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2:8-16) 어떤 신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가?

룻기 강해 (6)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2:8-16)

 

보아스의 도에 지나친 친절

 

본문은 추수철을 맞아 떨어진 이삭을 주으려 자기 밭에 온 모압 여인 룻에게 보아스가 친절을 베푸는 내용입니다. 상식적 판단이나 당시의 관습은 물론 율법에 규정한 의무를 훨씬 넘어선 모습입니다. 한 남성으로서 젊은 이방 여인의 매력에 혹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의 평소 인품이 그랬고 그런 인품을 지니게 된 근거도 여호와 하나님과 순전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친절을 베풀었고 그의 인품과 믿음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봅시다.

 

보아스가 룻을 ‘내 딸아’라고 부른 것은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여인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통상적인 어법입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이나 나오미와 같은 연배로 최하 40대 중반을 넘었고 룻은 아이 낳지 않은 젊은 과부로 오늘날보다 훨씬 조혼을 했기에 20대 초중반으로 추정합니다. 나중에 룻이 자신을 아내로 거두어 달라고 할 때에 보아스가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했다고 말했으니까(룻3:10) 나이 차이가 꽤 되었습니다. 그래서 딸 같아서 도와주니까 혹시라도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장 먼저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밭에서 맘껏 이삭을 주으라고 허락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계속 머물고, 자기 여종들과 함께 있고, 추수꾼들 뒤를 따르라고 네 번이나 신신당부했습니다. 룻에게 말한 것이라기보다는 종들에게 룻을 방해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른 셈입니다. 한마디로 룻더러 네가 필요한 양만큼 충분히 주어가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남자 종들이 곡식을 낫으로 베어서 땅에다 펼쳐 놓으면 여종들이 단으로 묶는 일을 했습니다. 이삭을 단으로 묶는 일도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중노동이므로 젊은 여자들이 맡았습니다. 룻이 나이든 시어머니 나오미를 집에서 쉬게 하고 혼자서만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보아스가 룻더러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했으니 거지가 아니라 자기들 여종처럼 대하겠다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또 소년들에게 룻을 절대 희롱하지 말라고 명령함으로써 다시 룻을 안심시켰습니다. 당시에 젊은 남자 종들이 이삭을 줍는 여인들을 멸시하고 성적 추행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룻더러 자기 여종들과 어울리라고 말한 뜻도 한 주인을 모시는 같은 종들처럼 대해주고 경우에 어긋나는 무례는 절대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소년이 길어온 것을 맘껏 마시라고 허락했습니다. 중노동을 하다보면 수시로 갈증이 나기 마련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물이 귀해 멀리서 물을 길러 와야만 했는데 아끼려고 종들끼리만 나눠마셨습니다. 그런데 룻더러는 목이 마를 때마다 맘껏 마시라고 했습니다. 보아스는 실제로 룻을 자기 종들과 똑같이 대우했습니다.

 

보아스가 선대한 두 가지 이유

 

룻으로선 멀찍이서 따라가며 이삭만 줍게 해줘도 감지덕지할 판인데 과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보아스에게 엎드려 절하며 감사의 뜻은 표했지만 이방 여인인 자기에게 도가 넘치는 친절을 베푸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룻으로선 아직 보아스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전혀 다른 뜻은 없고 오히려 룻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답해주었습니다. 내 쪽의 필요에 따라 너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룻에 대해 좋은 소문을 들었는데 오늘 네가 행한 일들을 보고 받고는 그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했고 크게 감동 받았기에 기꺼이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이해타산이나 사심이라곤 전혀 개입되지 않았고 사실상 네가 나를 이렇게 행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에 대해서 들은 소문은 둘인데 먼저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과부의 처지는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들기에 시모까지 돌볼 여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모압 여인이 시아버지는 물론 남편까지 죽었는데도 늙은 히브리인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정성껏 잘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 룻이 잠시 집에서 쉰 것 빼고는 이름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이삭을 주었다고 하니까 소문대로 룻의 효성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입니다.

 

둘째로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십대 초반의 젊은 과부라면 얼마든지 재혼해서 편안한 장래를 도모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정상입니다. 다른 며느리 오르바도 시어머니를 따르려 했으나 나오미가 간곡히 말려서 고향에 남기로 한 반면에 룻은 기어이 이국땅까지 함께 따라왔습니다.

