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 방법에 대하여 제게 가장 큰 교훈을 준 책 2권이 있습니다.

첫 번째 것은 김성일 장로님의 “성경과의 만남”(국민일보사)입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느꼈던 소감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목사님도 아니요 신학자도 아닌, 평신도(당시 이분은 권사님이었습니다)가 이처럼 성경을 깊이 읽는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 이후, 성경을 깊이 읽는 평신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만, 아무튼 제가 성경을 곱씹어가며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책이었으므로, 제게는 참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좋은 책이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대부분 읽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두 번째 것은 바로 독후감의 대상인 위의 책입니다. 저자는 신학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몇 개의 교회를 거쳐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있는 정식 목사님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목회자 신문에 연재하였던 ‘재미있게 읽는 성경’을 재정리하여 발간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큰 교훈을 얻고 은혜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제게 참으로 큰 경계심을 일깨워 준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극히 부정적인 책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책은 곳곳에 수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성경을 자유주의적 또는 혼합주의적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정통 목사로서 심히 우려될 만한 시각이라 할 정도입니다. 오늘 독후감은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3군데의 원문을 인용하고, 이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반론(비판)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작성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비교 우위적 능력의 존재? - 다시 읽는 십계명(1)편(pp.170-171).

  ♣ <원문>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이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계명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은 이집트 사람들이 섬기고 있었던 다른 신들을 전제하고 있다. 이 계명들은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 신들에 비해 하나님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최고신이었던 바로(태양신)와 각종의 자연을 신격화시켰던 이집트의 사람들의 신들은 하나님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야 했다. 만약 이집트인들이 섬겼던 신들의 능력이 하나님보다 더 강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계명들은 하나님이 자연이나 일상생활 등 어떤 부분에서든지 제한을 받지 않고 택한 백성들이 필요한 부분들을 공급해 주시는 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말씀이다.』

  ☞ <비판> 【저자의 인식에는 큰 문제가 있다. 하나님을 다른 신들과의 비교 우위적 존재로 본다는 의미인가? 저자는 기독교에서의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창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성경이 밝히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존자로서 그 분의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은 창조능력이다. 하나님 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는 없다(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에게만은 제한적 창조능력을 부여하셨다. 제한적이라는 말은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을 말한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신들은 그 명칭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든, 창조능력을 가진 자가 없으므로 엄격한 의미에서의 신은 아니다. 사단도 창조능력은 없다. 하나님을 저자와 같이 다른 신들에 비하여 능력이 뛰어난 비교 우위적 존재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증거를 보건데, 다른 영적인 존재는 분명히 있다. 이들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실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의 능력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영혼에 대한 권능이 전혀 없다(마10:28). 성경을 잘 보면 이방인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의 대부분은 피조된 자연물이고, 극히 우수한 종교의 주체도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나 타락한 천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타락한 천사가 영적 존재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하나님과 견줄 수 있는 존재는 결코 아니다. 허기는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과 견주려고 했으니 이를 지칭한 말이라면 그처럼 표현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여 이 이론을 따르더라도 그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선포를 망각한 것에 불과하다(사14:12-14절만 읽지 말고 15절까지를 읽어 보라). 성경이 다른 신들(영적존재)을 부인한다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망발이다. 평신도들도 성경이 사단과 귀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안다. 영적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다른 영적존재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한시적인 인간의 타락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완성될 수 있었다). 저자가 오해한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즉, 하나님과 다른 신들과의 능력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내용은 “하나님은 상대적으로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 아니라 유일하신 분이다.”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저자가 오해한 원인은 ‘god’이라는 단어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보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다. 즉, 소문자 ‘god’도 ‘신’이라고 번역할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을 지칭하는 ‘God’과 혼동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규신학, 그것도 자타가 공인하는 정통 신학교육기관에서 공부한 목사가 이런 기초적인 소양이 없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다. 기왕 추측을 해보는 마당에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우리 인간도 신이라고 표현된 사실을 저자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시82:6; 벧후1:4 등). 하나님을 다른 신들과의 능력적인 면에서의 비교 우위적 존재로 보는 것은 곧 다신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저자는 아는지 묻고 싶다.】

2. 종교다원주의?

