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예수를 믿는데 누구는 부유하고 누구는 가난합니다.

 

물론 예수님 안에서 가난해도 부하다고 하고,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한다지만 

 

인간인 이상 비교의식이 될 수 밖에 없고, 특히나 예수 믿는 사람 '끼리의' 비교의식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똑같이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기쁨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지만 

  누구는 주님도 있고 재물도 있는데 반해서 나는 주님만 있고 재물은 없다면 억울하다.

  

  불신자와 비교해서는 차라리, 저 사람은 예수는 없고 재물은 있지만 나는 재물은 없지만 예수는 있다는 것이

  성립하는데 나에게는 예수 밖에 없는데 나에게 밖에 없던 예수마저 저 부자가 가져가면 나는 부자에 비해서 뭔가"

 

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많은 사람들에게 들 것 같습니다.

 

특히나 '공정과 공평'에 매우 민감하고 내로남불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현 세대의 사람들에게는요. 

 

 

'재물과 부' 에 관해서는 그 자체가 악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악도 아닌데 예수도 믿고 재물도 많으면 다다익선 아닌가, 그러면 금수저 신앙인은 무슨 연유로 금수저로 태어났고

흙수저 신앙인은 무슨 죄로 흙수저로 태어났나"

 

라는 것에 대해 명확한 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전에 박목사님께서 예시로 들듯이

 

아파트 경비원이 대기업 회장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며 예수를 전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받은 신자의 모습

 

이라고 하셨는데 저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것이 아파트 경비원이 대기업 회장보다 '가난한 신앙인' 이어야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하니까요. 대기업 회장도 예수를 믿으면 아파트 경비원에 비해서 '일반적인 상식으로 접근하면'

 

재물면에서 우월하니까요.

 

그래서, 여기 잘잘법 노진준 목사님은 '재물과 부'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히십니다.

 

영상링크도 올리겠지만 영상보다 글이 편하실 분들을 위해서 제가 정리한 부분도 올리겠습니다. 

 

저도 이 영상을 보면서 억울함이 좀 가라앉기도 하고 지적으로 해소도 되어서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영상 올리고 간략 글 적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dub9_y8994

 

정리하고 다 적으면서도 울컥하기도 하고 해소되기도 하네요.

 

물론 박목사님은 다른 재물관을 가지실 수도 있지만 일단 공유해 봅니다..

 

혹시나 다른 견해가 있으시거나 하시면 댓글주시면 또 배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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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과 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는 것에 대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선물' 이라고 했을 때도 이에 대해 '어떤 성격의 선물인가' 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우리는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실한 신앙인이 재물과 부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것은 축복이다' 라고 한다면 여기에 대해 이 '선물'의 성격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1. 재물을 선물로 주신 것은 해당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선물의 종류는 일종의 '보상' 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이라는 '선물'을 '보상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받은 재물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써도

 

(윤리적 성경적으로 그른 방향만 아니면) 잘못이 아니다.

 

(선물이라는 것은 이미 받은 사람에게 넘어가는 순간 '소유권이 넘어가는 것'이라는 근거로 이 말씀을 하신 듯 합니다. 그리고 원론적으로 보통 선물을 받은 사람은 선물을 받는 순간 그 선물을 자신이 원하는 바 대로 쓰는게 맞기 때문에 논지도 되고요, 괄호는 제 의견이자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보상'의 측면으로만 한정하게 된다면, 내가 십일조를 많이 내서, 내가 교회 봉사를 많이 해서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셔서 큰 복을 주셨다, 재물이 그래서 축복이다 라고 한다면

 

거기에 '재물관'은 없을 것이다. 주신 것 내 마음대로 쓴다고 해도 잘못은 아니니까 말이다.

 

(노목사님은 '보상의 측면'을 여기까지만 말씀하셨지만, 제 생각으로는 '보상론'으로 하는 재물에 대한 '선물론'은 들으면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포도밭에서 1시간 일한 노동자와 12시간 일한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삯을 주신 비유와 어긋나기도 한 것 같고요)

 

 

 

2.  재물을 선물로 주신 것은 해당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표현 방식으로 '선물'을 주기도 한다

 

제가 나이가 60이 넘었지만 생일날이 되면 80이 넘은 제 노모가 제게 선물을 해주신다. 