 

모세가 다시 가르친 율법 신명기에는 모압은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한다고 규정해 놓았습니다.(신23:3) 광야 사십년의 방황을 끝내고 가나안 진군을 앞둔 이스라엘을 모압 왕 발락이 주술사 발람을 시켜서 세 번이나 저주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민22-24장) 그 후에 모압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자를 유혹하여 음행하는 바람에 여호와께 염병으로 이만 사천 명이나 죽는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민25:1-9)

 

모압은 이스라엘이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을 완악하게 대적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엘리멜렉 집안이 아무리 흉년이 닥쳐도 모압으로 이주해서도 안 되고 그곳 여자들을 며느리를 삼아선 더더욱 안 되었습니다. 비록 룻이 고대 관습대로 결혼하여 남편의 국적과 종교를 승계 받아 법적으로는 유대인이 되었어도 베들레헴 사람들의 멸시 천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룻의 인품이 훌륭해도 빈털터리가 된 시어머니를 따라 이국땅으로 이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지가 되어서 구걸한 것으로 늙은 홀시어머니를 부양하며 평생을 함께 과부로 수절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전적으로 여호와만 따르는 굳건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보아스는 효성도 효성이지만 룻의 믿음에 더 감동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보아스

 

보아스는 그래서 룻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모압 여자인 네가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상황인데도 기꺼이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스스로 피해 들어왔기에 여호와는 결코 외면하지 않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네가 나에게 엎드려 절했지만 정작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효성과 믿음에 감동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나보다 더 너를 기뻐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너에게 선하게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시켜서 너에게 그렇게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단지 너의 효성과 믿음에 대한 보상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실천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보아스의 진심을 알게 되자 비로소 룻도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라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나는 아무 자격도 없는데 당신의 하녀와 동일한 대우를 해주셨다고 화답했습니다.

 

보아스는 곧바로 자기가 행한 축도대로 하나님이 주실 복을 다시 그분을 대신해 룻에게 베풀었습니다. 먼저 저녁인지 오후 새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자기들 식사 자리에 초대해 음식을 나눠먹었습니다. 보아스가 종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 것부터 그의 겸손한 인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룻을 동참시켰고 갖고 온 떡을 그들의 초에 찍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초는 발사믹 같이 떡과 함께 먹는 양념인데 피로를 회복시키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볶은 곡식도 배불리 먹고 남을 만큼 넉넉히 주었습니다. 틀림없이 룻이 남겨서 집에 있는 시어머니에게 갖다 주리라는 점까지 고려한 것입니다.

 

그 자리를 떠나기 전에 보아스는 다시 종들에게 대범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라고 했지만 그녀가 떠나고 나서 종들에게 따로 말한 것입니다.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는 명령을 룻이 듣게 되면 이런 동정까지 받을 만큼 불쌍해 보였나 보다라는 자괴감이 들지 않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율법은 가장자리 일부를 남기고 단을 묶다가 부주의로 빠진 것만 그대로 두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아예 자기 경작분의 일부를 따로 떼서 룻에게 주라고 말한 셈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보다 더 많이 주었습니다. 말하자면 다음 추수 때까지 굶지 않도록 아예 나오미와 룻 두 사람의 일 년치 양식을 주겠다는 뜻입니다. 다른 밭의 주인들은 그렇게 까지 베풀 리 만무하니까 처음부터 내 밭을 절대 떠나지 말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어떤 이해타산 없이는 생전처음 만난 이방 여인에게 결코 쉽게 베풀 수 없는 너무나 인자한 조치입니다.

 

룻기는 실은 예수님의 이야기라고 말씀드렸고 그 이유 두 가지도 이미 살펴봤습니다. 첫째 룻이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예수님이 다윗 가문에서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룻의 일생을 예수님이 거룩하게 보호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세 번째 이유가 나오는데 보아스가 바로 예수님을 상징 예표 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풍성하게 배려한 데에는 다시 강조하지만 젊은 과부 룻의 환심을 사려는 의미는 전혀 없었습니다. 보아스의 사환부터 주인이 도착하기 전에 율법에 규정한대로 준수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효성과 믿음을 보고는 그 밭의 주인으로서 가능한 더 많이 도와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성령님이 역사하여 예수님의 긍휼한 마음이 보아스에게 심겨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아무 대책 없는 과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보아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예수님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했고 예수님이 말하는 대로 말했고 예수님이 행하는 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의 신자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습입니다.

 

율법의 추수규정은 제사장 나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 보일 수 있도록 이웃 사랑을 행하라는 최소한의 의무사항입니다. 당시의 열악한 상황 하에서도 이방 세상의 타락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그 최소한의 모습을 보이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믿음이 신실했던 보아스인지라 예수님처럼 율법규정 이상의 더 큰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한 것입니다.

