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오랜만에 일주일 내내 새벽 제단을 쌓느라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울리는 얼람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루는 그 소리가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요즘 전자 얼람은 전부 귀에 익은 명곡의 멜로디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는 단지 단조로운 기계 소리로 반복해서 “뚜뚜”거렸지만 이젠 기술의 발달로 사람을 깨울 때도 달콤한 음악으로 기분 좋게 깨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 하나씩 따지고 보면 지금도 사실은 이전과 다름 없이 ‘뚜뚜’거리는 전자음이긴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하나는 지겨워 하며 일어나야 하고 다른 것은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멜로디와 박자가 갖추어져 있고 없고의 차이다. 멜로디는 음의 높낮이이고 박자는 각 소리의 길이다. 멜로디와 박자가 없는 소리는 단지 소음일 뿐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멜로디는 환난과 경사가 교차하는 것이고 박자는 그것들이 지속하는 기간이 각기 다른 것을 뜻하게 된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시90:10)”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의 길이는 누구에게나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그 인생에 멜로디와 박자가 빠졌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인생이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평생동안 그저 밥 안 굶고, 병 안 들고, 무탈무사(無脫無事)한 인생으로 살기를 제일 큰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 인생은 음악이 아니라 아무 짝에도 소용 없는 소음 공해일 뿐이다.
하나님이 환난을 허용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시려고 각자에게 특유의 멜로디와 박자를 넣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최고 명곡(Masterpiece)이 아닌 인생은 단 하나도 없다. 쓴 물을 마셔본 자만이 단물을 마실 수 있다. 단 물만 마시면 그것이 단지 쓴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저 밍밍한 물에 불과할 따름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은 반드시 멜로디와 박자가 있게 마련이다. 옛날에 엄마가 한 밤의 정적을 깨며 두들겨 대는 빨래 방망이 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들렸는지 기억하는가? 돌과 나무 방망이가 부딪히는 단조로운 소음일지라도 높고 낮게 또 길게 짧게 두들겼기에 너무나 흥겹고 근사한 음악이 되었지 않는가? 우리 인생도 그처럼 투박하고 단조로울지라도 하나님이 손수 작곡하신 멜로디와 박자를 들을 수만 있다면 열심히 살 가치가 충분할 뿐 아니라 너무나 신나는 인생이 되지 않겠는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9/16/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