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복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획일주의적 조직에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상관은 하눌님과 동격이며 부모님과 동기동창이다!”라는 비공식 모토가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곳입니다. 상관의 명시적 명령과 지시는 물론이거니와 묵시적 의도까지 무조건 따르는 것이 선(善)으로 대접받습니다.

이 조직의 경직된 문화는 결코 바람직한 사고체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이 모토가 나름대로 수용될 뿐 아니라 긍정적 효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으로 압니다.

교회생활 시작 초기, 적응의 어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교회 내에도 일종의 상명하복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은 당연히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목사를 비롯한 지도자들에게까지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요구받았지만,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교회를 향한 ‘비판’ 의식이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전부 옳다 여겼고, 목사의 말은 무조건 신뢰하고 순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그리 행동했었습니다.

약 30여 년의 교회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많은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이래서는 곤란하지 않느냐. 개선해야 될 것 같다.’는 취지의 비판적 인식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몇 번 입 밖에 내어 말해 보았으나 공허함만 더해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더욱 괴로운 것은, 비판적 시각으로 살피다 보니, 오히려 개인영성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줄어들었고, 그러던 중, 건강상의 사소한 이상을 하나님의 금지로 해석하여 ‘절필’을 선언하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우연히 좋은 Book Review를 읽었습니다. ‘크레이그 히크만’의 “똑똑한 리더의 치명적 착각”이라는 책의 요약이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훨씬 더 방자하고 분통을 터트리려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불평불만의 직원들, 골칫거리가 아니다.”

작금의 한국교회 실상을 보고도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극히 불행한 현상입니다. ‘정통신앙’이라는 스스로의 확신과 달리 이는 치유 난망의 중증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치명적인 비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자하고 분통이나 터트리는’ 문제아로 지목받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잘 하자. 좀 바꾸자.’라며 자성의 목소리 내는 비판론자가 그리운 시대일는지 모릅니다.

비판은 무조건 부정적 현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애정의 다른 표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칼럼 재개 여부를 놓고 계속 기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과 다른 성도님들의 권면의 말씀도 기억합니다.

비록 뚜렷한 음성으로 허락(칼럼을 재개해도 좋다는) 받지는 못했을지라도, 작은 부분이나마 나누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형편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칼럼을 재개하기로 하였습니다. 비판적 견해도 일부 포함될 것입니다. 비판 자체를 목적하는 것은 아니나, 여전히 교회를 사랑하기에, 지적만이라도 하고 싶어서입니다.

비판마저 포기할 정도로 교회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은 아니라는 고백을 곁들이면서, 허락하시는 데까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형주

2011.03.05 11:11:42
*.81.30.250

정순태 형제님,
형제님의 글을 다시 접할수 있게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개인적으로 기쁜 마음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 되신 것인지요?

"애정이 없으면 비판도 없다" - 우연이겠지만 현재의 제 상황을 꼭 집어주셨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방법이 없어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시려니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형제님의 글을 읽고보니 제가 믿음이 좋아 하나님께 맡긴 것이 아니고 사실은 애정을 포기해서 편안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겠지요?

형제님의 글을 자주 접하고 싶습니다.
샬롬!!!

운영자

2011.03.05 12:35:41
*.108.161.206

빵빠랑 방!!!!
연대장님의 무사귀환을 환영하는 나팔 소리가
우렁차고 신나게 울리네요.

집사님이 주님과 함께 울고, 웃은 사연들이
또 한국강단을 향한 안타깝고도 애정어린 외침들이
하나님과 방문자님들 모두에게
맑은 바람소리처럼 들리리라 확신합니다.

네 분 칼럼니스트께서 아름답게 동역하실 모습이
눈에 선해 벌써부터 제 가슴이 설레입니다.
이 네분을 세우게 해주시고
또 연대장 집사님을 복귀시켜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0^

김순희

2011.03.05 12:50:50
*.174.66.90

목사님의 팡파레 소리 너무 재미있어요. ㅋㅋㅋ

우리의 연대장님이 드뎌!!
저도 축하의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 드립니다. ^-^

상혁

2011.03.05 14:39:01
*.108.161.206

엇!!며칠전에 올린 글이 이제 떳네요.
어쨋던 대환영입니다!!!!
냉철함과 뜨거운 가슴으로 올릴 글들을 기대하면서
우리모두의 기다림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앗싸!!!^^

정순태

2011.03.05 15:01:38
*.75.152.33

목사님을 비롯한 김형주 형제님, 김순희 자매님, 상혁 형제님,
모든 분들의 환영에 머리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ㅠㅠ

그러나 영적으로 어린 막내 동생을 아우르는 성숙하신 성도님들의 아량을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무슨 자격으로, 무슨 능력으로
계속할 것인지 걱정이 태산같습니다만
가능하면 매주 토요일 찾아 뵐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mskong

2011.03.06 07:15:04
*.61.23.146

연대장님의 복귀를 감사드리며...여기 서울에서도 빵빠레를 울리겠습니다. 주님께서 교제를 허락하신 그예다 가족들을 기도합니다. 복귀의 변에 기대어 저도 오랬만에 댓글을 답니다. (저는 새로 오픈한 ERP 안정화에 모든 시간과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3월 마감(4월10일 전후)까지는 갈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피곤해져 있습니다만 주님만을 의지하며 가고자 합니다.) 평안하십시오.

원의숙

2011.03.06 07:32:28
*.235.204.0

애정 어린 글들... 경청하겠습니다.

이선우

2011.03.06 20:20:52
*.187.103.66

필승!!!
연대장님의 복귀를 저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자주 대할 수 있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목 빼고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공형제님,
ERP 프로젝트를 맡으셨군요.
저도 당해 봤기에 얼마나 고생하심은 상상이..
그래도 자주 이곳에서 뵙겠습니다.

김유상

2011.03.11 02:25:33
*.234.52.134

정 형제님, 드디어 돌아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제 받침이 다시 든든하니 벌써 두 다리에 힘이 솟습니다. 경계의 외침과, 깊은 통찰과, 조언과 도전의 글들을 다시 대할 기대에 가벼운 흥분이 입니다.

하람맘

2011.03.11 10:05:55
*.33.6.63

저는 사실 집사님의 글을 처음 대해서 이 같은 환영의 글들이 얼떨떨합니다만 정말 저도 덩달아 신이 나고 기대가 됩니다. 전에 글을 써오신것을 몰랐네요.이곳에 들어오면면 읽어야할 글들이 산더미 처럼 쌓여서 숙제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가는데 숙제가 하나 더 늘었군요^^ 숙제가 많을 수록 저에게 더 좋은 시간임을 고백합니다. 바쁘시고 몸이 고달프신 상항이 더이상 없이 편안히 글을 쓰실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유상

2011.03.11 19:23:44
*.234.52.134

이런 이런! 꼭 읽어야 할 글들을 놓치셨다니니요?! 즐거운 숙제가 될 겁니다. 숙제 더 자주 달라고 떼쓰지나 마시길...

정순태

2011.03.11 23:25:20
*.75.152.191

모든 형제자매님들의 당부와 격려에 부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주 한 번씩은 찾아 뵙도록 애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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