 

룻도 여호와를 진심으로 사랑했기기에 나오미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보아스와 룻은 예수님 말씀대로 율법의 가장 중요한 두 강령이자 율법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두 계명을 실현하는 중입니다. 두 사람이 여호와 안에서 맺어질 부부로서 또 예수님의 선조가 될 만한 온전한 성품과 믿음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조건

 

보아스가 예수님을 예표 한다면 그와 결혼할 신부인 룻은 바로 주님의 신부가 되는 신자를 상징합니다. 룻은 보아스의 신부가 되어서 그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 오늘날의 신자도 하나님으로부터 룻과 같은 풍성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성경적 신학적 과제 하나가 대두합니다. 룻처럼 신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에 쓰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신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훌륭한 효성과 믿음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나서 그에 합당한 당신의 사역으로 불러서 쓰신다고 말합니다. 신자에게 자격과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하나님의 택하여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견해가 옳다고 믿으면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 있다는 속담대로 아무래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복만 우선시하는 믿음으로 변질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 있겠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고 믿기에 점점 그분은 뒷전이 되고 받을 복만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자연히 복을 못 받거나 부족해지면 자기가 뭔가 잘못한 것이 없는지 염려하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는 만큼만 나도 그분을 사랑하고 또 받은 복 중에 남는 것으로만 이웃을 섬기려 듭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나도 그분을 사랑하지 않고 의심 원망 염려하기 바빠서 이웃 사랑에도 손을 놓습니다. 평생토록 믿음으로 담대하게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내는 모습은 거의 없고 복 받거나 자기 고난을 해결하려는 노력만 하기에 그 내면에 확고한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자신의 구원 여부에도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기복신앙이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대부분의 신자들의 신앙 행태입니다.

 

둘째는 자신은 하나님의 택함을 이미 받아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의 일을 하고 있기에 당연히 복을 주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실제로 도덕적으로 선하고 종교적으로도 신실하며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불쌍한 이웃에게도 봉사를 많이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도 받고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아서 말씀을 잘 가르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도덕성 영성이 우월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택해주었다는 교만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영적 분별력이 뛰어나서 십자가 구원 교리를 잘 이해했고 지금도 아주 잘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믿음이 좋지 않다고 차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 중앙에 서서 하나님께 복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떳떳하게 요구하며 구석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는 세리를 멸시한 바리새인이 그랬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복이 부족하다고 여기면 하나님마저 평가 절하합니다. 예수님이 자기들 요구대로 들어주지 않는다고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이 당시로는 세상에서 가장 의롭고 영적으로 뛰어난 여호와의 백성들이었지 않습니까?

 

마지막 세 번째 의견은 아무 자격 공로 없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미리 택하여서 당신의 뜻과 계획에 맞게끔 준비 훈련시킨다는 것입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이 세우신 완벽한 각본에 등장할 배우들을 당신께서 가장 적합한 환경에서 가장 합당한 교육과 체험들을 하게 해서 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세우신 계획이고 또 그 계획에 종말까지 이르는 광대하신 뜻도 내포되어 있기에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그 역할을 맡은 배우는 끝까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이미 그렇게 준비 훈련 체험시켰기에 그들의 실제 삶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거룩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방 여인 룻은 여호와에 대해 아예 알지도 못했습니다. 성경 기록에 없으나 부모로부터 긍휼이 많은 성품과 뛰어난 영적 분별력을 물려 받았을 것입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는 큰 고난을 겪음으로써 그 긍휼한 마음이 더욱 겸손하게 다듬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는 가장 큰 자격이 바로 자신을 부인하는 완전히 낮아짐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자의 특징은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던 자신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은 둘째 치고 그분의 일에 쓰임 받을 자격도 전혀 되지 않는다고 절감합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뿐이고 자신이 행할 일도 언제나 그분의 날개 아래로 피하는 것뿐입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복을 빌어주는 내용도 하나님이 심어주신 그런 믿음을 더욱 잘 가꾸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이런 특별한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이 여인을 당신 대신에 긍휼히 여겨주라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스스로 완전히 낮아져서 여호와의 은혜만 바라며 그분의 날개 아래로 피하는 것은 그분의 거룩한 열매가 반드시 열린다는 소망 아니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분께만 모든 것을 의탁하고선 손 놓고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더러 처하게 하신 환경에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행할 바를 매일매일 성실히 행합니다.

 

룻은 베들레헴으로 이주한 첫날부터 이삭을 주으러 나갔고 보아스도 평소대로 종들을 다스렸습니다. 살펴본 대로 진정한 이웃 사랑의 모습을 실현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이미 마련해둔 당신만의 크고도 아름다운 계획을 실현시키고 있었습니다.

