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가운데 의미가 왜곡된 것들이 많은데, ‘권위와 권세’도 그 중의 하나인 듯합니다. 한글개역성경에는 권위가 6회, 권세가 140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참 권위는 하나님과 관련된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권위를 지니신 분이십니다. 신약성경에 맨 처음 나오는 “권세”는 예수님과 관련됩니다(마7:29). 물론 주기도문(마6:13)의 속령에도 “권세”라는 단어가 있습니다만, 속령은 후세의 첨가일 가능성이 워낙 높은 구절이므로 제외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속성인 ‘권세’의 일부를 제자들에게로 위임시켜 주십니다.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막6:7).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권세가 있음은 자명합니다.
당연히 이 위임된 권세의 수임자는 12 사도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을 지칭하는 복수 개념입니다(눅10:19 참조).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권위’하면 곧바로 ‘목사’를 연상해 버립니다. 즉, 권위가 목사의 배타적 관념으로 고착되었다 하겠습니다. 물론 조금 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도는 주님의 권세를 위임받았기 때문에, 목사에게는 당연히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주장되는 것처럼 목사의 독점적 내지 무소불위 권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권위’ 내지 ‘권세’의 문자적 의미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 권위와 권세의 사전적 의미
권위와 권세에 관한 사전의 설명은 조금 복잡합니다. 어렴풋하게 이해는 하겠는데, 명확히 구분하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한글 사전의 설명입니다.
○ 권위란,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또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또다른 사전에서는 ‘제도ㆍ이념ㆍ인격ㆍ지위 등이 그 가치의 우위성을 공인시키는 능력 또는 위력’이라고 설명합니다.
○ 권세란 ‘권력과 세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 설명합니다. ‘권력’이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으로, ‘세력’이란 ‘권력이나 기세의 힘’으로, 부연설명 합니다.
신학사전의 설명입니다.
○ 권위란 ‘사람들에게 복종을 기대하고, 아울러 그렇게 하는 데 대해 책임 있는 해명을 제시하면서, 행동이나 순응을 명령하거나, 신념이나 관습을 결정하는 권한 혹은 권력’이라 설명합니다.
○ 권세란 ‘능력’(선택하여 실행하는 자유와 힘)과 ‘소유권’(부ㆍ지위ㆍ지식ㆍ자격ㆍ충성 같은 것이 소유권에 투자된 것)이라 설명합니다.
히브리어 ‘레슈트’는 ‘하나님의 통치적 힘ㆍ처분ㆍ소유ㆍ위임ㆍ권한ㆍ자유ㆍ지배’의 뜻이라 합니다. 때로는 ‘위엄’의 뜻인 ‘게우트’(geut)가 사용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헬라어는 조금 복잡합니다. 특히 한글개역성경은 ‘권세’와 ‘권위’를 헬라어 원어와 상이하게 번역한 곳이 많습니다. 조금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권세’로 번역된 헬라어는 2가지입니다.
‘뒤나미스’(마6:13)는 ‘힘, 세력, 능력, 역량’의 뜻입니다.
‘엑수시아’(exousia)는 ‘능력ㆍ힘ㆍ권위ㆍ권한ㆍ용인’이라 합니다. 엑수시아는 특권(특별한 권리=선택의 자유, 통치력, 권력자)으로서 상응하는 의무를 수반한다고 합니다.
한편 엑수시아는 ‘내적인 힘’을 의미하고, 뒤나미스는 ‘외적인 힘’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다음 ‘권위’로 번역된 헬라어는 3가지입니다.
‘파라클레시스’(행4:36)는 ‘권고, 권면’의 뜻입니다.
‘에피타게’(딛2:15)는 ‘명령’의 뜻입니다.
‘퀴리오테스’(유1:8)는 ‘주권, 통치권’의 뜻입니다. 헬라어 ‘퀴리오테스’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3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골1:16 및 엡1:21절을 근거로 ‘천사의 주권’으로 보는 것입니다(Moffatt, Werdemann 등). 둘째는 유1:8 및 벧후2:10절을 근거로 ‘하나님 또는 예수님의 주권’으로 보는 것입니다(Blum, Cranfield, Green, Baucknam 등). 셋째는 ‘인간의 권위’로 보는 것입니다(Calvin, Luther 등).
여기서 세 번째 칼빈과 루터의 견해가 가장 치명적 독소를 지닌 이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성경이 인간 지도자를 따를 것을 가르치고는 있으나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서의 제한적 복종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권위와 순종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일 뿐입니다. 이것을 무제한적으로 인간(지도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무튼, 일부 학자들은 권위와 권세를 거의 동의어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면 타당한 듯도 합니다.
○ 권위와 권세는 ‘인간을 복종시키는 힘’으로서, ‘위력’이라는 의미에서는 동의어임.
○ 권세는 사람들이 그 정당성을 인정해야 권위가 될 수 있음.
○ 따라서 권위란 정당성을 획득한 권세임.
▣ 권위와 권세에 관한 개인적 의미 이해
이상에서 ‘권위와 권세’에 대한 사전적 의미와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봤지만 개념이 명쾌히 정리되지 못한 듯합니다. 여전히 막연하고 어렴풋합니다.
따라서, 전문 언어학자처럼 정확한 의미 규명을 목적하지 않는 이상, 앞서 살핀 모든 내용들을 종합하여,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순수한 개인 견해입니다.
즉, 권세란 국가권력처럼 ‘강제성이 수반되는 지배력’이며, 권위란 ‘인격적이고 자발적인 승복이 전제된 감화력’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성경은 ‘권세와 권위’를 엄격히 구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상호 교호사용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비록 충분치 못하고 또 다소 모호한 면이 있지만, 이 정도의 이해만으로도 묵상을 진행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듯하므로, 향후 ‘권위와 권세’를 동의어로 간주하여, 부담없이 교호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다만 서두에서 이미 밝혔듯이, 신학자든 목회자든 평신도든, 모든 성도들에게 존재하는 ‘권위’는 철저히 위임된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위임’이란 ‘근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차용’을 의미할 뿐입니다.
신학자의 권위도 목사의 권위도 모두가 ‘위임된 권위, 차용된 권위’입니다. ‘위임 내지 차용’은 ‘절대성’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역으로 ‘상대성’을 내포합니다.
이는 유명하고 능력있는 신학자나 목회자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의 허구를 증명하는 근거가 됩니다.
성경은 인간을 향한 절대 복종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절대 순종을 요구하실 뿐입니다. 권세와 권위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 개념임을 인식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필수 요건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간과한다면 기독신앙의 건강성은 결코 보장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