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2:4-10)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기려면?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6)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12:4-10)

 

칭의 때에 성화는 시작되었다.

 

히브리서는 현실적 종교적 핍박에 져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려고 히브리인 신자들을 위로 격려하는 서신입니다. 그래서 10장까지 유대교의 짐승 제물을 바치는 속죄 제사의 불완전성을 자세히 설명한 후에 그와 대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바쳐진 영단번(永單番, once-for-all)의 완전한 속죄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11장에선 구약 인물 중에 믿음의 증인으로 율법이 규정하는 짐승 제사가 있기 전에 영생을 얻은 선진들 위주로 열거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없어도 하늘의 본향만 사모했기에 당시의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고 현실의 고난과 핍박을 끝까지 인내하며 여호와 하나님만 믿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12장은 ‘이러므로’라고 시작하는데, 아무 공로 없이 십자가 은혜로 구원 얻었고 다시는 정죄함이 없는 신약 신자인 너희는 현실 고난과 핍박을 구약 선진보다 더 잘 이겨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의 가장 큰 특징도 이런 신구약 믿음의 선진처럼 떠나온 본향, 즉 예수님을 몰랐던 삶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앞에 놓인 천국을 향한 경주를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데 혹시 피곤하고 지칠 때는 예수님의 은혜를 회상하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순간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오직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겠다고 바뀜으로써 성화는 사실상 그때 벌써 시작됩니다. 그 후로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성령님의 인도와 주관 아래 성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자가 행할 일은 성령의 법을 의지하면서 영의 생각을 좇으며 끝까지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성화의 본질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새롭게 형성된 관계를 죽을 때까지 신실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 개별적인 사건과 사안마다 선과 악, 의와 죄, 경건과 세속 중에 옳은 일을 선택하여서 의롭게 행동하지 못했다고 해서 성화에 실패했다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새롭게 바뀐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비유합니다. 특별히 사생아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친아버지는 친아들이 한두 번 잘못했다고, 아니 평생토록 감옥을 들락거리며 아버지의 가슴에 상처와 슬픔만 남겨도 그 관계를 끊어버리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또 그렇게 되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당신의 아들로 받아주시기 위해서 하나님 쪽에서 먼저 성령의 간섭을 베풀어서 신자로 예수를 믿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내주하셔서 신자로 육의 생각을 끊을 수 있게 해주시므로 칭의와 함께 시작된 성화도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야만 온전히 이뤄집니다. 

 

징계는 아버지의 뜻

 

그렇다면 신자가 예수님의 가신 길을 따르는 데에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찾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그런 맥락에서 당시 히브리인 신자들이 유대교의 협박에 흔들리게 되는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4절) 외부의 박해를 참지 못하는 일을 죄와 연결한 까닭은 현실의 재물과 권세에 마음이 빼앗기는 죄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끝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신자도 끝까지 참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번 주에 살펴볼 둘째 이유는 구약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미 훈계했는데도 그 말씀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5절a) 그 말씀은 잠언 3:11-12의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인데 5-6절에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현재 겪고 있는 핍박은 너희를 아들로서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것이므로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용한 잠언 말씀이나 이어지는 본문의 설명이 당시의 상황과 저자의 의도에 비추면 조금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징계는 아들이 분명한 잘못을 범했을 때 회개하고서 앞으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말라는 견책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서신을 읽을 히브리인 신자들은 특별한 죄를 범하지 않았고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종교적 이유로 유대와 로마 당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핍박과 멸시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벌을 주더라도 유대와 로마 당국에게 주어야 하고 더 이상 신자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징계로 조치해주어야 옳습니다. 

 

거기다 이어지는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7절)는 말씀은 그 자체로도 아주 모순되어 보입니다. 마치 참아냈는데도 추가로 징계를 주는 것 같은데, 물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리는 없습니다. 당시 상황이나 앞뒤 문맥상 의미의 흐름으로 따지면 “너희가 참음은 고난을 혹은 죄를 이겨내기 위함이라”고 말해야 타당합니다. 그리고 너희가 끝까지 잘 참아내면 하늘의 상급이 따를 것이라는 약속도 덧붙여야 합니다. 

