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나타날 적그리스도
우연히 TV에서 영국 마술사 Dynamo를 취재한 “Magician Incredible”이라는 특집을 보았다. 이전에 한국 TV가 “길거리 마술사”라고 소개할 때는 무심결에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집중해 보았다. 이름 그대로 정말로 믿을 수 없는 너무나 신기한 장면이 속출했다.
그의 마술의 특징은 기계장치, 눈속임, 영상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상대하기에 사전에 기획된 것도 아니다. 마냥 혼자서 그저 맨손으로 마술을 선보인다. 큰 무대에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트릭임을 추측할 수 있는 여타 마술사와는 차원이 전혀 달랐다.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속으로 혼자 떠올린 글자, 숫자 등을 독심술로 읽어내는 것은 예사였다. 하나님이 자연에 부과한 중력의 법칙을 깨기도 했다. 예컨대 가만히 서있는 그를 덩치가 두 배나 커 보이는 복싱선수가 아무리 밀어도 미동(微動)조차 하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유리병에 아무 흔적 없이 현장의 작은 물건을 넣었다 빼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남의 지갑에 있는 현금을 빌려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액면 금액이 바뀌었다. 색깔, 무늬, 숫자 인쇄 등에 전혀 하자 없이 원본 모습 그대로 말이다. 심지어 크레딧카드도 빌려서 잠시 두 손으로 감싸자 순식간에 그 명의와 싸인이 자기 것으로 변조되었다. 커플이나 부부로 보이는 남녀를 불러 세워놓고는 아무 말 없이 최면을 걸어서(?) 이전의 즐거웠던 동일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까지 했다.
마지막 압권은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즈 강물 위를 아무 도구 없이 맨몸으로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대낮에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템즈 강물로 뛰어들려는(?) 기색이 보이자 지나던 행인이 한둘 모이기 시작했다. 전혀 흔들림과 주저함 없이 물 위를 한발자국씩 걸어 나가자 금방 군중들이 모여들어 셀폰으로 촬영하기 바빴다. 강의 복판쯤까지 천천히 걸어 나가다가 조금 지쳤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기까지 했다. 아무리 조금 왜소해 가벼워 보이긴 해도 발목도 물에 잠기지 않았다. 결국은 해양경찰의 보트를 타고 사라지는 것으로 그 특집 프로는 끝이 났다.
이 마술사는 1982년 영국에서 태어난 스티븐 프레인인데 할아버지로부터 그런 능력을 전수 받았다고 했다. 그의 스승이자 조부는 무엇보다도 “인간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계속 심어주었다고 한다.
그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실연하는 순간 아무래도 성경의 예수님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힘겹게 그것도 강 중간까지만 걸어갔다. 예수님은 한밤중에 배가 뒤집힐 정도의 폭풍우 가운데 갈릴리 바다를 가로지르며 훨씬 먼저 출발한 배를 따라잡으셨다. 베드로까지 물 위를 걷게 하시고 믿음이 적어 빠지려는 그를 건져서 함께 배에 오르셨다.
단순히 능력의 크기를 비교하려는 뜻이 아니다. 아무리 다이나모의 능력이 초인적이라도 해도 예수님과 견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능력보다 이적을 일으킨 상황과 동기와 그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 주님은 오직 사람을 살리는 이적을 일으키셨다. 단순히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목적이 전혀 아니었다. 다른 이에게 이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나눠주시고, 또 폭풍우도 말씀 한 마디로 잠재웠으며, 나아가 죽은 자도 살리셨다.
반면에 다이나모의 마술을 보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반응은 두렵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뭔가 징그러운(?) 괴물을 보는 것처럼 다들 그를 슬슬 피했다. 그로부터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을 받은 커플들도 그냥 어안이 벙벙해 할뿐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마술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감사는커녕, 인간 본성의 변화를 일으킬만한 감동이 전혀 없었다.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음만 강조하고 또 인간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전부였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을 두기 부족하다고 했다.(요21:25) 또 그 모든 기적들은 오직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요20:31)이었다. 예수님의 이적은 인간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서 그분의 사랑 가운데 머물게 하려는 뜻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마술이 자기 자랑으로 끝나는 다이나모와 달리 예수님의 이적은 참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었다.
다이나모를 보면서 느꼈던 더 중요한 사항 두 가지가 있다. 우선 하나님이 인간을 참 귀하고 소중하게 만드셨다는 것이다. 흔히들 뇌의 전체 능력의 10%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마술사도 이런 큰 능력을 나타내는데 선의로 개발한다면 무궁무진한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현재 급속도로 발전하는 눈부신 문명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인간끼리 지상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능력을 하나님을 믿고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정말로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경우처럼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았더라면 물 위를 걷는 기적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주님의 부활 승천을 목격하고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는 그렇게 되었다. 정녕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후에 심히 기뻐하셨고 또 예수 믿는 우리 모두를 베드로와 동일한 자리와 소명으로 부르셨다.
이 마술사의 별칭인 다이나모(Dynamo)는 원래 성경적 용어다. 헬라어 뒤나미스는 힘, 특별히 성령을 받음으로 나타내는 이적적인 능력을 뜻한다.(마7:22, 24:30, 눅4:14, 롬1:16 등 참조, 이 말에서 영어 Dynamite가 나왔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법이다.(갈5:22,23) 다이나모 마술사의 경우처럼 기괴함이나 두려움은 생기지 않는다. 그의 능력은 오직 인간, 그것도 사단에 미혹된 영에 근거했을 뿐이다.
그를 보면서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가 정말로 묘사된 그대로 곧 나타나겠다는 생각도 아주 강하게 들었다. 기껏 다이나모가 놀라운 이적을 보일 수 있다면 예수님의 이적 기록이 결코 신화, 동화,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임을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적그리스도 또한 성경대로 신자마저 현혹시킬 가공할 능력을 갖고 곧 나타날 것이다. 모든 이에게 엄청나게 신기한 모습으로 큰 두려움을 안겨 자기 앞에 무릎 꿇게 만들 것이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흉내를 내며 의로운 기적도 많이 일으킬 것이므로 더더욱 그럴 것이다.
신자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다. 성경기록 그대로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이(利)한 검 즉, 말씀 한마디로 완전히 멸망당해 유황 불 못에 영원히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는 또 이미 예수 믿은 신자는 영광스런 구원의 완성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성경이 절대적 진리임을 오히려 더 증명하기에 이 세대가 참되게 사는 길은 오로지 성경 진리로 돌아가는 길 뿐이라는 것이다.
7/16/2013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요란해진다 해도, 놀랍고 두려운
능력자가 나타난다 해도... 성경 진리로 돌아가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거함이 제일 귀한일임을
다시금 되새기고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