 

종말을 대하는 신자의 자세

 

코로나와 지구온난화로 종말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신자에게도 이 세 가지 견해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첫째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죄 안 짓고 착한 일을 하면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게 막아주시고 백신 맞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더 건강하게 지켜주신다고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코로나는 아무리 방역조치를 잘 해도 한두 번의 부주의로 걸릴 수 있으며 병균이 신자라고 절대 피해가지 않습니다. 누차 강조한 대로 신자가 백신을 맞고 지구온난화 방지에 적극 참여하는 일들은 이웃은 물론 당장의 이세 삼세들을 위해 사랑을 실현하는 조치입니다. 열심히 잘 믿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주신다는 믿음뿐이라면 당장 자기 후손들에게도 관심은 없고 자기 혼자만의 형통을 바라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잘못되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봉사했는데 왜 이런 고난을 주느냐는 불평부터 생깁니다. 하나님은 이웃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 교회봉사가 첫째 계명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둘째는 이미 신자가 되었고 예수님이 함께 하므로 코로나와는 아무 관계없고 아무리 지구 온난화가 심해져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다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주변에 신실한 신자와 목회자들이 코로나로 죽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는 맹신이자 너무나 큰 교만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 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미3:11b)라고 큰소리친 이스라엘의 잘못을 답습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신자가 중병이라도 걸리면 믿음이 약하고 기도를 덜 해서 그렇다는 비성경적 판단을 하고 알게 모르게 비난 차별합니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초대교회 신자들 대부분을 순교하도록 이끈 하나님부터 크게 잘못한 것입니다.

 

종말을 맞는 가장 바람직한 믿음의 자세는 세 번째 견해인데 이 시대 이 환경에서 이 사건을 일으키신 데는 반드시 그분만의 거룩하고 영원한 뜻과 계획이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 사태를 대비해서 나를 준비시켰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 헌신하는 것입니다.

 

몇 번 말씀드린 대로 신자는 백신을 맞는 것은 물론 코로나 백신을 개발할 때에 부작용이 크게 염려되더라도 먼저 실험대상으로 자원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설령 죽더라도 그로 인해 코로나 치료법 연구에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너무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운전면허증에 자신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으면 장기를 기증하라고 자원한 표시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실제로 백신부작용으로 죽을 확률은 교통사고로 죽는 것보다 훨씬 낮습니다.

 

간혹 신자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합니다. 물론 어느 세상 권력도 개인의 자유를 강압적으로 제한할 수 없으며 하나님조차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불어서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도 위배됩니다. 이는 밈음과 상관없이 상식에 속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한 음모론적 종말론에 휩쓸려서 백신을 맞거나 지구온난화 방지에 앞장서라고 말하면 좌파들의 꾐에 넘어가서 적그리스도에게 항복하는 일이라고 비난 정죄합니다. 아무리 종교적 견해가 서로 달라도 도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이런저런 모양으로 예수님과 예수 믿는 신자를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점점 그런 양상을 띠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신자들은 핍박에 조직적으로 항거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거룩하게 살다가 순교도 기꺼이 감수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이겨냈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진리에 바탕을 두고 사탄에 묶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참 사랑만이 사탄을 이겨냅니다. 기독교적인 행위나 관습이 이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현대 민주주이 사회에선 신자가 하나님 뜻대로 거룩하게 살고 있다면 세상이 호응은 하지 않아도 대놓고 핍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식과 이성으로 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에까지 종교적 의미를 붙여서 성과 속으로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세상으로부터 예수쟁이만 유난을 떤다는 반감을 삽니다. 실제로 한국에선 막무가내 교회들 때문에 코로나가 더 확대 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와 신자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것 하나뿐입니다.

 

지금 논의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선행과 믿음을 보고서 들어 사용하고 복을 주신다는 견해도 결과적으로는 맞습니다. 또 이미 당신의 자녀로 택했기에 당신의 일에 쓰임 받게 하고 복을 주시는 것도 옳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견해가 그 둘의 절대적 전제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한 계획이 먼저 있고 당신의 기뻐하는 자를 택하여서 미리 준비시킨 후에 당신의 일을 맡깁니다. 그럼 당연히 선하고 믿음이 좋은 신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고 그 열매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거나 첫째 혹은 둘째 하나씩만 옳다고 간주해선 안 됩니다.

 

신자가 처한 바로 그 자리 그 환경이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던 결과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나머지 모든 것을 선하게 책임질 것입니다. 룻과 나오미의 만남은 물론 본문에서 룻이 보아스로부터 율법 규정을 초과하는 긍휼을 입은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단순히 보아스가 룻의 효성과 믿음에 감동하여서 성의를 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와 주권 가운데 주연배우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하나님이 지금 신자에게 코비나와 지구온난화 같은 사태를 겪게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나를 준비 훈련시켰다고 믿는 신자라면 어떻게 행해야할지 알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서 자기가 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웃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면 됩니다. 앞으로 자신과 주변에 일어날 어떤 큰 사태에도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에 충실하고 있으면 그분의 완벽하신 뜻과 계획은 실현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하고 거룩하신 계획에 아무리 부족하고 자격이 없어도 자신을 산 제물로 온전히 바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갖게 된 것 자체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은혜요 고귀한 권능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신자가 받을 복의 전부이며 따로 더 받을 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바도 그런 자세로 매일을 종말처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9/26/2021)

 


날마다순종

2021.09.26 19:06:43
*.14.99.25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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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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