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라 하는데,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부연하면 삼인행 스승은 ‘나보다 잘난 스승, 나보다 못난 스승’을 암시한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매스-미디어들은 교회를 칠 자격이 있나?”라는 제목의 짧은 글(별지)을 읽었습니다. 교회를 옹호하고픈 심정이 읽혀지는 듯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 되읽는 가운데 무척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첫째, “지나치게 썩고 부패한 사회에서는 소금도 제 구실을 못하고 지나치게 어두운 곳에서는 빛도 맥을 못 출 수가 있는 것”이라는 인식에 대한 의구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만으로도 ‘지나치게 썩고 부패하지 않은 세대가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썩고 부패함’은 현세대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모든 세대의 공통현상입니다.
둘째, ‘소금과 빛의 역할 수행 환경’에 대한 인식도 문제입니다.
물론 인간의 눈에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포기지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경우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현세대는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미래세대는 계시록에 나오는 더 극악한 시기를 지내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썩고 부패한 시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쓴이의 사고(=지금도 너무 썩고 부패하여 소금과 빛의 역할 수행이 불가하다는 생각)대로라면, 미래 세대에서는 어찌해야 합니까? 분명 지금보다 더 썩고 부패할 텐데요.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미래 시대에도 포기하시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즉 아무리 썩고 부패한 환경일지라도 교회와 성도에게 소금과 빛의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고 요구하심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한국교회의 변질을 지적한 것은 아주 정확합니다. 그런데 매스미디어들이 교회의 죄악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큰 자가당착입니다.
교회의 잘못은 분명한데 그걸 지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방인을 통해 이스라엘을 권면하거나 경고하신 사례가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 모압 선지자 발람, 느브갓네살 왕, 고레스 왕 등도 그 예일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지적하지 않으면 하다못해 “돌들”(마3:9)을 들어서라도 지적하실 것입니다.
넷째, 글쓴이는 모든 잘못의 원인을 매스 미디어 탓으로 돌리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온갖 부패와 불륜을 전파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면서 그것을 정화하다가 오염된 교회를 규탄하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은 허구입니다. 매스 미디어들이 잘못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것을 정화하려다가 오염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교회의 오염은 교회 스스로 자초한 악일 뿐입니다. 세상을 동경하여 뭔가를 얻으려는 욕심이 충만한 결과일 뿐입니다. 이것을 본래적으로 악한 매스미디어에게 전가하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책임회피 행위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불량한 세상(이 글에서는 매스미디어)을 비웃으심은 당연합니다. 성경도 이를 분명히 하십니다(겔27:36).
그러나 하나님은 ‘변질된 교회’ 또한 비웃으신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대하29:8). 맛을 잃어 쓸모가 없어진 소금의 운명은 “길가에 버림”(마5:13) 당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별지 글의 전반적인 뉘앙스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글쓴이는 교회를 매스 미디어와 동격의 위치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매스 미디어와 비교할 위치가 아니라는 점만 지적하겠습니다.
일곱째, 오늘날 아주 많은 현실교회들에게 부끄러운 문제들이 있고 이는 고쳐야 함은 모두가 아는 현실입니다. 매스 미디어들도 압니다. 그러므로 매스 미디어들이 제발 고쳐서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당부하는 것은 매우 합당한 처사입니다.
이 합당한 매스 미디어의 권고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범법자가 ‘너는 내 잘못을 지적할 자격이 없다.’고 큰소리치는 것과 흡사한 현상입니다.
한국교회, 잘못을 지적하는 자의 자격여부를 따질만큼 한가한 처지에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적하셔야만 정신 차리고, 흉악한 자가 지적한다고 귓등으로 흘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누구의 지적이냐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누구의 지적이든 그대도 수용하여 진짜로 정신 차려야 할 때입니다.
서두에서 공자는 ‘나보다 못난 사람도 스승으로 삼아야 함’을 권면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역시 ‘지적할 자격도 없는 매스미디어의 질책’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합당할 것인지 진지하게 숙고해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상대의 자격을 시비하기에 앞서,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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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스크랩] 매스-미디어[mass-media]들은 교회를 칠 자격이 있나?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만들려는 목표를 가진 신성한 공동체이다. 그래서 교회는 스스로를 소금과 빛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러나 소금과 빛 노릇을 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지나치게 썩고 부패한 사회에서는 소금도 제 구실을 못하고 지나치게 어두운 곳에서는 빛도 맥을 못 출 수가 있는 것이다. 부패정도나 어두움 정도가 어느 정도여야 소금이든 빛이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교회... 그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능력을 받아야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왜일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 세속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말하자면 소금이 맛을 잃은 것이고, 등에 기름이 부족한 것이다. 아니 기름에 물이 섞인 것이리라. 제대로 된 소금과 제대로 된 등불이 되려면 본질을 희석시킨 이물질들을 분리해 내어 버려야 한다. 교회는 세상으로 말미암아 희석된 순수성을 되찾기 위하여 이제 정신을 차려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는 죄를 규탄하는 일부터 해야 된다. 배금주의를 규탄해야 한다. 쾌락주의를 규탄해야 한다. 허영과 방종을 규탄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사람들 속에 퍼트려서 부패케 하는 언론을 규탄해야 한다. 사회를 부패케 하는 데 있어서 언론의 영향은 교회를 능가한다. 교회는 적어도 부도덕을 선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들은 모든 부도덕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회에 전파한다. 세상을 부패케 하는데 최강자는 교회가 아니다. 그것은 매스미디어들이다. 교회가 지치고 기진맥진하는 것은 세상을 정화할려다가 힘이 모자라서 그리되는 것이지만 언론이 지치고 피곤하게 되는 것은 정화하다가 그리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언론은 교회만큼 정화의지는 없다.
그런데 요즈음 교회가 매스미디어에 의해 망신을 당하고 있다. 자기들은 온갖 부패와 불륜을 전파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면서 그것을 정화하다가 오염된 교회를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웃으심이여!
하나님은 교회를 치실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고치실 것이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를 친 매스미디어들은 버림을 당할 것이다. 자식을 고치기 위해 사용한 회초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지적하는 상대의 자격을 시비하기에 앞서,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위 결론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언론의 세태에 둔감한 저로서도 최근의 기사들(J목사 등)에는 고개를 들기도 어렵습니다...ㅠ.ㅠ.
부록으로 남기신 필자의 글 중
"소금이 맛을 잃은 것이고, 등에 기름이 부족한 것이다...
교회는 세상으로 말미암아 희석된 순수성을 되찾기 위하여 이제 정신을 차려야한다."
지적은 너무나도 타당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분의 해결책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회개를 외쳐야 하지만, 회개는 먼저 교회 내에서, 스스로를 향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먼저 낮아지고 재와 눈물 가운데 앉아 있을 때, 한국사회의 자정은 일어나는 것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