 

만약 현재의 고난과 핍박이 히브리인 신자들에게 책임이 있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는 뜻이라면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밖에서 아들이 학교 일진에게 돈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고 왔는데도 일진은 가만히 두고서 아들에게만 벌을 내린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들은 아버지의 징계에 전혀 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발만 할 것입니다. 이 서신을 읽을 히브리인 신자도 하나님이 아들로 대우한다면서 우리만 징계를 참아야 한다면 차라리 유대교로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을 판입니다. 저자가 당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굳이 징계라고 표현한 뜻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유는 비유일 뿐이다. 

 

우선 인용문은 어떤 주제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진술 중간에 삽입하는 것입니다. 인용문 자체를 저자가 강조하려는 주제와 따로 떼어서 해석하든지, 더 중점적으로 다뤄선 안 됩니다. 지금 저자가 어떤 주제를 강조하려고 그 잠언 말씀을 인용했는지부터 알아내어야 합니다. 

 

이어지는 7~9절을 잘 살펴보면 육신의 아버지와 모든 영의 아버지를, 또 참 아들과 사생자를 대조해서 비교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대조라는 특정한 수사법을 동원했다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특별히 뭔가를 강조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에게 참 아들이라는 것이 본문의 첫째 주제로 봐야 합니다. 

 

인용한 잠언 말씀도 “아버지가 징계하는 것” 자체보다는, 아버지가 아들을 징계하는 목적이 아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므로 “아들은 순종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힙니다. 만약 신자의 잘못과 죄에 대한 징계가 주제라면 인용문이나 비유도 어떤 이유로 징계가 실현되므로 너희는 이렇게 참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따라서 세상만사를 다스리는 하나님이 허락한 핍박이라면 더더욱 끝까지 참아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그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결국 저자가 본문에서 강조하려는 바는 히브리 신자들이 실제로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징계받는다는 의미와는 별개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물론 당시의 히브리 신자들이 죄에서 자유롭지 못했겠지만, 그것은 모든 시대의 모든 신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사항입니다. 본문의 상황에선 그들이 유대교와 로마 당국으로부터 받는 핍박과 멸시는 자기들 잘못과 죄가 아니지만, 부모에게서 징계받는 것과 같은 차원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핍박과 모멸을 끝까지 참아내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너희의 친아버지이고 너희는 그분의 친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신자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10절) 하려는 목적으로 그런 어려움을 주셨다고 결론지은 것입니다.(10절) 

 

만약 혼전 관계로 사생아를 가진 여자와 결혼한 남자는 그 아이에게 법적 아버지로서 의무만 지키면 되지 굳이 사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진정한 사랑의 감정도 잘 생기지 않으니까 악하게만 대하지 않아도 훌륭한 계부가 됩니다. 굳이 징계하여서 아들이나 아내의 미움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친아버지만이 친아들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는 법입니다. 

 

친아들 쪽에서도 훈육의 회초리를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원망 비난하면서 저항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징계를 참지 못하고 호적에서 자기 이름을 파내고서 친구네 아버지를 찾아가 아들로 입적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법은 아예 없습니다. 알코올중독자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아무 이유 없이 허리띠로 아들을 잔인하게 두들겨 패도 차라리 가출은 해도 결코 다른 아버지를 찾지 않습니다. 

 

만약 히브리인 신자가 현재 겪는 핍박을 참지 못하고 유대교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공부 잘하라고 훈계하고 때로 성적이 떨어지면 사랑의 회초리를 때렸는데도 그것이 너무 싫어서 가출해서 고아로 살거나 남의 집 양자로 들어가겠다는 셈입니다. 너희가 정말로 하나님의 친아들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절대로 그럴 수 없고, 피곤해서 낙심하는 것도 그런 관계를 잠시 잊은 탓이라는 것입니다. 

