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가벼운 십자가는 없다!

조회 수 922 추천 수 39 2011.07.02 06:53:21
                  

♣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본문은 세상과 죄의 수렁에 빠져 방황하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입니다. 사랑이 듬뿍 담겨진 진리의 말씀으로서 전도지의 대표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귀한 구절에 담긴 주님의 진심이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무거운 너희 짐 대신 가벼운 내 짐을 지고 쉬어라.’는 뜻인지, 그러므로 성도가 되었으니 ‘이제는 편히 놀면서 신앙생활 하라.’는 뜻인지, 애매합니다.

앞뒤 문맥을 무시하고 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쉬운 신앙생활의 지름길’ 안내역할을 하는 구절로 오해받을 가능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처럼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할 경우, 실제로 세상을 살며 경험하게 되는 신앙의 여정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면에서 괴리가 발생됩니다. 거듭난 성도라 해도 고난과 고통과 실패와 좌절을 피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정도가 감내하기 버거울 지경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져도 전혀 가볍지 않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말씀의 문자적 의미와 다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본문에 내재되어 있는 인격적 요구를 간과하고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아주 큰 것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우선,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주요 단어의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 수고하다(코피아오) : 괴롭게 수고하다. 지쳐서 쓰러지다.
○ 무거운 짐진(페포르티스메노이) : ‘포르티조’(짐 지우다, 짐을 싣다)의 현재완료 수동태로서 be heavy laden.
○ 쉬게 하다(아나파우오) : 중지시키다. 안식(쉼)을 주다.
○ 멍에(쥐고스) : 무거운 짐을 끌 수 있도록 동물의 목에 거는 둥글게 구부린 막대.
○ 마음(프쉬케) : 영혼. 목숨. 생명.
○ 쉼(아나파우시스) : 중지. 중단. 쉼. 휴식.
○ 쉽고(크레스토스) 온화한. 유쾌한. 친절한. 선한 → 예수님의 친절(친절과 호의적인 도움)

다음, 역시 학자들의 연구 결과인 주석입니다.

○ 매튜 헨리 주석 = 예수님의 멍에는 법전(code)에 충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며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구속과 하나님과 연합을 위한 투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안식과 구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분(예수)에게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 어느 성경의 각주는 집회서51:25-26절을 소개합니다. “나 이제 결론 삼아 말한다. 지혜를 돈으로 살 생각은 말아라. 네 목에 지혜의 멍에를 씌워라. 그리고 네 마음에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라. 지혜는 바로 네 곁에 있다.”(공동번역).

한편, 마태복음 10:38절의 “자기 십자가”(파터불룸)은 세로목이 세워진 처형장까지 지고 가야하는 십자가 형틀의 가로목입니다. 주님께서 골고다 언덕까지 지고 가신 바로 그 나무입니다.

어느 학자는 이렇게 해설합니다. “자기 십자가는 인내와 순종과 연단과 자기포기의 십자가이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는 구속과 구원의 십자가이다.” 이 해설에서 ‘자기(나)에게도 할당된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내게 할당된 인내와 순종과 연단과 자기포기의 십자가의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궁금증에 빠져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아래 예화를 읽게 되었습니다.

【한 미국인 사업가가 아내와 함께 독일의 한 극장에서 유명한 수난극을 관람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그들은 예수 역을 맡았던 배우를 만나기 위해 무대 뒤로 갔습니다.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편은 그가 극중에서 짊어졌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남편은 부인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내 모습을 찍어줘요.” 그리고 그는 커다란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 등을 구부렸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땀을 흘리며 한참 동안 끙끙거리다가 결국 포기해 버렸습니다. 남편이 배우에게 물었습니다. “속이 비어 있는 게 아니었나요? 왜 이렇게 무겁죠?” 그러자 배우가 대답했습니다. “무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역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가벼운 십자가만을 찾고 있습니다. 내 욕심대로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유지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또 손해 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 나의 땀과 눈물을 드리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길은 없습니다. 속이 비어 있는 십자가를 지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정홍준 ‘꿈을 버려라.’>

“무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역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은 질 수조차 없는 무거운 십자가였기에 자신의 배역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었다는 배우의 고백은 진실이었습니다.


인생은 연습도 아니요 연극도 아닙니다. 순간순간 처음 접하는, 그 무게가 너무나 무거운, 사실들의 연속입니다. 성경이 밝히는 성도의 삶 역시 모든 사람들의 삶과 똑같습니다. 성도라고 해서 구름 밟듯이 쉽고 가벼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무거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쉽고 가벼운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편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무겁습니다. 예화에 나오는 독일 배우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이제 비로소 본문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조명 받게 되었습니다. 마음(프쉬케)이라는 한 단어의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목숨. 생명’의 뜻도 있지만 ‘영혼’이라는 뜻을 붙잡아야 합니다.

