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상 3: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사무엘은 선지자의 대표로 공인되는 인물입니다만, 정확히 이해하기가 만만찮은 부분들이 많은 분입니다.
일전(日前) ‘사무엘의 출신 지파’에 관해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확정적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사무엘이 선지학교 창시자’라고 주장들을 하는데 이것 또한 단정할 사안은 아닌 듯합니다.
아무튼 구약성경에 기록된 사무엘의 행적에는 신중하게 짚어 봐야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문자적 의미상 섣불리 수용하기 쉽지 않은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에 관한 몇 가지 성경 표현(번역)을 인용하겠습니다.
○ NIV : The lamp of God had not yet gone out, and Samuel was lying down in the temple of the LORD, where the ark of God was.
○ KJV : And ere the lamp of God went out in the temple of the LORD, where the ark of God was, and Samuel was laid down to sleep;
○ ASV : and the lamp of God was not yet gone out, and Samuel was laid down to sleep, in the temple of Jehovah, where the ark of God was;
○ 공동번역 :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야훼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기 전에
○ 표준새번역 :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주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환하게 밝혀져 있을 때에,
위 5가지 영역본 및 한글본의 뜻은 아무리 훑어봐도 거의 동일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또는 성소) 안에서 잠잤다.’는 의미입니다.
의문점을 보다 정확히 알고 싶어서, 또 달리 해석할 여지는 없는지 궁금해서, 독일성서공회가 발행한 히브리 성경(BHS :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을 참조해 봤습니다. 본래 히브리어는 ‘우에서 좌로’ 쓰지만 편의상 영어나 한글처럼 ‘좌에서 우로’ 표기했습니다.
베네르(and lamp of, 어근은 ‘네르’) 엘로힘(God) 테렘(not yet) 이카바(he went out, 어근은 ‘카바’) 우쉐무엘(and Samuel, 어근은 ‘쉐무엘’) 솨카브(lying down) 베헤칼(in temple of, 어근은 ‘헤칼’) 예호바(Yahweh) 아쉐르(where) 샴(there) 아론(ark of) 엘로힘(God).
여기서 다른 단어들은 영역본이나 한글본에 번역된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의 의미가 잘 전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전 안에”(베헤칼 예호바, in temple of Yahweh)라는 번역은 좀더 살펴야 할 듯싶습니다.
‘전 또는 성전’에 해당하는 말은 ‘헤칼’입니다. 이 단어는 주로 ‘궁전, 성전, 성소’로 번역되었고 그 외에도 ‘전, 신당, 신궁, 왕국, 전각’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영어로는 tent, 한글로는 회막 또는 성막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2가지입니다. 첫째는 ‘오헬’로서 ‘장막, 거주’의 뜻을 지닙니다. 둘째는 ‘미슈칸’으로서 ‘장막’의 뜻입니다. ‘미슈칸’은 광야시대 때의 ‘이동성소’를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성막은 다시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됩니다(출26:33). ‘성소’는 ‘코데쉬’(구별됨, 거룩함, 성스러움) 또는 ‘믹다쉬’(거룩한 장소, 성소, 회당)라고 하며, ‘지성소’는 ‘코데쉬 코다쉼’ 또는 ‘데비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믹다쉬는 회막과 성전을 나타낼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로서 이때는 ‘성소’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도 합니다.
참고로, 사무엘은 성전이 건축되기 약 100여 년 전에 살았으므로, ‘장막 또는 회막’을 의미하는 ‘오헬’이나 ‘미슈칸’을 사용했어야 타당할 듯합니다. 성전이 건축되기도 전에 ‘성전 또는 성소’를 의미하는 ‘헤칼’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후손들로 하여금 혼란을 겪게 만든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미 히브리 성경이 ‘헤칼’을 사용했으므로 영역본이나 한글본의 번역 자체는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히브리어와 영어와 한글 성경은 모두 ‘사무엘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또는 성소) 안에서 잠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성막의 설계가 얼마나 치밀하고 세밀하게 기술되고 있는지 잘 압니다. 출25-31장까지 그 식양(式樣)이 계시되어 있고, 출35-40장에 걸쳐 제작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의 최외곽 규모는 길이 약 45m(100규빗) 폭 약 22.5m(50규빗)입니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뜰’이 있는데 거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습니다. 뜰의 길이는 대략 50규빗 쯤 됩니다.
