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충북 청원의 어느 두메산골에서 육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아이, 춘궁기에 쑥떡을 먹고 자라 몸이 허약했던 아이, 그 가난 때문에 매일 행상 나간 엄마 품보다는 형과 누나들에게 키워졌던 아이,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전기와 자동차를 못보고 자란 촌소년, 어릴 적엔 한번 울면 그칠 줄 몰라했던 막무가내 울보, 초등학교 시절엔 수줍음을 유난히 많이 타서 색시.. 뭔가 빠릿빠릿하지 못했던 이 아이가 부모를 따라 화려한(?) 도시 충주로 이사를 왔습니다. 도회지의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하기만 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새로 얻은 별명이 얼뜨기.. 어딘지 모르게 사랑에 굶주려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모습, 그렇지만 경쟁심이 남달리 강한 아이- 이것이 어릴 적 제 자화상이었습니다. 그랬던 저는 충주에 이사온 이후부터 어머니를 따라 집근처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 8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교회 생활은 내 습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중고등부를 지나면서 학생회 활동도 참여했고 학생 성가대로 활동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게 무슨 의미인지는 고민한 적도 별로 없고 깨달음도 없었습니다. 단지 남들이 기도할 때 기도하고, 말씀 들을 때 열심히 들었던 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1975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어느 시점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몇년에 한번 하는 심령대부흥회를 개최하였고, 저는 첫째 날부터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사는 서울의 어느 교회 목사님으로서 유명한 부흥강사였습니다. 집회 시간의 뜨거움이 어린 제게도 느껴졌습니다. 한번 참석하니까 좋아 그 다음 날도 참석하게 되었고 어느덧 마지막 날이 다가왔습니다.
전날 저녁 그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 잔치 끝날 큰 은혜가 있을 테니 준비를 하라, 설교 후에 안수를 해 주겠다고 하셨지요. 어린 마음에 목사님의 얘기가 귀에 팍 들어왔습니다. 아, 은혜.. 은혜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언가 신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나도 은혜 받고 싶다는 갈망이 강하게 내 마음 속에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 시작 전 일찌감치 저는 교회에 와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은혜 주시기만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뭔가 주실 것 같은 기대감과 설레임과 갈망이 엇갈리며, 내 마음은 온통 은혜에 대한 생각 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은혜 보다는 은사 주심이라고 표현해야 겠습니다만..)
집회가 시작되었고, 목사님의 뜨거운 설교 말씀이 내 심금을 울렸습니다. 제목과 구체적 내용은 잊었으나 성령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어서 통성기도 가운데 안수가 뒤에서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성가대석으로 사용했던 앞자리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다시 제게 뜨거운 마음이 왔고 간구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 은혜 주시옵소서!” 짧막하지만 진정어린 제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내 몸의 모든 의식기능이 순간적으로 멈추어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백열전구 속의 필라멘트가 퍽, 하며 허연 김을 내뿜으며 온 세상이 깜깜해진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머리 속이 하얘지며 잠깐 기절을 한 것입니다. 이어 다시 깨어났을 때 저는 뛰고 있었습니다. 아래 위로 펄펄 뛰고있는 나..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정신도 차리기 전에 제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소리를 크게 외치고 있었고, 내 혀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꼬부라져 제멋대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0여초 동안 현실을 감지하지 못하고 내 의식과는 상관없이 뜀과 외침이 지속되었습니다. 이어 주위의 소리도 들렸습니다. “절제하라, 절제해..” 어른들의 팔이 내 어깨에 놓여져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주님이 주신 은사의 첫 체험을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방언의 은사가 제게 임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주위에서 목격한 어느 분의 얘기가 이랬습니다. “목사님의 손이 기도하는 네 머리 위에 얹혀지자 네 몸이 자석이 달린 것처럼 쭉 따라 올라갔어. 목사님도 놀라는 표정이시더라. 그러더니 바로 펄펄 뛰는거야. 얼마나 펄쩍펄쩍 격렬하게 뛰어대던지 뒤의 긴 의자가 덜컹거려 기도하던 주위 사람들도 놀랐어. 그렇게 1분 정도를 뛰고 나서야 네가 정신을 차리더구나. 방언 받더라도 너같이 요란하면서 특이하게 받은 아이는 처음 본다.”
그날 유독이도 제 또래 학생들의 은사 체험이 많았습니다. 온 몸으로 진동을 한 아이, 전기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하게 팔의 저림을 경험한 아이, 환상을 보았다는 아이 등 다양한 성령의 경험을 여러 아이들이 같이 체험한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기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시간만 나면 방언으로 기도했고, 어머니와 함께 새벽기도도 나갔습니다. 내 기도가 종종 길어져서 어머니는 나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도하는 재미가 뭔지, 기도가 주는 힘이 뭔지 몸으로 체득했습니다. 이제 돌이켜 보니,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기도의 영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학생회에서의 작은 부흥도 이 기간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기간이 6개월 이상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웨이브1기의 은사체험은 나의 간절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인격적 감성적 마음의 변화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향한 단순한 나의 손벌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다른 아무것도 없이 순수한 갈망만으로 간구한 내게 선하신 주님은 은사체험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경험을 회고하면 그 뜨거움의 기억으로 주님께 감사 감격합니다. 주님과의 첫만남- 그것은 뜨거움이었습니다.
방언 치유 축귀 등의 간증을 주로 적은 것이 있었습니다.
불신자 집안에서 처음 예수를 믿은 데다
저를 전도한 사람들이 아무도 그런 쪽의 이야기를 해준 바가 전혀 없어서
저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아주 두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제가 감당할 그릇이 안 되니
다른 은사는 다 받아도 방언, 축귀 같은 은사는 안 주셔도 된다고
주님께 기도 아닌 부탁(?)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는 그랬던 것을 후회하면서
나도 방언 신유 같은 은사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바꿔 먹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전번 방언에 관한 성경문답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다른 더 좋은 은사를 많이 받았다고 확신하기에
이제는 그런 아쉬움이나 소원은 완전히 없어지고
대신에 제가 받은 은사를 통해 최선을 다해 충성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집사님은 제 경우와 정반대였군요.
다시 그 때 생각이 나서 조금 아쉽고도 많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