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365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5:21-24)
창세기에 나오는 에녹에 대한 유일한 기사입니다. 참 간단하지요? 300년간이나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이 직접 데려가심으로 죽음을 보지 않았던 사람치고는 너무나 간단한 내용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지요. 쩝,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맘에 드셨던 에녹인데 이렇게 부실하게(?) 이렇다 할 내용도 없이 지나가다니.. 뭔가 숨기신 것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에녹에 대한 소설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에녹행전’, 소설가 김성일씨입니다. 저도 몇년전에 이 2권짜리 에녹행전을 탐독한 바 있습니다.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도 했습니다. 김성일씨의 주제도 하나님과 사귐을 가진 에녹에 대한 것입니다. 사귐신앙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께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런데 소설책의 기본설정 중에 하나 빠진 듯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에 관한 것입니다. 아담은 에녹시대에까지 살면서 에녹에게 영향을 미쳤을 텐데 소설에서는 이 장면이 없더군요. 창세기 5장을 추적해보면 알 수 있듯이, 아담은 에녹이 태어날 때 622세,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 682였고, 그 후에도 243년을 더 살다가 930세에 죽었습니다. 에녹이 장손이었기 때문에, 아담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릴 적 에녹에게 가르침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후, 에녹이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대부분의 시간을 아담도 살아서 목격을 했던 것입니다.
아담도 한 때는(?)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동행(同行)’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함께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영어 표현도 ‘walk with God'입니다. 동행은 사귐의 행위로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창3:8의 ’동산에서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표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하나님은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셔서 아담과 함께 거니셨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일이었겠지요. 범죄가 없었던 태초시대에,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거니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도 당신이 창조하신 ‘사람’과 사귐을 갖고 싶어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이런 식으로 아브라함에게도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 18장에서 보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고 가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아브라함이 만나 극진한 대접을 합니다. 세 사람 중에 한 분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사라의 웃음을 지적하셨고, 의인 10명만이라도 찾으면 소돔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해 주셨습니다.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18:17)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사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사람으로 나타나셨던 것처럼, 에녹에게도 그렇게 나타나시지 않았을까, 제 개인적으로 상상을 해 봅니다. 김성일씨는 다른 식으로 생각했지만.. 하여튼 300년이라는 기간은 엄청난 시간이지요. 모세가 120 평생 중에서 마지막 40년 사귐이었다고 하면, 에녹은 365평생 중 300년이니까, 모세보다 무려 7.5배의 시간을 더 하나님과 사귄 셈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은 그를 세상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데려가셨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함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창세기에 또 한사람 나옵니다. 바로 그의 증손자 노아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 노아가 태어났을 때, 에녹은 이미 하나님이 데려가신 후였습니다. 노아가 태어나기 69년 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녹의 사귐신앙에 대해서는 노아가 충분히 듣고 교육을 받았으리라고 짐작됩니다.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가 홍수가 났던 당해년도(969세 되는 해)까지 살아있으면서, 그도 또한 노아를 가르치고 격려했을 테니까요.
므두셀라는 에녹과 같이 비밀이 담겨져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먼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시점은 그가 65세된 때부터였습니다. 거꾸로 따지자면, 65세 이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가 65세 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바로 첫 아들 므두셀라를 낳았던 때였지요. 그러니까 므두셀라의 탄생 시점에서 에녹은 무언가를 계기로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무슨 일이 도대체 뭐였을까? 성경에는 이렇다 할 해답이 따로 없습니다. 여러 주석을 찾아 보니까, 원어 므두셀라의 뜻을 찾아 나름대로 추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창 던지는 자’로서, 고대의 창 던지는 사람은 한 마을을 지키는 최후의 수호자 역할을 했었고, 적군의 침략으로 그가 죽으면 그 마을은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즉, 므두셀라는 최후의 보루, 임박한 심판의 상징으로 에녹에 의해 작명이 되었지 않겠는가, 하는 추측입니다.
이런 정황이 나타난 곳이 신약의 유다서입니다. 유다서에 보면 에녹은 예언자로서 활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1:14-15) 그의 예언은 심판에 대한 선포였습니다. 결국 첫 아들 므두셀라의 이름 뜻과 유다서를 종합해 추정해 보면, 에녹은 65세 므두셀라를 낳은 시점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에 대한 멧시지를 받아서 이를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하였고, 이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언자이면서, 300년 간이나 하나님과 사귀며 동행한 에녹의 사귐신앙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장에 그 해답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11:5) 에녹은 다른 선진들처럼,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믿음의 비밀은 그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11:6)
저는 에녹에 대해 묵상하면서, 구약시대에 가장 하나님과 가까웠던 사람이 에녹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등 훌륭한 믿음의 선진들은 그 행적들이 어느 정도 기록이 되었습니다만, 에녹은 몇 줄의 기사밖에 없습니다. 사귐의 지존이신 하나님께서 에녹의 행적을 숨겨놓으신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바로 올라간 에녹의 사귐신앙을 저도 닮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령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에녹보다도 더 주님과 잘 사귈 수 있지요. 에녹은 하나님과 사귐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동행(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먹으며(계3:20), 주님과 함께 같이 사는 것입니다.(갈2:20) 주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님은 300년만이 아닌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십니다. (요14:16) 내 안에 계셔서 사귐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 드립니다.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후기)
이전에 써 놓은 에녹의 사귐신앙을 정리하면서 에녹을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시편 90편에 나타난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시간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에녹의 삼중시간이었습니다.
- 모든 인생에게 똑같이 주어진 수평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
-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수직적 시간인 카이로스(Kairos),
- 하나님의 영역인 초월적 시간 아이온(Aion)의 삼중시간입니다.
인생의 3막을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았던 에녹의 3중시간이 십자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또한 묵상합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언젠가 한번 묵상해 봤지만, 역시 에녹이 주는 은혜는 '동행'입니다.
이를 저는 '일상'으로 받았었습니다.
좋은 묵상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