 

역으로 따져서 신자가 하나님의 친아들인지 사생자인지를 구분하는 가장 좋은 기준은 하나님이 사랑의 징계를, 즉 현실 세상에서 핍박과 수치를 겪게 하는지에 달렸습니다. 쉽게 말해 출애굽 한 이스라엘 앞에 홍해와 광야가 가로막았듯이 예수를 믿고 나면 그 인생에 주홍빛 카펫이 깔려 있지 않고 오히려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친아들로서 행할 첫째 의무도 그 징계를 끝까지 참아내는 것입니다. 만약 참지 못하면 사생자임을 반증하는 셈인데, 현실 형통과 자기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로 더욱 성숙되어서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일보다 더 좋고 중요하다고 간주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사회로부터 소외 추방되는 일을 가장 고통스럽고도 부끄럽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참 신자로서 성화를 이뤄나가는 일을 어떻게 선을 행하느냐, 어떻게 악을 저지르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편에 끝까지 붙어 있느냐, 아니면 중도에 세상 편으로 돌아가서 붙어버리느냐로 나눴습니다. 불신 세상이 가해올 핍박의 고통을 참고 또 하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의 멸시를 부끄럽지 않게 여기고 끝까지 자기 길만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해야 한다고 해서 하나님만큼 선해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거룩(holy)이라는 히브리어 ‘코데쉬’는 무 자르듯이 다른 것과 완전히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존하는 유일한 존재로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니까 거룩하신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셔서 당신의 뜻대로 다스리시기에 세상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수많은 다른 점 중에 죄에 찌든 인간과 달리 완벽하게 선하시므로 도덕적으로도 거룩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도 세상에 붙어 있었는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자녀로 불려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도덕적 의와 종교적 경건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고 오히려 그 정반대인데도 당신의 편에 붙여주었습니다. 하나님과 대적하고 있는 불신자와 완전히 구별되었으니까 거룩한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하나님 편에 붙어 있으면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구약의 선진처럼 하늘의 본향만 목표로 삼아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세상 어떤 방해가 있어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합니다.

 

거룩이 유익이다.

 

성화는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평생토록 하나님 중심으로 바뀐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대로 일관되게 또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을 심하게 방해하는 경우가 생겨서 때로 넘어지긴 해도 절대로 궤도 수정 없이 죽음을 무릅쓰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순교의 고통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교회사적으로 순교자가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순교해도 전체 신자 숫자에 비하면 아주 소수입니다. 거의 모든 신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에서, 서서히 세계적으로 그 자유가 제한되어 가지만, 자연 수명대로 살다가 죽습니다. 당장에 저부터도 순교를 감당할 만한 믿음의 그릇이 되지 않기에 하나님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장소나 사역으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신자들이 세상의 핍박을 이겨내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게 된다는 말씀에는 쉽게 수긍합니다. 그러나 핍박을 참는 것이 신자의 유익이 된다는 말씀에는 자기도 모르게 거부감이 생깁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 현실 형통과는 계속 거리가 멀기만 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고난도 제대로 해결 받지 못합니다. 성화의 과정에서 피 흘리기까지 참아야 한다는 권면이 더 부담되어서 때때로 성화를 포기하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신자의 기본 의무는 다해야 하니까 교회에 봉사하는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근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 유익은 포기해버리고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면 되지라고 단단히 마음먹어도 자기 믿음이 자라기는커녕 자꾸 더 후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본문 9, 10절이 그 해결책이며 다른 손쉬운 방안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두고 말장난하거나 단순히 반복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우선 육신의 아버지가 징계해도 참고 복종하는데, 하나님 아버지가 허락하신 일이므로 더더욱 참아내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극심한 박해 때도 하나님의 징계라 참아내는 것만이 해결책이었다면 아무 박해가 없는 평화 시절에 참는 일은 그때보다는 훨씬 쉽지 않겠습니까? 

 

모순되어 보였던 문제의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는 말씀의 문맥상 정확한 뜻은 징계 자체가 유익이고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이 바로 신자의 유익이지 그 후의 추가적 보상이 따로 없으니 전혀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있어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속한 문제이므로 신자로선 잠잠히 그분의 처분만 기다려야 합니다. 더 중요하게는 징계를 참을수록 신자는 더욱 거룩해지고 큰 유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현실적으로 고달프고 부끄럽긴 해도 그것이 궁극적인 진짜 축복을 절대 흔들지 못하고, 그것에 지면 오히려 더 좋은 그 축복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삶에서 체험해야만 참아낼 수 있습니다. 잠시 세속적으로 일탈할 수 있으나 금방 싫증이 나고 절대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고, 내가 행할 바가 아니고, 내가 생각할 내용이 아니라고 절감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과 교제 동행하는 일 자체가 유익이고 기쁨이고 축복이라고 절감해야 참아낼 수 있습니다. 

