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다가 안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질문]
의지의 자유로 혼이 믿었던 것처럼 의지의 자유로 그 혼이 안 믿는다고 하면?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면? 구원 받는가 아니면 이런 죄는 못 짓는 것인가? 나갔다면 처음부터 안 믿는 것인가요? 어떤 분이 믿음은 평생 지속적이어야 하는데 신자가 얼마든지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는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다가 안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궁금합니다.
[답변]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신자들이 궁금해 하는데 사실 그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극히 상식적으로 접근해도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구원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관계 역할 등에 관해 신학적으로 복잡하게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따질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맥락에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먼저 인간 사이의 믿음에 비추어 생각해봅시다. 한 쪽이 중간에 믿음 관계를 깨트리고 나가면 두 가지 이유뿐입니다. 처음부터 상대를 완전히 안 믿었거나, 처음에는 믿었는데 상대가 믿음을 배신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끼리는 상대에 대해 100% 완전한 믿음을 갖는 것과 반대로 상대에게 그런 믿음을 주는 것 둘 다 불가능합니다. 약간의 의심이 있더라도 어쨌든 끝까지 관계를 지속하겠다는 노력을 하는 것뿐인데 아무리 그래도 상당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신자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신자에게 100% 완전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상대이고, 중간에 인간이 믿을만한 당신의 성품을 변화 파괴하는 일을 할 리도 전무하며, 하나님 쪽에서 신자를 먼저 내치는 법도 절대 없습니다.
그럼 인간이 그분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 두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신자가 처음부터 그분을 순전하게 믿지 못했거나, 여러 고난과 이해 안 되는 일이 생기자 그분을 깊이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둘 다 하나님을 안 믿은 것입니다.
구원 즉, 신자가 믿음을 갖게 된 의미를 하나님 쪽에서 따지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는 대신에 한 죄인을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자연인인 상태에서 인간은 이 세상의 어떤 것을 동원해도, 아무리 경건하고 심오한 도덕과 종교라 해도 스스로는 자기 죄를 절대로 깨끗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다시 따져 봅시다. 그분이 당신의 독생자와 맞바꾼, 그것도 죄를 스스로 깨끗케 할 수 없어서 오직 은혜로 당신의 자녀로 삼아놓고선 다시 이런 저런 죄를 짓는다고 구원 밖으로 내칠 리는 결코 없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낼 필요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요컨대 믿음과 구원의 관계를 인간 쪽 입장에서 파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럼 구원 받은 신자, 성령으로 거듭나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헌신한 신자는 완전한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의 보혈로 맺어진 부자(父子) 관계입니다. 그 관계는 세상 어느 것으로도 설령 아들의 계속되는 죄라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구원을 준 신자라면 제 발로 구원 밖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믿음과 구원을 인간 쪽 시각에서 파악하려니 자꾸 이런 의심이 생깁니다. 교회에 중직을 맡아서 오래 동안 아주 잘 믿고 주변의 칭찬과 존경을 한 몸에 받다가 갑자기 죄로 타락해 교회 출석도 그만두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자신이 믿음을 건너 찬 것 같습니다. 스스로 믿음 밖, 구원 밖으로 나간 것 같습니다.
이는 둘로 나눠서 따져 봐야 합니다. 우선 그 사람의 평생을 어느 누구도 지켜볼 수 없습니다. 일시적인 나태 타락으로 언제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교회 밖에 나가서도 정작 본인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반면에 육신의 쾌락에 젖어 회개의 영이 완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자를 믿음을 걷어찼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죽을 때까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믿지 않은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있다면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죄 중에 있든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멀리해도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심령이 눌립니다. 나아가 성령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해서라도 회개할 기회를 마련해 주십니다. 평생 안 돌아왔다는 것은 이런 역사가 전혀 없었다는 뜻으로 성령이 내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믿음이 없어서 구원 받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식의 혼란은 ‘구원’과 ‘믿음’과 ‘경건한 교회생활’ 셋을 완전히 동의어로 혼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입니다. 이 셋은 각기 다릅니다. 구원은 하나님만이 베푸시는 전적 은혜입니다. 믿음은 그 은혜를 입은 자가 평생토록 보여야 할 반응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해서 그 둘을 같은 의미로 보시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 받은 후의 반응이 믿음입니다.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 믿음이 구원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구원을 받기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게 아니라 교리에 대한 인간 쪽에서 동의 분석 판단 결심 등을 거치는 과정은 사고활동 즉, 눈에 안 보이지만 행동입니다. 남은 못 믿었는데 자기는 믿었기에 인간 쪽에서 구원 받을 자격과 조건이 있는 행위 구원이 되어버립니다.