주님의 멍에와 짐을 질 때 얻게 되는 것은 ‘영혼의 쉼’입니다. ‘육체와 현실의 쉼’이 아닙니다. 현실과 육체는 여전히 무겁고 수고스러워도 영혼이 이를 넉넉히 감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역시 인격자인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격자와 인격자는 쉬운 일에만 협력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에도 늘 함께 합니다. 때로는 목숨까지도 내어 놓습니다. 이것이 인격자들 간의 사귐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격적인 차원에서 해석할 때라야, 주님 십자가의 대단한 무게를 느낌과 동시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영혼의 능력을 함께 주시는 도우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구절을 보다 넓게 해석하는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사라의 웃음

2011.07.02 12:15:50
*.161.89.37

편안함과 평안함의 차이,
예수님 안에서와 예수님 밖에서 각자의 구함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복락은 사람의 시선으로선 볼 수 없는 복락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상황을 보며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귀한 말씀, 넘 감사합니다. ^^

정순태

2011.07.03 10:04:48
*.75.152.192

이 글을 올리기로 마음먹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은 김순희 자매님이었습니다. 솔직히 자매님 한 분을 위해 올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자매님은 ‘약한 게 뭔지!’를 바로 아는 순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강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배워왔지만(번영신학과 축복신학), 실상 성경은 약한 것이 진정한 은혜임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마침 출석교회의 설교가 바로 고후12:7-10절이었습니다. 9절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말씀은 암송구절로도 유명합니다. 목사님은 아주 잘 풀어나갔습니다. 그러다 삼천포로 빠지는 안타까운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귀한 구절을 무리하게 맥추감사주일의 ‘감사’와 연결시켰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목적 설교였던 것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ㅠㅠㅠ

출석교회 주일설교의 일부 미비점은 어쩔 수 없습니다. 영성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절의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읽는 순간, 곧바로 마르바 던의 ‘약할 때 기뻐하라.’라는 경건서적이 생각났습니다. 매우 귀한 책입니다.

캐나다의 신학자이자 저술가요 음악가인 던 여사는 평생을 병마와 싸워 온 전형적인 “약자”였습니다.

16세 때 홍역 바이러스로 인하여 췌장 기능을 잃은 이후, 극한 고통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죽어버린 신경, 약하고 갈라진 피부, 내장 기능부전, 아물지 않는 상처, 높아진 괴사 발생률, 신진대사 결함, 그 결과로 생기는 둔함과 통증 같은 합병증”(p.148).

이게 끝이 아닙니다. “나는 이 책 초판의 개정 작업을 마치며 그런 배움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이전 12년 동안 서른 가지의 합병증(장 절제, 한쪽 발의 재건, 부목을 댄 다리에서 다발하는 치료 불가능한 상처, 장 장애로 인한 발작, 자궁 적출, 몇 차례의 손과 눈 수술)을 겪고 나서 비로소 다시 걷고 보게 됐는데, 다시 암종양이 발견됐다.”(p.278-279).

던 여사는 진정한 종합병원이었고 명실상부한 약자였습니다. 그녀의 말은 전부 산 체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고백은 모두 성경적이었던 것입니다. 어설픈 번영신학 축복신학 은사신학 따위가 발붙일 곳 없는 그런 성경신학적 고백입니다.

이러한 던 여사의 마음은 우리가 잘 아는 원의숙 자매님께서 가장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약자의 위치를 통과하고 계시는 김 자매님께서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는 고후12: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인용하며 마칩니다. ‘너무나 약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최적의 기회이다.’라는 뜻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어떤 것일는지 우리 홈피교회는 모릅니다. 겉모양으로는 엄청난 고통으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김 자매님과 구 형제님과 슬아와 슬기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들러주실 주님의 계시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약속하시는 우리 주님의 진짜 은혜일 것입니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김 자매님 가족들의 귀한 간증 나눔을 고대하겠습니다!!!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

사라의 웃음

2011.07.03 12:01:33
*.161.89.37

그러셨군요. 저를 위해 준비하신 글이로군요. 연대장님의 배려하여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너무도 평안하고 덤덤함을 허락하여 주심은 여러분의 기도의 힘임을 절절이
느끼고 있습니다.
네,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은 강함이 됨이 저희의 내면
속에 한겨울 함박눈처럼 소복 소복 쌓여가길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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