 

제가 예수를 믿은 후에 큰 결심을 하고서 담배를 6개월 정도 끊었는데, 우연히 다시 피웠더니 너무 맛이 좋았고 이전보다 더 많이 피우게 되었습니다. 흡연이 직접적인 죄는 아니지만, 세상 쾌락과 죄악도 일단 접하게 되면 사람을 더욱 깊이 끌고 들어가서 부패 절망 사망으로 빠트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복 포켓에 남아 있는 담뱃가루에서 갑자기 너무나 역겨운 냄새가 났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조금 전에 담배 피우고 나간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그 냄새를 도무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 건강에 백해무익이고 이렇게 너무 지저분한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싹 달아났고 지금껏 금연을 실현해오고 있습니다. 금연 실천 직후에는 때로 그 결심이 약해졌으나 껌 사탕 은단 등으로 담배에 대한 아쉬움을 해소함으로써 끝까지 그 결심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참아야 할 대상이 본문과는 그 종류와 정도가 다르나 어쨌든 저로선 피곤해지면 피 흘리기까지, 즉 완전히 금연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싸운 셈입니다. 지금은 멀리서도 역겨운 담배 냄새가 나면 그쪽으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그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고 때로 맛있게 여겨졌던 담배 냄새가 갑자기 아주 역겨워진 것은 저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해주려는 성령님의 간섭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세상에서 오는 핍박과 수치가 하나님을 따라가는 일에 백해무익이 되면 몸은 고달파도 정신은 그쪽으로 쏠리지 않게 됩니다. 그 반대급부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이 자기에게 백 가지 복에 백 가지 이익으로 충만히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예수님 쪽으로 완전히 전환된 자에겐 그분을 따르지 않으면 정말로 죽음이요 절망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현실 삶의 모든 차원에서 하나님이 진짜 친아버지이고 자기는 그분의 진짜 친아들이라는 그런 맥락에서 분별 판단 선택 적용 실천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이 신자의 잘못과 죄가 아닌데도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수치를 겪게 하시나 정말로 신자의 유익을 위해 허용하셨으므로, 부모의 사랑의 매에 비추어서 징계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 고난과 수치를 따로 계획해서 신자에게 일어나게 한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신자가 당신과 너무 멀리 떨어져서 오랫동안 가까이 오려는 낌새도 내보이지 않으면 드물게 직접 징계의 매를 드시긴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 핍박은 죄에 찌든 인간들이 서로 자기 탐욕을 채우고 자존심을 높이려는 격심한 경쟁 때문에 생깁니다. 성경이 더 중요하게 강조하는 바는 신자가 세상 죄악과 쾌락을 즐기는 모임에 전혀 동참하지 않으니까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질시와 배척을 받는다고 합니다. 외눈박이 원숭이들만 사는 동네에 두눈박이 정상 원숭이는 놀림감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핍박과 수치를 통해서 신자로 당신의 거룩에 참여시키고 유익하게 해주시려는 역사이므로, 어폐가 있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신자가 하늘의 본향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구조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심지어 종교적 가시덤불이 수도 없이 깔려 있습니다. 그 길을 걸어갈수록 피 흘리며 싸워야 할 죄는 더 많아지고, 더 강해지며, 더 자주 출몰합니다. 그러나 계속 참아내다 보면 어느덧 하늘 도성의 문 앞에 즉, 하나님 편에 더 가까이 붙게 되고 자연히 세상과는 더 많이 멀어져 더 확실히 구별되므로 더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성화에 지치지 않으려면?