 

만약 선물이 '보상'으로만 의미가 있다면, 당연히 제가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제가 어머니께

 

선물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또 제 아이들에게 선물 주는것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영상에는 없지만 여기 부터 역접의 '그런데'라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표현 이라기에는

   불합리한 예시가 나옵니다)

 

제가 1970년 대 미국에 갔을 때 경제적으로 조국도 어려울 때 였기에,

 

미국에 온 분들은 미국에 온 것이 굉장한 기회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이민교회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기도가

 

"지금 한국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아프리카는 굶어죽는 자들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우리는 특별히 사랑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미국에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였다.

 

그런데 당시 청년이었던 제가 듣기에 마음에 불편했던 것이

 

"미국에 있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라고 기도한다면

 

   한국에 있는 신자나 아프리카에 있는 신자가 우리의 기도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할까?'

 

라는  것이 굉장히 컸다.

 

하나님이 왜 '특별히' 사랑하셨을까.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모든 것이 주어진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걸 '특별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교회가 성장하고 나면, 성장한 교회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우리는 특별히 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 교회를 사랑하셔서 부흥시켜주셨다"

 

라고 기도하는데, 저는 그 기도 자체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그 기도를 들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이 제법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개척교회 목사님이나 오랫동안 시골에서 목회하셨고 마음과는 달리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부흥하지 못한 교회의

  목사님과 지체들을 의식하신 말씀 같습니다.)

 

"왜 나는 사랑하지 않지? 왜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이렇게 힘들게 하시지? 

 

  왜 그 '특별한 사랑'을 나에게는 안주시고 '일반적인 사랑'만 주시지?"

 

그래서 이런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이라면, 오히려 상처를 받게 될 사람이 많다고 본다.

 

재물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것이 '특별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것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는 인정하지만

 

우리가 한 행위에 대한 '보상'이거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기 보다는

 

또다른 한 종류의 성경이 말하는 '선물'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선물의 종류가 '은사' 입니다.

 

 

 

3. 재물을 선물로 주신 것은 해당 신자에 대해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것이다.

 

 

이쯤 말씀 드리면, 어떤 분들은 이의를 제기하실 수 있다고 본다

 

분명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 대해서 장수를 주시고, 복되게 하시고 재물을 주신다고 분명히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는 성경을 조금 구속사적으로 봐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구약의 말씀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완성되는 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제사와 성전의 예시에서 예수가 오셔서 완성되어서 더 이상 하지 않는 예시 드셨습니다.)

 

...(중략)...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성전으로 우리와 성령님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신약에서는 성전건축을 말하지 않는다. 성령, 그리스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라고 하신다.

 

이 개념에서 완성된 개념이 '재물'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백성이 됨에 대해 풍요로운 것에 대해 보여준 것이 '장수와 형통, 부' 이다.

 

그러면 이러한 풍요로움이 기록된 것은 모두 '구약'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더 이상 풍성한 삶을 이런 것들로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모두 이미 풍성한 삶이 '완성'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면, 신약에서는 단 한번도 예수를 믿은 자가 부요하게 되었다거나, 혹은 장수하게 되었다거나, 세상적으로 형통하였다는 것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감탄이 들긴 했지만 아라마대 사람 요셉과 산헤드린 권력자 니고데모가 떠올랐긴 했습니다...그들은 세상의 권력자이면서 예수를 믿었죠)

 

오히려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셨고, 가난하고 부족하지만 있는 걸로 족하다고 말해야하고,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고민하지 말라고 하신 맥락이 모두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 모든 것들이 완성되기 때문' 이다.

 

그래서, 우리는 '은사'로서 재물을 봐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은사에는 특징이 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실 때 각 사람에게 주실 때, 성령의 뜻대로 그가 원하시는대로 나눠주신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실 때, 그 재물의 분배는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적게 주시고, 누군가에게는 많이 주신다.

