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신앙관련 수필(‘칼럼’이라 했으나 어설픈 넋두리)을 쓰면서, 많이 망설였던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목사의 위상과 권위와 직능 등에 관한 생각들’입니다.
성경을 봐도 목사는 명백한 지도자군에 속하는 직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수행해야 할 직능으로 본다면 매우 중요한 구성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목사’는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왔는지 모릅니다. 천주교 사제관(司祭觀)의 오류를 상당 부분 답습한 것처럼 의심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현대교회의 목사는 왕중왕입니다. 교회의 전권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무소불능의 능력자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직능(권한)을 취득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과도한 권한 집중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전혀 잘못된 현상입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목사에게 집중된 권한의 편중 현상이 오늘날 세계 및 한국 교회 난맥상의 원흉일 수 있다.’는 것이 숨기고 싶지 않은 개인 확신입니다. 그간, 이 글 저 글에서 이 같은 견해가 조금씩 언급되기는 했습니다만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작심하고, 목사 관련 이런 저런 생각들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신학과 교리에 얽매이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만 충실하려 노력할 것이고 성령께서 열어주시는 선까지만 터치하도록 조심할 것입니다.
아울러 자신의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현학적인 영역은 감히 접근하겠다 욕심 부리지 않을 것이며, 불가피하게 원어 등을 살피더라도 꼭 필요한 수준으로 한정할 것입니다.
다만, 소제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붓 가는 대로(손가락 가는 대로), 가볍게 수필 형식의 글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두려운 것은 은혜(?) 충만한 꾸지람입니다. “네가 뭔데 감히 주의 종님들에게 망발이냐!” 나무라신다면, 몸 둘 곳이 없을 것입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입니다. 하물며 듣기 싫은 노래는 단 한 번도 싫습니다. 듣기 싫은 것을 두 번 이상 들어야 한다면 이는 고문이나 진배없습니다.
목사에 관한 비평(비판)은 결코 듣기 좋은 꽃노래가 아닙니다. 신앙 좋으신 분들일수록 듣기를 거부하는 절대 금기사항에 해당됩니다. 이 껄끄러운 주제를 다루겠다니…
그러나 각오 단단히 하고 시작해 보렵니다. 얼마만큼 또 언제까지 지속될는지 모르지만,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만 의지하고, 고통스러운 첫발을 떼고자 합니다.
주께서 앞길 밝혀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추기 : 비판(비평)은, 하는 자에게도 기꺼운 일이 아니며, 듣는 자에게도 유쾌한 일이 결단코 아닙니다. 비판하는 것보다는 격려하는 것이, 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에게 더 낫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만약 성경이 무조건 비판을 금한다고 생각한다면, 성경의 본뜻을 잘못 아는 것인지 모릅니다.
이사야의 비판, 예레미야의 비난, 호세아와 아모스의 비평은 실로 날카롭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즐겁게 들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극단적인 반대에 부딪쳐서 죽임당하고 배척당했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랬고 주님도 그랬고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나무라야 할 때는 반드시 나무라셨지만 항상 환영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비판은 불가불 환영받지 못합니다. 특히 왜곡된 은혜만능주의에 함몰된 오늘날의 기독교계에서는 최고의 금기사항(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이 곧 비판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목사에 대한 비판은 곧바로 천벌 받을 일로 낙인찍힙니다. 두려워서라도 아무 말 안 하고 쉬쉬해 버리곤 합니다.
이러한 단순 정서는 이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정능력’(自靜能力)의 상실로 이어진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미 주변 도처에서 확인되듯이 말입니다.
많이 망설였고 하지 말자며 자제해 왔으나, 영적인 부담감이 떨쳐지지 않았던 주제였기에, 무뢰하게도, 겁 없게도, 한번 저질러 보고자 합니다.
무척 힘들 것입니다.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모두 말입니다.
해서, 겨울 방학을 통해 좀 더 생각해 보고, 봄이 오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주님께서 마음의 평강을 주시면 게시할 것이고, 불편한 마음 주시면 그만 둘 것입니다. 오직 기도하면서 어찌 인도하실지 기다려보겠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평강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