 

하나님과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寶血)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혈연(血緣)관계가 이미 완벽하게 형성되었습니다. 그 관계는 절대로 훼손되지 않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정에서 왕자로 자랐어도 법적인 신분이었을 뿐 여전히 아론은 자기 형이고 미리암이 자기 누이이고 낳아준 친부모는 따로 있습니다. 그 법적 신분은 나중에 모세가 스스로 깨트릴 수 있었으나, 아론이 형이 아니고 미리암이 누나가 아닌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부모 자식 관계는 인간 세상의 법률로도 절대 무효화시킬 수 없으며 그것을 기록한 호적 원부는 정부 기관이 영원히 보관합니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 옆의 엘리스섬에는 미국 이민 선조의 입국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누구나 자기 조상이 누구였는지 자기 정체성을 열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기로 작정이 되는 순간 신자의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 등재되고 그 기록은 절대 말살되지 않습니다. 신자가 세상 핍박을 참아낼수록 그 잉크 자국이 더 선명해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여서 택한 자에게 그가 죄 가운데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어도 성령의 간섭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었습니다. 죄인 쪽에서 아무런 공로 자격 능력이 없었고 심지어 그분을 두려워하지도 찾지도 않았습니다. 저 또한 믿을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극렬히 반대하고 신자들을 비방하고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런 완악한 천하의 죄인이었던 저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만사를 다스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 아들과 맞바꿔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하나님이 그 관계를 절대로 수정 포기 취소할 리는 없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그것이 신자 된 신분이자 세상 사람은 누리지도, 알지도 못하는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로마의 여러 우상 종교는 물론 유대교는 그 반대입니다. 신자가 신에게 치성과 열심을 바쳐야만 그분의 구원을 얻고 나아가 현실 삶의 축복이 보장됩니다. 얼마나 많이 바쳤느냐에 따라서 그분께 받는 복이 달라집니다. 신자가 바치지 않으면 그 신과는 아무 관계가 생기지 않습니다. 많이 바쳐서 그분께 복을 많이 받으면 그분과의 관계가 더 좋아지고, 바치는 것이 적어서 받는 것이 적으면 관계까지 나빠집니다. 그분과 교제가 먼저이고 잘해야만, 관계가 형성되고 또 좋아진다고 믿습니다. 

 

기독교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relationship)가 완전히 형성된 후에 그 관계가 갈수록 너무 좋고 은혜로워서 서로 간에, 즉 신자의 일방적인 바침이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이 항상 손해 보는 방식으로 아름다운 교제(fellowship)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런 부자(父子) 관계 자체가 복입니다. 아버지가 때로 아들 건강을 위해서 힘들게 운동시키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채근해도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 장래의 유익을 위해서 그러는 줄 잘 알기에, 그 과정이 고달프고 지쳐도 기꺼이 순종 헌신합니다. 거꾸로 자신이 고아라고 가정해보면 이런 관계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부 신자들이 하나님께 받은 현실적 복이 적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자기 믿음을 자기 현실 문제와 고난을 해결하는 목적으로만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도덕적 죄를 적게 짓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교회 봉사도 많이 하는데 왜 복은 주지 않느냐고 불만 의심만 합니다. 

 

그분께 받은 복이 많으면 그분과 교제를 열심히 뜨겁게 하다가도 조금만 그 복이 줄면 그분과 교제도 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기가 받은 복에 따라서 줄었다 늘었다 합니다. 이는 give-and-take 비즈니스 계약이지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아닙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롬4:4)라는 말씀대로 유대교의 율법적인 축복개념에 머물러 있거나, 기독교에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간 것입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몸져누우면 아들은 사랑으로 끝까지 수발하며 섬기게 마련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바가 바로 육신의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하면서 왜 하나님에게 그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화를 이룰 수 있는 비결은 십자가 예수님의 은혜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언제 어디서나 잊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겪는 고난과 수치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했다는, 그것도 신자의 유익과 당신의 거룩에 참여시키려는 섭리라는 확신이 있다면 세상의 어떤 일도 감사할 수 있으며 최소한 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권능과 축복인지 날마다 삶의 실제 체험으로 절감하셔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성화는 칭의와 동시에 필연적으로, 조금 어폐가 있지만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됩니다. 끝까지 하나님 편에만 붙어 있으면 그 반대편의 죄악과는 자동적으로 멀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정말로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한번 따져보십시오. 하나님이 진짜 내 아버지이고 내가 그분의 진짜 아들인지 말입니다. 만약 진짜 아버지라면 더 이상 무엇을 염려할 필요가 있습니까? 

 

(8/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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