교회생활은 구원 얻은 후에 생긴 믿음으로 반드시 또 일차적으로 행해야 할 신앙 활동일 뿐입니다. 교회 활동이 구원과는 물론 믿음과 아무 연결 고리가 없는 신자도 꽤 많습니다. 엄격히 말해 신자(信者 believer)가 아니라 교회멤버(敎人)입니다. 예수님도 다시 오시어 쭉정이와 알곡, 불에 태울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눌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아주 믿음이 좋고 구원 받은 것 같았는데 스스로 박차고 나가는 자들이 항상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믿음을 선한 도덕적 행위나 경건한 종교적 관습으로 측정 평가 판단해선 안 됩니다. 믿음은 방향의 전환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성품이 선하고 의로워지고 선행도 많이 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의롭다 칭함을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에 죄의 본성이 남아 있고 계속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의 경우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그에 따라 인생의 목적 삶의 방식이 이전과 정반대로 실제로 달라져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분의 신자에게 지속적인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이미 방향이 완전히 전환되었기에 지속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또 정말로 구원 받고 믿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 드린 대로 죄를 안 짓는 지속적 선행이 믿음의 뜻이고 그래서 구원 밖으로 나갔다는 식으로 설명한다면 틀린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질문에 답변하자면 하나님이 구원 주신 자에게 취소는 없으며, 인간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믿지 않은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믿다가 안 믿으면"이라는 말은 기독교 신앙에선 틀린 말입니다. 믿음이 구원을 얻는 전제 조건이면 성립되지만 믿음이 구원 주신 은혜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는 따로 살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인 셈입니다.
12/13/2017
Sihoon 형제님
'"니고데모는 믿음이 있었는데도 (당시)구원을 얻지못했다'라는 명제가 괴롭힙니다.
(물론 니고데모는 나중에 회심합니다)" 라고 했는데
간단하게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 말씀을 이해도 못했는데 어떻게 믿음이 그 당시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의심이 없어야 믿는다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의심도 안 생깁니다. 아예 못 알아먹고 돌아갔습니다. 제 설명을 그가 첫 대면에 믿음이 있었는데도 당시 구원을 얻지 못했다라고 받아들여선 곤란합니다.
형제님이 추가로 설명한 대로가 맞습니다. 니고데모는 구원으로 예정되어 택함은 받았으나 그 만남에선 성령이 아직 역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 후에 언제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성경에 없지만 성령이 역사하여 구원 얻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구원이 대부분 점진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이단처럼 한 번의 사건으로 믿음이 생기고, 한 번에 구원 받는다고 단순히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샬롬!
목사님 평안하신지요. 자유의지와 구원에 관하여
1. 믿음도 성령님께서 작업하셔야 믿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는 것인데
믿음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성령님께서 작업하시지 않은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두 구원얻길 바라시지만, 성령의 작업은 선택하여 작업하신다라는 개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작업만 하시면 모두 구원얻는것 아닐까요?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것이 기계적 구원이라고 한다면,
구원에 있어서 '믿고자 하는마음'은 성령의 작업과는 별개로, 개인의 자유의지가 들어간다라고
볼수 있는것인가요?
종합하여 구원의 기작에 대해 정리해볼때에
성령님께서 작업하심 -> 개인의 구원허용 -> 구원o
성령님께서 작업하심 -> 개인의 구원거절 -> 구원x
성령님께서 작업하지 않으심 -> 개인의 구원허용 -> 구원x
성령님께서 작업하지 않으심 -> 개인의 구원거절 -> 구원x
이렇게 구분지어 볼수도 있을까요?
<결론>
목사님의 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에서,
[나아가 인간끼리는 선물 받는 사람이 거부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인간이 거부할 수도 없을 뿐더러 거부할만한 사람에게 주실 하나님도 아닙니다]
라는 문장을 보니 그 해답이 있는것 같습니다.
실제로 성령이 작업을 해도 거부할 사람이 존재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피해서 믿음을 수용할 자들에게만 작업을 하시는것 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유의지가 작용을 한다는 말이 맞지만, 애초에 자유의지의 방향이 정해진 신자에게
작업하는것 이기에 (당사자도 느끼기 힘듬) 예정인것입니다.