  ♣ <원문①>{다시 읽는 십계명(1)편(p.171)}. 『1,2계명은 문화와 종교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기독교나 유대교라는 특정종교의 우월성을 나타내려고 한 나머지 다른 종교를 적대시 내지 무시하기 위한 근거로 오용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종교를 무시하는 종교는 유대교처럼 보편성을 상실한 소종파로 전락해 버리거나 중세 기독교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정복하고 파괴해 버리는 종교패권주의가 될 것이 분명하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1,2계명은 어떤 특정한 교파나 사상, 돈이나 권력, 과학기술이 절대화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심과 그의 성도들은 생활의 모든 면을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문맥이 맞지 않음).
     <원문②>{다시 읽는 십계명(1)편(pp.196-197)}.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뜬 사람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중세시대나, 이슬람 정복주의 사상, 현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특정 종교의 우월성에 집착하여 이웃을 등한시하거나 무시하는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대립과 분열, 갈등과 반목하는 태도로써는 다원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종교인들끼리라도 마음을 넓게 열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주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솔직한 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 <비판> 【비록 상당수의 개신교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종교다원주의는 성경에 부합되는 생각이 아니다. 여기에서 이 주제를 다루기는 곤란하므로, 단지 저자의 주장에 대한 간단한 반론만 제기하도록 하겠다.  

  먼저, ①번의 인용문에서 저자는 ‘보편성’ 및 ‘소종파’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저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소위 고등종교라 하는 불교나 유교 등도 좋다는 말인가? 또 저급종교인 바알이나 삼신할머니 등은 안 된다는 말인가? 성경이 누누이 강조하는 바는 보편성이 아니라 유일성이라고 믿어온 나의 믿음은 잘못된 것인가? 소종파도 그렇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또한 “모든 사람이 구원 받지는 못한다.”고도 하신다. 이는 다수구원인가에 관한 것인데,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의 깊게 살펴보면 소수구원에 가깝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양식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넓은 문을 지향하는 자들이 아니라 좁은 문을 사모하는 자들이다. 편협한 것 같은 좁은 문 - 이 깊은 진리를 알고 있는가? 좁은 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도 인격이시고 사람도 인격이며 따라서 천국도 인격자들로 구성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인격을 갖추지 못한 존재는 천국에서 살 수가 없다. 이를 성경은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다.”라는 말씀으로 확증하고 계신다. 이것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저자와 같이 소수성에 주눅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 ②번의 인용문에 관한 것이다. 저자의 주장이 천주교의 교황이나 불교인들의 주장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 물어보고 싶다. 언젠가 수 시간을 논쟁하였던 어떤 무신론자가 한 말을 그대로 하고 있다. 목사인 저자가 불교인이나 무신론자의 논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뜻인지 궁금하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성경의 생각이 아님을 저자는 알고 있는가? 모른다면 한 마디만 충고하고 마치겠다. ‘거룩’이라는 용어를 다시 한번 공부해 보기를 바란다. ‘거룩’의 대표적 의미는 ‘구별’에 있다. 세상과의 구별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보편적이고 다수적인 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구별)에 있는 것이지, 세상과의 통합(혼합)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후6:14-18절을 잘 읽어보라. 의와 불법, 빛과 어두움, 그리스도와 벨리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성전과 우상이 함께 할 수 없다고 명백히 선포되어 있다. 믿는 자는 세상에서 구별(성별)되어야 한다!】

3. 종교적 회유론(화해론)? - 십계명과 사미십계 편(p.197).

