은, 기드온이 평범한 사람이었고 오히려 소심했으며 겁쟁이였음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6:15절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솔한 평가였습니다.
○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큰 겁쟁이여!”라고 해야 맞는데, 정 반대로 “큰 용사여!”라고 선포해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비법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능력을 보고 쓰시지 않으십니다. 오직 당신의 뜻만으로 사용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삿616)가 비밀의 열쇠입니다.
○ 이상에서 보듯 기드온은,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처럼 누란의 위기에 처한 민족을 결단코 구하고야 말겠다는 필사즉생의 신념으로 똘똘 뭉쳐진, 우국지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겁쟁이였을 뿐입니다. 그런 그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큰 용사가 되었다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깊은 의미입니다.
▲ 그러면 300 용사는 진정한 용사였을까요? 성경을 곰곰이 살펴보면 300 용사도 용감한 사람들이라 단정하기는 곤란할지 모릅니다. 성경의 뜻을 피상적으로 살핀 일부 학자들의 오류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 학자들은 ‘무릎을 꿇지 않고 물을 핥아 먹은 것은 방심하지 않고 경계태세를 취하는 마음자세’라며 이를 높이 평가했습니다만, 이 태도는 역으로 겁쟁이임을 나타내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 처음 모인 군사는 3만 2천 명이고, 2차 시기에 남은 자는 1만 명입니다. 적군은 13만 명이 넘는 대군입니다. 3만 명으로도 상대가 안 되는데, 겨우 만 명이 남았습니다. 누구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안정된 마음과 자세를 지니지 못합니다.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심리를 그대로 노출하는 모습이 바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입니다. 적이 나타나면 즉각 도망가겠다는 심리가 두리번거리게 만듭니다.
○ 아직 남아있는 1만 명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대담한 사람들은 엎드려서 물을 마신 9천 7백 명입니다. 마음을 턱 놓은 모습입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자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개처럼 물을 핥아먹은 3백 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망가기 위해 몸을 도사린 상태로(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마시고 있습니다. 겁먹은 상태에서는 엎드려서 마실 정도의 느긋한 행동이 방해받습니다. 300명은 겁쟁이들이었습니다.
○ 동일한 구절에 대해서도 학자들과 저는 달리 해석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해석이 더 일리 있을까요? 각자가 판단할 일일 것입니다만, 저는 제 견해를 확신합니다.
○ 이런 설명입니다. 즉, 대범하고 용감하여 엎드려 마신 다수의 9천 7백 명(자격 있는 자들)은 다 돌려보내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며 두리번거리는 소수의 3백 명(자격 없는 자들)만 남긴 상태에서, 칼 한 자루 없이 오직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만 가지고, 450배에 이르는 적군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섬멸했다는 것은, 기드온과 300 용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 성경이 하시고자 하시는 참 의미일 것입니다.
▣ 오늘날에도 기드온과 300 용사(겁쟁이들)는 많다!
▲ 오늘날에도 큰 성과를 가져온 성도들은 많습니다. 과거의 루터나 칼빈도 그렇고 웨슬레나 무디 목사님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생존해 계시는 분들 중에도 뚜렷한 공적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사례(공적)를 설명할 때, ‘이분들에게는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질이 있다.’는 논리를 펴곤 합니다. 심하면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셔야 할 정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논리에 발목 잡힌 일부 목사님들은, 자신에게도 하나님조차 인정하실 수밖에 없는 위대한 자질이 있다며, 목사들을 존경하라고 윽박지르곤 합니다.
▲ 성경 속의 모든 신앙위인들과 다르고(기드온과도 다릅니다), 루터 등과도 다른, 이런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만약 이런 주장이 맞는다면 성경의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오늘 살핀 기드온과 용사들의 경우입니다. 기드온에게 뭔가가 있어서 쓰임 받았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기독교 역사에 남은 신앙위인들 중에는 아무도 유능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도 탁월한 인재가 아니었고, 바울도 스스로 유능한 존재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 현대의 잘 알려진 목사들도 별로 뛰어난 인재는 없는 듯합니다. 지능지수가 제일 높은 사람들도 아니고 능력이 우수한 자들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평균에 겨우 미칠까 말까한 그렇고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목사 안수를 받는 것 같습니다. 신학교 입학생의 지적 수준을 확인하면 저절로 동의하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듣는 자의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이겠지만, 수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하나는, 똑똑한 자는 거의 사용치 않으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는 못난이들의 쓰임 받음만 증거하고 있을 뿐입니다.
▣ 나가기
▲ 오늘은 성경에서 가장 용감한 군인으로 대접받는 기드온의 경우를 들어, 정말 그가 용감한 용사였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기드온은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용사다운 자가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이러한 인식은 옳은 것입니다. 기드온과 300 용사는 태생적인 용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겁쟁이들이었을 뿐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그들을 위대한 성도로 기록한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삿6:16)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기드온을 비롯한 모든 성경 위인들과 오늘날의 모든 성도들은 전부가 무가치하고 겁쟁이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런 자들일지라도 하나님께 함께 하시면 기드온보다 더 위대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숨은 뜻입니다.
▲ 성경은 어떤 드러난 인간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를 통해 숨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할 뿐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비밀을 깨달은 자는 결코 인간의 모습에 현혹되어 진실을 오판하지 않습니다.
▲ 매일 매일의 신앙생활을 통해 오직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하심을 느끼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샬롬!
잠시 상어에 쫓겨다니느라 게으름을 부렸더니
집사님께서 저의 그런 사정까지 다 아시고(?) 대신 다 밝혀 놓으셨네요.
제 수고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도 언뜻 밝힌바 있지만 성경을 아무리 앞뒤로 읽어봐도 기드온은 겁쟁이였습니다.
그가 위대했던 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겁쟁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했다는 한 가지 사실입니다.
이 때 까지의 오류를 밝혀 주셔서 속이 다 후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