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2:5-6(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저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한글 개역성경의 오역은 여러 곳에서 확인됩니다. 오늘 본문도 오역이 의심되는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한글 개역성경의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라는 번역은, 모르드개가 제2차 포로에 포함된 것처럼 해석할 수밖에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개역의 번역이 정확하다면 사촌지간인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나이 차이가 무려 109세인 것으로 계산됩니다.
▲ 먼저, 본문의 번역이 정확하다는 가정 하에, 관련되는 연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유다 왕 여고냐는 유다 제22대 왕인 여호야긴의 다른 이름(왕하24:8; 대상3:16)입니다. 이때가 BC 598년으로서 제2차 포로사건입니다.
에스더 1장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은 BC 486-465 간 페르샤를 통치했던 크셀크세스를 지칭합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수용한다면, 와스디 폐위사건(에1:9)은 크셀크세스 즉위 3년인 BC 482년에 발생했으며, 에스더의 왕후 등극(에2:17)은 즉위 7년인 BC 479년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양 사건의 산술적 계산상 연수(年數) 차이는 119년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이제, 에스더 왕후 책봉 당시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나이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모르드개
- 포로로 잡혔을 때의 정확한 나이는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분 유능한 자들만 잡아가고 빈천한 자들은 남겨 놓았다는 기록(왕하24:14-16; 25:12)을 참조할 때, 활용 가치가 있는 귀인임과 동시에 젊은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포로 당시의 나이를 활용가치가 높은 10세로 간주하고, 앞에서 계산한 119년을 고려할 경우, 에스더가 왕후로 책봉될 때 모르드개는 129세의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 에스더
- 고대에는 간혹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령자와의 정략결혼도 심심찮게 행해졌으므로(창12장 사건은 사라의 나이 60세 이후, 창20장 사건은 사라의 나이 90세경에 발생한 일이었을 것임), 에스더도 나이를 많이 먹은 후에 왕후로 간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강국인 페르샤 왕이 다 늙은 포로 여자를 왕후로 간택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 뿐만 아니라 에2:2절의 “아리따운 처녀들” 표현과 이후의 모든 서술 내용으로 보아, 에스더는 10대 후반 내지 20대 초반의 처녀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 따라서 편의상 에스더의 나이는 20세로 간주겠습니다.
잠정적으로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연령차는 109세(129-20)로 추정하겠습니다.
▲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관계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아버지 아비하일(2:15, 9:29)의 관계가 ‘삼촌’이기 때문에,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관계는 당연히 ‘사촌’이어야 합니다.
○ ‘삼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도드’는 ‘가장 사랑하는 자, 사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만, 친척 간에 사용될 때는 ‘아저씨, 삼촌, 외삼촌’의 뜻입니다.
○ 모든 영역본들도 이에 동의합니다. 즉, KJV는 uncle's daughter로, NIV는 cousi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관계는 ‘사촌’으로 확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 잠정 정리
개역성경의 번역이 정확하다는 가정 하에 계산한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와 여동생인 에스더의 연령 차이는 109세입니다.
이는 상식을 벗어나는 나이차입니다. 사촌지간에 100세 차이가 날 수는 없습니다.
▲ 영역본 및 한글본의 내용들
히브리 성경이나 70인역을 가지고 검토해봤으면 참 좋겠으나, 아직은 그럴만한 실력에 미치지 못하기에, 몇 가지 영역본 및 한글본만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 KJV입니다.
2:5 Now in Shusan the palace there was a certain Jew, whose name was Mordecai, the son of Jair, the son of Shimei, the son of Kish, a Benjamite,
2:6 Who had been carried away from Jerusalem with the captivity which had been carried away with Jeconiah king of Judah, whom Nebuchadnezzar of Babylon had carried away.
○ NIV입니다.
2:5 Now there was in the citadel of Susa a Jew of the tribe of Benjamite, named Mordecai son of Jair, the son of Shimei, the son of Kish,
2:6 who had been carried into exile from Jerusalem by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among those taken captive with Jeconiah king of Judah.
○ NRSV입니다.