  ♣ <원문> 『흑백논리에 익숙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윤리생활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믿는 종교로 인해 그릇된 자만심에 빠져있는 경향이 다분하다. 그러나 미천한 필자의 생각으로는 자기 종교의 우수성에 집착하여 다른 종교를 적대시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는 참 종교인의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다. 자기 종교가 귀한 줄을 알면 다른 종교인과 관습도 존중해 줄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종교인의 근본 태도이다.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를 위해 싸우다 죽으면 순교라는 식의 극단적이고 맹목적인 논리로 인해 다른 종교인들을 죽이고, 문화를 파괴해 버리는 사람들은 종교인이 아니다.』

  ☞ <비판> 【참으로 상식적이고 세상적인 논리를 진리인양 말하고 있다. 저자와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는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천주교의 주장을 소설화한 영국작가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와, 이집트의 신앙관을 옹호하는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와, 무속신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한국작가 김진명의 ‘하늘이여 땅이여’와, 불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민희식 교수의 ‘법화경과 신약성서’ 등을 읽어 보라. 이들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주장들은 저자의 말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신학을 공부한 목적이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라는 기본적인 사항마저 망각한 체, 세상이론을 추종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 저자는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아는가? 구약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구별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손을 잡고 도우신 역사이다. 그러나 또한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실패한 역사이기도 하다(율법의 정의를 깊이 묵상해 보라). 그러면 신약은 무엇인가? 인간의 죄성이 너무 강하여 하나님이 외부에서 돕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영혼 속에 들어오셔서 인도하시는 것이다(복음의 정의를 깊이 묵상해 보라). 구약에서는 가나안인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실 수밖에 없었다. 택한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물리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신약에서는 상황이 변해졌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인간의 실패를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충족하셨다. 이 결과로 진멸의 대상인 이방인도 이제는 함께 은혜 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열려진 것이다(개에 비유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사건을 잘 묵상하라). 구약적인 개념으로는 이방인이고 신약적인 개념으로는 불신자였던 ‘피택권(被擇圈) 밖의 사람들’은 이제 구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즉 다른 말로 하면 믿는 자가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진멸의 명령은 예수님의 승리로 말미암아 전도의 명령으로 발전된 것이다(저자는 구약에서 전도라는 용어나 이를 의미하는 용어를 본 적이 있는지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구약에서 전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은 예수님의 사역을 예언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 구약에는 자기 후손을 가르치라는 명령만 있을 뿐, 이방인에 대한 전도명령은 없다).
저자의 또 한 가지 오해는 목사의 사명에 관한 이해의 부족이다. 믿는 자 중에 자만, 독선, 적대적 태도를 지니는 성도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목사의 사명 중에는 이러한 성도들의 교정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마치자. “저자는 기독교를 윤리/도덕으로 보는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그대로 믿는 우리는 기독교가 윤리/도덕에 얽매이는 제한된 진리가 아니라 그 이상의 절대적 생명진리임을 믿는다. 성령의 열매에 대한 진리를 깊이 묵상해 보기를 권한다.】

♠ <총평> :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성경은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구나.”라는 원칙을 재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지성이나 학식 또는 경륜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의 조명을 의지하지 아니 하고 인간적인 눈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또다시 확인했다는 의미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사람의 눈에는 감추어진 상태로 존재합니다!

우스개 소리를 한마디 하겠습니다. 믿음에도 급수가 있을까요? 답은 ‘있다’입니다. 믿음의 거장들, 즉 믿음이 좋은 분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지능지수가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 좋은 것은 지능지수나 학식과는 무관합니다. 믿음의 급수는 ‘자신을 얼마나 성령님께 양도하느냐’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튀는 재미도 있고 예리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흔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아무 것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추론적 설명으로 일관되는 자기주장은 잘 표현되어 있으나 성경의 뜻이 왜곡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비방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의 주장(이론)이 너무 위험하기에 경계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조심스럽게 소화해야 할 책이므로, 지혜를 발휘하며 읽으시기를 권면 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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