나머지 50규빗 × 50규빗의 공간 중앙에 지성소와 성소가 존재합니다. 지성소는 4.5m × 4.5m(10규빗 × 10규빗)의 규모로서 그곳에는 오직 언약궤만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9m × 4.5m(20규빗 × 10규빗)의 규모인 성소에는 금향단과 금촛대와 진설병상이 있습니다.
참고로 성막과 성전과 왕궁의 규모를 상호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막(출25~27, 30장)
- 뜰의 크기(출27:9) : 길이 100규빗(150′, 45m) × 폭 50규빗(75′, 22.5m) × 높이 30규빗(45′, 13.5m)
- 지성소의 크기 : 길이 10규빗(15′, 4.5m) × 폭 10규빗(15′, 4.5m)
- 성소의 크기 : 길이 20규빗(30′, 9m) × 폭 10규빗(15′, 4.5m)
○ 성전(왕상6:2~ )
- 길이 60규빗(90′, 27m) × 폭 20규빗(30′, 9m) × 높이 30규빗(45′, 13.5m)
* 길이 방향 : 낭실(10규빗) + 창고(7규빗)를 포함하면 길이=77규빗(115.5′, 34.65m)으로 증대.
* 폭 방향 : 창고(7규빗×2열)를 포함하면 폭=34규빗(51′, 15.3m)으로 증대.
○ 왕궁(왕상7:2~ )
- 길이 100규빗(150′, 45m) × 폭 50규빗(75′, 22.5m) × 높이 30규빗(45′, 13.5m)
후일 지성소와 성소 등의 실제 규모가 좀 더 확장되는 성전에는 제사장들이 기거할 수 있는 공간(일종의 침실)이 있을 수 있겠으나, 광야시대의 성막에는 그러한 공간이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광야시대에 만들어진 성막에는 지성소와 성소와 뜰 어느 곳에도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의 율법은 지성소와 성소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습니다. 레16:2절은 “성소의 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는 무시(無時)로 들어갈 수 없고 만약 들어가면 죽게 된다고 명백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신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년 일차 대속죄일 하루만 들어갈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레16:34).
이때 혹시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죽게 되면 끌어내려고 대제사장의 겉옷 자락에는 금방울(출28:33-35)까지 달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핀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성막에는 제사장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지성소에는 마음대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성소 안에 누울 수는 결단코 없었다.
② 혹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일, 제사장들이 쉴 수 있는 공간(소규모 천막)을 따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성소 안이 아니라, 성막의 뜰이었을 것이다.
이 정리가 타당하다면 본문은 문자적으로 매우 큰 모순이 발생합니다. 즉,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는 표현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혹시 학자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여기저기 살펴보았으나, 이 문제에 대한 의구심을 표한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본문의 정확성과 그 진정한 의미에 강한 의구심을 불식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이의 : 정말로 사무엘이 성막(성소) 안에서 잠을 잤는지요? 성막에 잠잘 수 있는 공간(침실)이 존재했는지요? 또 만약 그런 공간이 있었고 그래서 잠을 잤다면 구약성경이 성소를 극도로 구별했던 율법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요? 혹 성막의 뜰 어느 곳에서 잠을 자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해석해야 하는지요? 무척 궁금합니다.
※ 추기 : 이 문제와 조금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을 듯한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출 33:11절입니다.
광야에서는 회막을 진 밖에 쳐서 떨어지게 했고 모세가 출입하며(출퇴근하며) 하나님과 만났으나, 여호수아는 항상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여호수아는 성막에서 숙식했다.’고 확대해석하려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레위지파가 아니기에 제사장이 아닙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이 아닌 일반 지파 사람들은 성소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와 사무엘의 사례는 관점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또 광야 성막 구조상 여호수아가 숙식은커녕 햇빛도 피할 장소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그 모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출33:11절의 의미는 단편적인 묵상 정도로는 밝히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작심하고 별도로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제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학문적 소양을 필요로 하므로 더 이상의 진행은 불가능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