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로 나무를 알아본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질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7,18)고 가르친 말씀을 읽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듯이 가식적 위선적인 사람은 단순히 그 열매를 보고 믿음을 판단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 그들의 치부가 백일하에 들어날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려야만 하는가요? 아니면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열매가 좋은 열매이고, 로마서 1:29-31을 나쁜 열매라고 판단해도 되는지요?
[답변]
주님이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 다는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당신께서 강조하고자 하는 영적 진리를 상징적 유비로 함축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두 가지 뜻의 유비인데 우선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뜻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결국은 나무들은 자기 열매 외에 다른 열매를 절대 맺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지 아무리 가도 배나 감을 맺을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문맥상 거짓 선지자들에 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참고로 이런 비유는 물론 성경구절을 해석 적용하는 데에 반드시 감안해야 할 원칙 세 가지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그 동안 누차 아주 강조한 내용입니다.
첫째 인용하신 구절 자체는 비유인데 비유 자체의 해석에 몰입하지 말고 비유를 통해 강조하려는 진리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야 합니다. 둘째는 항상 문맥 안에서의 주제에 맞는 뜻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셋째로 성경은 도덕교과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의 거룩한 통치를 가르치는 책이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 문맥의 범위를 결정하고 그 안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상기 구절의 경우는 최소한 7:15-23을 전체로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작은 동그라미로 구분되어 있는 것에 신경 쓰셔야 합니다.) 그 중에 비유 부분은 15-18절(혹은 20절까지)입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드신 비유를 근거로 이어서 영적 진리를 설명하는데 19(혹은 21절부터)-23 절입니다. 해석과 적용의 초점은 반드시 후반부인 영적 진리에 두어야 합니다.
비유 자체의 뜻으로는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할 수 있다는 분별법보다 각 나무들이 결코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데에 초점이 더 모인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초등학생 중에도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무엇인지 모를 바보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가 포함된 전체문맥에서 주님이 강조하려는 주제는 19절에서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1절에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21-23절)고 했듯이 마지막 때의 심판입니다. 또 그 심판이 적용되는 대상은 15절 서두에서 주님이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들에게 경계하라고 당부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결국 문맥상의 주제는 당시의 위선적 형식적이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심판을 경고한 것입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예배 구제 기도 금식 선행 십일조 등에 가장 열심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 칭찬까지 받았던 의로운 자들의 대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장로직과 산헤드린 공회원 직을 차지하고서 스스로 제정한 여러 전통과 유전으로 일반 대중들을 종교적으로 얽매고 백성들의 삶의 여러 분분에서 교묘하게 수탈했습니다.
그럼에도 성전이나 일상에서 가장 많이 “주여, 주여” 부르며 종교적으로 가장 열정적이고도 경건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귀신까지 쫓고 많은 종교적 업적과 선행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미혹된 영혼을 안타까이 여긴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 기득권을 확장하고 그들 계층만의 부와 명예와 권력만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그 때에, 실은 이미 다 분명히 아시고 계시지만, 그들을 배척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23절) 그러니까 일반 유대 대중들도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잘 분별하라고 말씀을 시작한 후에(15절)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비유와 비유에 따른 부연 설명으로 경고한 것입니다.