어떤 이단처럼 한 번의 사건으로 믿음이 생기고, 한 번에 구원 받는다고 단순히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은 단번에 얻는것 아닌가용?? 믿음이 생기는 시간차에 대해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표본에 대한 실험 논문도 찾기 힘든게 실정이고..성화는 점진적일수 있을것 같습니다
아 복잡해ㅠㅠㅠ 정신이 분열될거 같습니다 ㅋㅋㅋ
정신분열된후 누가 찾아와주기나 할까요 ㅋㅋ 참 인생은 고통 인거 같습니다
사고사로 죽는 이들을 볼때에, 하나님 제가 대신가면 안됩니까 간절하게 기도하지만 묵묵부답이시네요
Sihoon 형제님 전혀 죄송할 것 없습니다. 제가 깜박하여 미처 답글을 못 달았기에 제 잘못이고 제가 송구합니다. 구원의 과정 또한 성령의 간섭으로 자기가 거듭났음을 본인의 지정의로 인식하여 앞으로 주님 뜻대로 살기로 결단 헌신하는 데까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점진적으로 이뤄집니다. 그 전에 하나님이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 사람에게 가장 합당하게 사탄의 노예가 되어 견고한 진이 쌓인 그 심령을 계속 노크 터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랑비라도 많이 맞다보면 옷이 흠뻑 젖듯이 어느 샌가 예수님이 좋아지고 십자가 구원 진리를 깨달아 믿게 됩니다. 자신이 거듭났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믿음의 결단을 하는 것은 분명히 일회적이요 과거에 일어난 일로 다시 일어날 수 없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 주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사랑의 손길을 수도 없이 베풀어주셨다는 점에서 구원도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어떤 이단은 특정한 한 시점의 한 가지 사건에서 특정한 성경구절 하나로 회심하는 체험이 있어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가능할 만한 영적 천재는 없습니다. 물론 직접적이고도 초자연적 사건으로 하나님의 실존하심과 자신을 사랑하심에 대해선 단번에 알 수도 있게 하지만 십자가에 드러난 예수님의 구원진리 앞에 항복시키는 데는 그 기간의 장단이 사람마다 다를 뿐 다시 말하지만 수도 없이 자주 하나님이 사랑의 노크를 하신 연유입니다. 이런 점에서 차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샬롬!
"하나님의 노크, 구원의 성령의 작업, 문밖에 두드리니" 등은 모두 구원의 점진적 과정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바울의 회심의 경우도 단순히 초자연적 일회성 구원이라고 이해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빌 3:4-6에서 자신에 대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들을 열거했지만 그 모든 지난 삶도 사실은 하나님이 그를 구원으로 이끄는 점진적 과정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를 율법의 최고 전문가로 30년 넘게 훈련 준비시킨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와 십자가의 은혜를 가장 잘 대조 변증시키서 신약서신서들을 작성케 하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에 구체적 설명은 없어도 스데반의 순교 사건도 그에게 큰 영적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행7:58-8:3) 일반신자도 오랜 기간 하나님의 노크를 받다가 어느 순간 예수님과 인격적인 대면을 하고 믿음의 결단을 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여정은 사람마다 그 계기 과정 결단의 시기 방식 등등 다 다르며 각자에게 가장 합당한 모습으로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베푸시는 것입니다. 샬롬!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이 구절보고 구원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요
복잡한데요 일단 최대한 간략하게 묻자면
이 구절은 불신자에게 하는 말씀이신가요? 구원받은 신자에게 하신말씀이신가요?
어떤 정통 블로거는 교회에게 하신말씀 즉 신자에게 하신 말씀이라면서
세상적 부요를 추구하는것에 대해 비판하는 말씀이라고 하셨고
(예수님이 들어와 내맘에 채워져야 한다는뜻)
많은 일반 기독교 답변들은, 불신자에게 하는 구원선택에 대한 강요 말씀이다라고 하는것 같습니다.
1) 구원받은 신자에게 하신말씀이라면,
문밖에서서 두드린다는 표현, 혹시 구원탈락이 가능하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
구원받은 신자들도 죄나 세상적 도취에 취할때에 슬퍼하시고 안타까워하셔서
그만큼 간절히 나와 함께하고 싶어하시다는 강조어구이시겠죠?
2) 불신자에게 하신말씀이라면,
문밖에서서 두드린다는 표현, 예정이랑 연결되어 매우 복잡하게 사고가 발동되는데요 (또 ㅠㅠ)
예정된자들이 아닌 불신자들, 즉 예수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하신말씀이라는 한정에서,
성령님께서 한 개인을 작업하셔야, 믿는 믿음도 마음에 생긴다고 알고있는데 (맞나요?)
