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꽃봉오리가 막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이른 봄이다. 간혹 고개 내민 풀포기도 보인다.
집사람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온천 좀 다녀옵시다. 가는 길에 냉이랑 쑥도 좀 캐고…”
사내대장부를 어떻게 보고 이런 망발이냐며 일언지하 거절한다. 그녀도 공감한다.
얼핏 ‘나물 캐는 아내 보디가드 하는 것이야 어떠랴.’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자고 한다.
아내의 나물 캐는 것을 지켜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봄나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쑥은 아는데 냉이는 미심쩍다. 냄새 맡아보고 나서야 겨우 구분해 낸다.
천하에 쓸모없는 잡풀을 보고 고민하는 모습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자연스레 거들게 된다. 냉이를 판별해 주고 쑥도 조금 캐준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봄나물 캐는 맛과 멋을 안다. 봄나물 캐기의 진수는 냉이나 쑥이 아니다. 그것은 달롱(달래의 고향 사투리)이다. 달롱이라야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른 봄의 들녘은 아직 황토 빛이다. 잡풀이 먼저 돋아나고 가끔 냉이도 보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하여 살핀다. 달롱이다!
갓 돋아난 달롱 줄기는 아주 가늘고 연약하다. 색깔도 황토색과 비슷하여 발견이 잘 안 된다. 일종의 보호색인 것이다. 좀 더 자라야 초록색이 된다.
호미로 흙을 파낸다. 널찍이 파다보면 하얗고 동그란 달롱 대가리가 나타난다(고향에서는 머리라 하지 않고 항상 대가리라고 한다). 대가리를 잡고 뽑아낸다.
콧속으로 전해지는 진한 내음, 봄 향기이다! 이 향기를 맡아야 비로소 진짜 봄인 것이다.
사실 달롱 캐는 멋은 조금 다른 데 있다. 어린 시절의 비밀스런 추억이기도 하다.
아주 어릴 때는 주로 엄마나 누나가 봄나물 캐는 것을 따라 다닌다. 그러다 좀 더 자라면 남자 친구들끼리 온천지를 쏘다니게 마련이다.
가끔 나물 캐는 또래 여자애들을 만난다. 여자애들은 종알종알 수다 떨기에 여념 없다. 쪼그려 앉은 애들의 뒷모습이 아담하다. 보기 좋다.
주위를 빙빙 돌면서, 부끄러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아랫집 순희가 있는지, 곁눈질하기에 바쁘다.
여자애들은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만 가라고 눈치를 한다. 좀 더 버텨보지만 점점 무리임을 안다. 자리를 뜰 수밖에 없다.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뜬다.
이것이 추억 속에 갈무리된 ‘달롱 캐는 숨겨진 멋’이다.
아내 옆에서 서성이다 ‘달롱 찾겠다.’며 오가지만, 때 이른 논두렁에서 발견될 리가 없다는 것쯤은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심심풀이로 쑥을 뜯다보니 한 손 가득이다. 쪼그려 앉아서 열심히 캐고 있는 아내에게로 갔다.
아내는 냉이를 제법 캤다. 작년보다 변별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다. 한 소쿠리(사실은 비닐봉지였다) 쯤 되었기에 그만 하기로 했다.
온천에서 나오는 길에 전통 곡차를 한 통 샀다. 집에 와서 냉이 된장과 쑥 국에 곁들여 한 잔 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봄맛과 봄향기를 즐겼다.
비록 ‘꽃을 든 남자’처럼 우아한 모습은 아니었을망정 ‘쑥 캐는 남자’ 역할 수행하며 한 나절 보낸 것도 좋은 추억일 듯싶다. 자주 끌려 나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올 봄 첫 들나들이는 이렇게 끝났다.
작은 미소 머금고 자리에 든다.
작년 봄 중학교 동창 카페에 올렸던 글을 옮겨봅니다.
수술 이후 특별휴가(病暇)를 얻어 쉼으로써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2월부터 다시 출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도 열심히 합력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