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LA 공항에 배웅을 나갔다가 시간이 좀 남아 대합실 바로 옆 자리의 한국청년과 이야기를 나눴다. 체격도 건장하고 인상도 너무 선하고 한 눈에도 지성과 교양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너무 젊어 보여 무심코 결혼했느냐고 물었더니 “결혼을 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결혼했다든지 아직 총각이라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결혼 했었습니다’라고 대답해 잠시 헷갈리며 그 뜻을 못 알아챌 뻔했다.
이미 결혼해 아이가 둘이나 있지만 이혼을 했으며 전부인과 아이들은 미국에 와 있다는 것이다. 생면부지(生面不知)로 처음 만난 저에게 솔직히 털어놓는데 한 편으로 감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혼이 이제는 아무 허물이 안 되는 세대에 나도 살고있구나 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전 부인이 영주권수속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어본즉 이민사기에 걸린 것이 거의 틀림없어 그 일을 말려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 분의 표정에 심각해 하거나 염려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물론 속으로는 염려했겠지만 잘 모르는 저에게 구태여 그런 내색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어쩌면 낯선 중년 남자가 함부로 사기라고 단정 지었으니 되려 저를 사기꾼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헤어진 아내야 그렇다 치지만 자기 아이들이 잘못하면 함께 희생자가 되어 자칫 미국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질 텐데도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지 끝내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지금은 도덕적인 기준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자체가 실종되어져 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정한 사랑과 신뢰가 없다. 심지어 부모자식 간에도 그렇다. 절대적인 가치와 기준을 주장할라치면 아예 시대착오적인 미개한 생각으로 치부해 상대조차 않는다. 분명히 말투나 풍기는 분위기만 보아도 그 분의 인격과 심성은 인간적으로는 선하며 세상에서도 남보다는 의롭게 살 것으로 믿어졌다. 그럼에도 이 세대의 흐름에 자기도 모르게 휩쓸린 희생자인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하늘의 것과는 반대다. 이 세대 사람들에게 아무 거부감 없이 허용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정도 받으리라고는 절대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먼저 따르는 것 뿐이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