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2009년 11월 22일 주일 아침 CBS에서, ‘건전한 교회’ 또는 ‘한국교회의 희망’으로 회자되는, 서울 강남의 S교회 예배실황을 청취했습니다. 마침 2500억 원 규모의 새 예배당 신축헌금을 작정하는 날이었습니다.
담임 O 목사가 새 성전 건립의 절대적 필요성을 구구절절 설교하였고(이삭의 번제사건을 본문으로 한 목적설교), 이어서 원로인 또 다른 O 목사는 15분짜리 동영상을 통해 새 성전 확보의 당위성을 목청껏 부르짖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분들은 ‘예배당’을 극구 ‘성전’이라 칭했습니다).
‘제자훈련’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원로 O 목사와, 대형교회를 인수하여 연착륙에 성공한 담임 O 목사의 성가(聲價)는, 한국교계가 다 아는 일입니다.
2회의 제자훈련 이수 경력에도 불구하고 원로 O 목사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주장과 달리 제자훈련은 의외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귀공자 스타일의 외모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현 담임 O목사도 별로 호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비단 그가 관상기도에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는 그의 설교가 성공주의에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점을 알고부터였습니다.
2009년 어느날(정확한 날자는 기억 안 납니다) 딱 한번 S 교회 본당 예배에 참석했다가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날은 약 620여 억원(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에 이르는 연간예산을 심의하는 사무연회였습니다. 담임목사와 재정부장(장로)이 몇 마디하고는 단 몇 분 만에 통과시켰습니다.
어느 교회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으나 O 목사 역시 초대형 교회 담임목사들의 주특기인 담대함과 뻔뻔함의 극치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던 것입니다.
영적인 방황이 심했던 아내는 서울 나들이할 때마다 S 교회에 출석하여 O 목사의 설교를 듣고는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TV를 통해 S교회 예배실황을 시청하기도 했습니다.
험난한 교회생활에 많이 지쳐있었으므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너무 크게 신뢰하지 마시오. 그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인물인 것 같소.”라고 조언하곤 했습니다.
엉뚱하다싶은 말로 좋아하는 목사를 경계할 때, 아내는 무척 서운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약간은 언쟁조로 “설마 그럴 리가요! 그분은 결코 그럴 분이 아니죠!”라고 응수하곤 했습니다.
아무튼 몇 번에 걸친 ‘인간에 대한 지나친 신뢰는 반드시 실망으로 되돌아온다.’는 논쟁(?) 때문이었는지, 자신의 주장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있었습니다(O 목사를 향한 존경과 신뢰의 도가 조금은 약화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문제의 주일설교를 함께 들었습니다. ‘왜 서초동에 큰 예배당을 새로 지어 옮겨야 하는지’에 관한 그 강한 역설을 말입니다.
아내는 실망했습니다. 좋아하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세우는 논리(예배당 건축의 당위성)가 여타의 대형교회주의자들의 억지와 동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들은 평신도들이 성경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양 마음껏 왜곡시키기 일쑤입니다. 옛날 교육을 독식했던 시절처럼, 목사만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지만 교육의 평준화 덕분에 이제는 평신도 또한 목사 못지않게 성경을 읽을 뿐 아니라 나름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사의 말을 ‘거부해서는 아니 되는 하나님 말씀’으로 맹신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목사의 주장이 성경에 맞는지 아닌지 정도는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만, 목사들의 타락지수가 초래한 현상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확신에 고무되어 톤(tone)을 한껏 높였으나, 두 분의 강변은 듣기가 매우 거북했습니다.
비록 신앙 경향의 차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다소 경원시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원로 O 목사는 존경받는 분이며, 담임 O 목사도 차세대 대표로 거명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작금의 한국교회 난맥상을 대할 때마다 두 분의 역할에 대하여 모종의 기대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이번 일(예배당 신축 및 작정헌금 강행) 만큼은 매우 실망스럽다 할 것입니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변해버린 씁쓸한 경험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