우선 양의 옷을 입었지만 이리라고 합니다. 겉으로 경건하고 의로운 모습은 누구나 가장 할 수 있지만, 그들 사역의 목적이 돈이나 권력에 있지 않는지 주의해서 살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거짓 된 교회 지도자들의 사역과 일반 교인들의 목적이 돈으로 향하고 있기에 본문 말씀이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유대 대중들 거의 대부분이 그들의 선동에 넘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대중들이 믿음을 가지는 이유 또한 하나님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것이라 메시아도 로마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만 바랐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죄를 씻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나 대중 모두가 나쁜 나무였고 결국 나쁜 열매를 맺은 모습이 구원과 심판을 가르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선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들 모두 궁극적인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전혀 그 사실을 끝까지 알지 못하고 여전히 거짓된 위선만 행했지만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의 실상입니다. 신자들이 사실은 현실 형통을 바라니까 기복적인 신앙을 가르치는 교회에 몰려듭니다. 또 그런 번영 신학을 가르치는 일부 목회자들은 죄송하지만 뒤에서 온갖 나쁜 짓을 자행하여 신문 지상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들 모두는 성령 안에서 참 생명으로 거듭난 적이 없고 교리로만 십자가 복음에 머리로 동의하고 어떻게 하든 현실적 복을 받든지, 최소한 액땜이라도 하려고 교회생활만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그 때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살펴본 대로 본문이 말하는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가 질문자님이 짐작하신 갈라디아서와 로마서가 말하는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비유이기에 진리를 상징화하는 의미로 제한되었고 또 직접적으로는 거짓 선지자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인용하신 구절은 모든 신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특별히 성령의 열매의 경우는 제 삼자가 육안으로 판단할 수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신자 개인이 거룩해지는 것, 그것도 내면의 성품과 영혼이 그렇게 되는 일에 관한 설명입니다. 성령의 인도 간섭으로 신자의 속에서부터 자연히 우러나오는 변화이기에 금지할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오래 참음, 충성, 절제 등에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측면도 있겠지만 질문에서 궁금해 하는 것처럼 막상 그 본인이 위선을 떨면 삼자가 그 정확한 내면은 알 수 없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말하는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에게 충성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 종교집단이나 자신의 탐욕적 이기적 목적에만 충성하고 있어도 외적으로는 그럴싸한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일반 신자가 정확히 분별할 수 없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롬1:29,30) 이 구절의 뜻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바로 앞의 28절에서 말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의 상태”에 관한 설명입니다. 예수님이 조심하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또 거짓 선지자일수록 겉으로는 더욱 조심해서 선을 가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많은 신자들이, 심지어 목회자들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예수님이 도덕적 율법적 계명을 심도 깊게 가르친 차원으로만 접근하는데 그래선 안 됩니다. 천국 복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차지한다고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본문 말씀대로 마지막 때의 심판으로 결론 맺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거기다 실제로 주님의 가르침대로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에 바울이 말한 대로 산상수훈 같은 종교적 도덕적 계명(광의의 율법)은 복음으로 이끄는 몽학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제자들더러 거짓 선지자를 경고하라는 의도로 하신 말씀이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계속 말씀드린 대로 선을 가장해야 하는 거짓 선지자이므로 그 치부가 평생 드러나지 않고 죽을 수 있습니다. 제 삼자가 나쁜 열매가 맺히기를 보려고 기다려도 허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단 교파의 경우 그 지도자와 추종자 모두 아무리 진리를 가르쳐주어도 완전히 귀를 닫고는 스스로 자기들만의 의를 뽐내지만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되듯이 말입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 적용할 때에 가장 먼저 앞뒤 문맥을 살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본문이 포함된 문맥을 결정하고 그것의 장르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단순 사건의 서술인지, 영적 진리에 대한 선포인지, 사람들 간의 토의나 대화인지 등등을 말입니다. 마지막 대화나 토론의 경우는 말을 하고 있는 자가 각기 누구인지, 누구를 향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주제에 대한 말인지 등을 반드시 먼저 따져보아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이렇게 분석하며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꼭 들이십시오. 그러다 보면 성경의 진리가 하나씩 더 선명하고도 은혜롭게 가슴 가득히 채워질 것이며, 그러면 자신의 심령도 그에 따라 조금씩 거룩하게 변화되어질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살아 역사하는 말씀을 통해 신자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풍성히 열리고 그러면 그런 신자를 통해서 다른 이들이 예수님의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상기 예수님 말씀을 뒤집으면 목사나 선교사가 아닌 일반 신자들더러 궁극적으로 참 선지자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라는 뜻입니다.
7/24/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