2:5 Now there was a Jew in the citadel of Susa whose name was Mordecai son of Jair son of Shimei son of Kish, a Benajmite.
2:6 Kish had been carried away from Jerusalem among the captives carried away with King Jeconiah of Judah, whom King Nebuchadnezzar of Babylon had carried away.
○ 한글 KJV입니다.
2:5 그때 수산 궁에 한 유대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모르드캐로 베냐민인이요, 키스의 증손, 시므이의 손자, 야일의 아들이더라.
2:6 그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끌고 갔던 유다의 여코냐 왕과 함께 끌려갔던 포로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끌려갔던 자라.
○ 공동번역입니다.
2:5 그때에 도성 수산에는 모르드개라고 하는 유다 남자가 있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야이르의 아들로서, 할어버지는 시므이, 증조부는 키스였다.
2:6 모르드개는 유다 왕 여고니야가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올 때 예루살렘에서 함께 잡혀 온 사람이었다.
▲ 한글 개역성경의 오역 가능성 검토
영역본(KJV와 NIV)에 있어서는 2:6절의 Who(who) clause가 누구를 수식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① 멀리 떨어진 Mordecai를 수식하느냐? ② 가까운 Kish를 수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만약 ① “멀리 떨어진 Mordecai를 수식”한다면, 개역한글, 공동번역 등은 올바른 번역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앞에서 제기했던 109세 차이가 나는 사촌지간의 난점을 해소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② “가까운 Kish를 수식”한다면, NRSV 번역이 가장 정확합니다. 이 경우, 앞에서 제기했던 난제가 확실하게 해결되며, 상식적으로도 가장 합당합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학문적 검토 결과에 따라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리라 생각되며, 그런 의미에서 한글 개역성경의 오역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 듯합니다.
☞ 의문 : 이상 살핀 대로, 사촌지간인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나이 차이를 약 109세로 추정할 수 있는지요? 아니면, 제2차 포로사건 때에 모르드개의 증조부인 기스가 사로잡혀갔고(별지 참조) 조부와 부친은 바빌론에서 태어나서 생을 마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지요?
※ 이후 아래의 귀한 글을 발견함으로써, 위 의문은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히브리어로도 재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성경을 신중하게 읽으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여기면서 그 내용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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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자료] 페르시아에 살았던 구약 에스더와 모르드개
(출처 : http://cafe.daum.net/ilmak / 성경-성경배경자료)
이란에서 고대 도시로 손꼽히고 있는 하메단엔 구약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유적들이 무척 많다. 바사제국의 왕들이 살았던 여름궁전이 최근에 발굴되어 그 유적 터에서 발견된 왕궁 터의 기초석인 주춧돌과 각종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외도 바세제국 다섯 번째 왕인 아하수에로(Xerxes) 왕의 비문이 있는 간자너메, 구약 에스더서의 주인공 에스더의 무덤이 있어 성경 고고학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필자가 이곳에 살면서 하메단에 있는 에스더서의 무덤을 중심으로 그 역사성을 짚어보려고 한다.
당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B.C.5세기 후반부에 페르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페르시아와 그리스간의 갈등과 반목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페르시아에 대해 기록한 시기는 에스더 7-9장에 해당되는 기간이었다.
그는 에스더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아하수에로 왕을 변덕이 심하고 관능적이며, 때로는 잔인하고 독재적이라고 묘사하였다. 이 내용이 에스더1장에 나오는 와스디 왕후를 폐위하고 곧이어 에스더를 새 왕비를 맞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란 남서부 고대 유적지 쉬라즈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발견된 아하수에로의 비문에는 ‘나는 아하수에로, 위대한 왕, 유일한 왕, 모든 종류의 방언을 쓰는 모든 나라의 왕, 땅 끝까지 이르는 거대한 제국의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겨울 궁전이었던 이란 남부 수쉬(Shush) 수산 성을 발굴하던 불란서고고학자들은 아하수에로 왕의 아버지 다리오 왕 1세가 제국의 곳곳에서 물자를 동원해 겨울 궁전을 지었다는 내용을 담은 토판을 발견하였다.
