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개척한지 얼마 안 되는 교회라 금요일 저녁마다 갖는 찬양 예배에 아직은 참석자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아무도 초청하지 않았는데도 매주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란 누구에게나 개방되는 것이 당연한데도 불청객이라고 한 이유는 이 참석자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배 준비를 위해 한 시간 정도 먼저 나와 찬양 인도자들이 연습을 하는 동안 가끔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교회 정원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매주 그 시간에 토끼 한 마리가 교회 잔디밭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큰 귀를 쫑긋 세우고 예배당 옆에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이 꼭 예배당에서 울려 나오는 찬양을 듣고 있는 것 같다.
그 토끼가 이 복잡한 도시 한 복판에 혼자서 어디에 살고 있으며, 개나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지 않고 용케 견디는지, 또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지 참 신기하기만 하다. 아마 교회 마당 어딘가에 굴을 파 놓고 살고 있을 것이다.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며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해도 천부께서 기르신다. 너무나 평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 비록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는 듯 했다.
불현듯, 오늘 찬양예배에는 누가 나올까, 제대로 연주가 잘 될까, 교회가 언제 부흥이 되나, 부흥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등 온갖 염려로 가득 찬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이방인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면서 드리는 찬양이라면 아무리 뜨겁게 열성을 다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제사가 아니라 교회 마당만 밟고 가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예배당 안에 있는 우리보다 마당만 밟고 가는 토끼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 넘쳤다.
그 불청객 토끼가 어제 처음으로 찬양예배에 결석했다. 추워진 날씨 때문이라면 다행인데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하다가 천부께서 다 기르시고 입히시는데 또 무슨 쓸데없는 염려를 하나 싶었다. 목사이면서도 아직 토끼보다 하나님의 은총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찬양예배가 더욱 은혜가 넘치고 교회가 부흥하려면 차라리 이 토끼를 담임 목사로 모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토끼야 어서 빨리 다시 참석해다오!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6:28)
10/14/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