불신자는 성령이 작업을 해도 거부할것을 하나님께서도 이미 아시기에, 그러한 자들은 피하시고
성령님께서 구원을 자유의지에 수용할 자들에게만 작업한다는 (대충이렇게 예정을 이해해 왔거든요)
그러한 설정아래, 문밖에서서 두드린다는것은 성령의 작업 허락 여부를 묻는것이 아니라
(성령이 작업되기전인 개인은 죄에 깊이있기에, 성령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애초에 없음,)
하나님을 무조건 거부하는상태,
그만큼 예수님께서 간절히 모든 인류가 구원을 얻기 원하신다는 마음을 표현하신건가요?
<결론>
즉, 문밖에서 계속 두드린다는 표현이 불신자의 상태와 연결시켜 볼때에 이해가 잘 안갑니다
불신자는 성령께서 작업을 하지 않으실것이고 할필요도 없을것인데, 문밖에서 두드린다는것은
결국 구원받은 혹은 결국 구원받을 신자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밖에 결론이 나는데요
맞나요? 맞겠죠?
<결론2>
문밖에서서 두드리노니
결국 이 말은,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구원받을 신자에게 하신것이고
이것의뜻은 바로 목사님께서 언급하셨던 '점진적인 구원'의 증거가 되네요!!
현대어로 표현하면 이럴것 같습니다
"넌 구원될거란다, 그런데 그 구원은 너가 한번에 허락해서 되었던게 아니라 예전부터 내가(예수님)
계속 두드렸었단다"
결국 구원의 과정에 대한 말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말이 불신자에게, 마음을 열어달라 나를 믿어달라 라는 예수님의 요청의 말씀으로 느껴졌었는데
그게 아니네요?? 굉장히 충격적이네요
저는 매우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이것때매 매우 괴롭습니다 ㅎㅎ;
무쪼록 평안하시고 한해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을 의지적으로 끊어야 함에도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기에 즉,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증상이 이미 나타났기에 상담 투약 같은 치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조절하고 또 이런 강박증적인 증세를 의지적으로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정기적으로 치료 받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계시록 3:20의 말씀을 해석함에 가장 기본적인 전제 둘을 놓치고 있습니다.
1) 교회 안에도 쭉정이 즉, 구원 받지 않은 불신자가 많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이라고 해도 아직 믿지 않은 자들을 향한 성령의 계속적인 간섭을 하고 있다는 뜻의 말씀입니다. 또 교회에 주신 말씀이라 이미 믿은 신자더러 주님과 항상 교제 동행하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됩니다. 둘중 하나만 옳다고 고집하면 안 됩니다. 마침 주신 질문에 따라 불신자를 향한 성령의 노크라고 답변드린 것입니다.
2) 무조건 불신자라고 구원 밖에 있다고 단정지어선 안 됩니다. 불신자 중에 구원으로 택한 자들은 앞선 답글의 바울의 경우처럼 계속해서 하나님은 두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택함 받지 않은 자들은 우리가 전혀 모릅니다. 어떤 이의 구원을 제 삼자가 평생을 두고 관찰할 수 없고 관찰한들 그 구원 여부를 알지도 못합니다. 예정 안된 자들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 교리적(그것도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우리가 논의하거나 궁금해 할 사항이 전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완벽하고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에 속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문제까지 궁금해 하니까, 말하자면 내 신앙의 성숙과는 아무 연관이 없으며 성경이 구태여 말하지 않고 신학적으로 구태여 따질 필요도 없는 부분까지 파고드니까 제가 염려되어서 투약 치료 상담을 강권하는 것입니다. 샬롬!
한 회원분께서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이멜로 문의해 온 내용입니다.
간략하게 결론만 말씀드렸는데 다시 조금 정리해서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이 주제에 대해선 이 사이트의 공지 글인 예수 믿은 후에 짓는 죄와 구원의 관계
도 꼭 함께 참조하시기 바립니다.
기타 구원에 관한 유사한 내용의 질의 답변들이 본 사이트에 다수 있습니다.
맨 아래 검색창을 클릭하여 찾을 내용을 '제목'으로 바꾸시고
키워드 '구원'만 타이프인 하시면 관련 글들이 뜹니다.
더 범위를 넓혀서 구원에 관한 모든 글들을 보시려면 홈페이지로 돌아가
왼쪽 하단 [지난 글 찾기-내용주제별 찾기]를 클릭하여 [구원]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