이 궁궐은 다리오 왕의 뒤를 이은 아하수에로에 의해 완성되었다. 아하수에로 통치 초에 수산 궁내에 ‘마르두카’란 사람이 최고 관리였다는 기록이 바벨론 근처 보르시파(Borsippa)에서 발굴된 상형 문자판에 적혀 있었다. 이 마르두카는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를 일컫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많은 유대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을 이은 여섯 번째 아닥사스다 1세와 다리오 2세의 통치 기간에 페르시아제국 내에서 주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르드개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높은 관리였다는 것이 허구적인 상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실제 인물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역사적 증거들이다.
어떤 성경학자는 에스더서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로 유대 여자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다는 것은 페르시아 법에 용납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성경에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당시 현지 이름은 크세르크스(Xerxes)이다. 그의 비문에 모두 크세르크스로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한 고레스 왕이 죽고 캄비세스(주전 530-522년)와 다리오 1세(주전522-486년)가 왕위에 올랐다. 아하수에로는 다리오 1세의 아들로서 장남이 아니었지만, 다리오 1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주전 484-424년)는 아하수에로 왕이 고대 근동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린 야망 있고 뛰어난 전사이며, 또한 무자비한 통치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 기자는 실제 사건들의 연대기인 궁중 일기(에2:23)와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10;2-3)를 언급함으로써 에스더서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에스더서를 역사 소설, 또는 역사화된 지혜 이야기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모르드개는 바벨론의 제2차 유다 침공 때(주전 597년경) 유다 왕 여고냐와 함께 포로로 잡혀 바벨론 땅에 끌려온 기스의 증손이고 시므이의 손자이며 야일의 아들이다. 그는 바벨론 땅에서 태어나 바사국의 도성인 수산(Susan)에 살고 있었는데 삼촌의 고아 된 딸 에스더를 친딸처럼 양육하고 있었다.
모르드개가 활동하던 시대 배경을 성경의 흐름 안에서 살펴보면 에스라서 6장과 7장 사이에 나와 있다. 즉,유다 총독 스룹바벨에 의한 제 1차 포로 귀환(주전 537년경)과 학사 에스라에 의한 제2차 포로귀환(주전 458년경) 사이이다. 이때는 일반 역사책에서 ‘크세르세스’(Xerxes)로 알려진 바사 왕 아하수에로가 통치하던 시대였다.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통치 시절에 아각 사람 하만은 바사 제국의 총리대신으로 왕 다음인 제2인자 위치에 있었다. ‘아각 사람’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인데 아말렉 족속은 오래 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후미에서 공격하여 큰 타격을 입힌 족속으로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공적이었다.
역사의식이 깊었던 유대인 모르드개는 유대 민족의 자긍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원수인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하만이 알게 되자 하만은 적개심에 불타올라 모르드개 뿐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를 말살하기로 작정하고 왕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왕비 에스더와 협력하여 하만의 계략을 물리치고 동족유대인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세운 높은 장대에 자신이 매달려 죽고 말았고 그 대신에 모르드개가 총리대신이 되어 유대 민족의 큰 영광과 자랑이 되었다
당시 바사국의 총리대신인 하만의 막강한 권세를 감안할 때 일개 포로의 후손에 불과한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감히 대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의 용기로 하만 앞에 끝내 무릎 꿇지 않았고 도리어 대적 하만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필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유대인이 13세기경에 만들어진 에스더 모르드개 묘로 안내를 해주었다. 입구에 400kg에 가까운 대리석 문을 열고는 하나하나 설명을 해준다. 히브리어로 된 성경 구절과 십계명이 벽에 선명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여나므 명 앉을 수 있는 회당도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정확한 묘라고 볼 수 없지만 이곳이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했던 지역으로 그 의미를 따져보면 충분하게 가능이 있는 지역임에 틀림없다. 2개의 관 위에 에스더 모르드개 이름이 새겨진 관을 보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역사는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 페루시야 선교사 <ju520207@paran.com>
성경을 신중하게 읽어야함을 배웁니다.
귀한 글과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