 

물론 우리는 너무 힘들어서 

 

왜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은 많이 주실까. 왜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 모태신앙이고,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다 가지면서 신앙마저 가졌는가 

 

라고 하는데, 저는 답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라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재물을 많이 주시고, 누군가에게 적게 주신다. 

 

이게 주어진 '현실'이다. 

 

어떤 목사는 교회가 성장하고, 어떤 목사는 아무리 열심해도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도 하나님의 일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본다면, 우리는 은사의 두 번째 특징을 주목해야 한다.

 

성경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라고 하시고 그 다음에 고전 13장에서 사랑장이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사 중에 가장 큰 은사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 그 자체는 은사가 아니다. 

 

이것 보다 더 큰 은사'들'이 있어서 이것을 사모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는 방언을 하는 사람도 있고 하면서 은사를 가지고

 

누구는 많이 받았니 적게 받았니 하면서 다툼이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바울이 '다 선지자겠느뇨 다 선생이겠느뇨' 하면서 은사의 개수를 가지고 우열을 가리는 것을

 

막았고 그 다음에 나온 것이 13장 사랑장이다.

 

어떤 게 '더 크냐' 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방언과 사랑이 있는 방언을 대조하고 있다.

 

그러면 사랑장을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은사를 주셨으면, 그것을 더 크게 사모하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

'사랑'을 가지고 해라. 그러면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은 이런 것이다 (13장)

 

그래서, 하나님이 너희에게 재물을 은사로 주셨느냐?

 

그러면 그 재물이 '큰 은사'가 되게 하라 (재물을 크게 하라는 말이 아님)

 

그 재물을 가지고 남을 무시하고 교만하고 자기 유익만 구하고 무례하게 군다면,

 

하나님이 주신 그 '재물이라는 은사'는 작은 은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큰 은사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은사를 주셨든지, '큰 은사'가 되게 사모해야 하고, 그 방법이 곧 '사랑으로 하라' 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야하는 것은 

 

재물이라는 '은사'는 성령께서 자기 뜻대로 사람들에게 주시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에서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재물은 은사이다' 라는 점에서 생각한다면, 은사는 곧 '사명'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은사는 사람을 섬기거나, 세상을 섬기거나,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이 그 특징을 갖는다

 

내게 하나님이 재물을 주신 것을 나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거나 '특별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마음대로 누리면 그만이겠지만,

 

하나님이 내게 '은사' 로 주신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받은 재물을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세상을, 그리고 교회를 섬기기 위해 사용하는 '사명'이 있다고 보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라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남겼는가 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나온다

 

...(중략)...

 

달란트는 '얼마나 받았는가' 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남겼는가' 라는 점에서 봐야한다는 것이다.

 

제 주변에도 크게 성장한 교회가 있다.

 

그런 교회의 경우 교회가 저절로 성장하게 하셨다.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교회의 성장 비결'에 대해서

 

새벽기도때문이다/전도를 해서 그렇다/ 설교가 좋아서 그렇다. 

 

라는 심리적, 사회적 요소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싶지 않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성장한 교회도 있고

 

그렇게 했지만 성장하지 못한 교회도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교회가 '성장했다' 라는 것에 감사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성장시키셨다면 하나님께서 이 교회가 성장한 것을 통해서 무엇을 기대하고 계신가

 

라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물이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단순히 '선물로 주신것이니까 내가 마음대로 누린다' 라는 마음만을 가지는 것은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재물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너 몇 개 가졌니? '라는 질문을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질문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억울하다 싶을만큼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다 못나서가 아니다

 

잘 안풀린다. 세상사람들은 그냥 실패라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 인생을 보면, "너 몇 개 가졌느냐?" 라고 묻지 않으시고

 

"몇 개 남겼느냐?" 라고 물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물이 많고 적음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굉장히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 자체에서 뛰어넘어야 한다.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낙담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재물이 많은 자는 그것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더 긴장하며

 

살아가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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