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들르는 카페에서 K 목사라는 분이 쓴 “성직자의 사례금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요지는 ‘목사도 세금을 내자고 주장하는 일부 목사들을 향한 신경질적인 분노’였습니다.
‘유익한 자료, 좋은 글을 올려주어서 감사하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으나, 오히려 ‘해로운 글’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계의 뜨거운 감자이기에 응당 읽을 수밖에 없었으나,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동의하기 어려운 성경이해와 해석의 미비점들이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여러 미비점들은 덮어 두기로 하고 무모하다 싶은 성경해석 한 가지만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K 목사는 ‘십일조 드리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성도들이 내야 하는 세금을, 교세(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국세(나라에 바치는 십일조), 2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국세의 근거로 삼상8:15절(…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K 목사의 바람처럼 이스라엘과 현대 기독교 국가들의 국세 기준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의 본래 의미를 간과함으로써 전혀 엉뚱한 구절을 끌어다 붙이는 실수를 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문맥적 해석’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단어나 문장을 해석할 때, 그 부분만 뚝 떼어 단독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앞뒤와 연결하여 맥을 짚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삼상8:15절에 문맥적 해석법을 적용할 경우, K 목사의 이해는 공감하기 힘듭니다.
8장을 한 번만 읽어도 큰 흐름이 잡혀집니다. 이렇습니다.
『①사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무엘의 아들들 때문에 백성들이 실망(1-3절) ⇒ ②사무엘을 찾아가 왕정 채택 건의(4-5절) ⇒ ③하나님의 불쾌감과 왕정체제의 위험성 경계 지시(6-9절) ⇒ ④사무엘은 병역 및 노역 의무(11-13절) / 신하들의 급여 재원확보 방안(14-15절) / 공역 의무(16-17절) / 결정 이후의 철회 불가(18절) 등 왕정의 단점 설명 ⇒ ⑤백성들의 최종 선택과 하나님의 허락(19-22절)』
일단 이러한 문맥적 흐름을 염두에 두고 15절을 다시 읽는다면 이런 뜻일 것입니다.
《너희들은 왕을 세워 달라고 하지만 만약 왕이 세워지면 그가 너희 소산의 십일조를 징수하여 그것으로 자기 신하들의 봉급을 주게 된다. 달리 말해서, 왕이 없으면 별도의 세금(십일조)을 더 내지 않아도 되나, 왕이 세워지면 반드시 별도의 통치자금이 필요해 지고 왕은 그 경비 일체를 일반 백성들에게 추가로 부담시키게 된다. 그래도 좋겠느냐?》
결국 15절에 기록된 “십일조”라는 단어는 왕정체제를 채택할 때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을 경계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15절의 “십일조”는 이스라엘 나라의 납세 기준을 제시한 세법 조항이 아니며, 나아가 오늘날 성도들의 납세의무를 보증하는 법적 용어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K 목사는, 본문의 근본의미 탐색은 등한시 한 채,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해 줄 ‘문자적 표현’ 찾기에만 급급함으로써, 오해석의 우를 범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상과 같은 미비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K 목사의 주장은 올바르다 하기 어렵습니다.
“성직자의 납세를 주장하는 자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다.”라는 마무리 문장을 통해 스스로의 확신을 다시 한번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K 목사의 견해는 흔쾌히 수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할 것입니다.
평신도들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정확한 설명 전해 듣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목사들은 한시라도 잊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이런 은혜누릴 수 있기를… ♣
목회자에게 다양한 세금 공제 혜택은 부여해도
(예컨대 24시간 삶 자체가 목회라는 업무에 해당되므로
차운행 개스비를 정확한 운행일지를 비치하는 조건으로 비용으로 공제해주는 식임)
그럼에도 교회에서 받은 목회자 개인의 사례비에 관해선 세금보고와 납부의무가 있습니다.
단 일부이단처럼 국방 납세 등의 의무를 부인하는 것자체를 확정된 교리로 하고 있을 때는
그 사실을 연방국세청에 확인 받으면 납세의무에서 제외해주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