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한국에선 2004 한인 입양인 대회가 열렸다. 해외 15개국에 고아로 입양되었던 430명이 생전 처음 부모의 나라를 방문해 상호 고충을 나누며 한국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기억이 있을까말까 할 때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낯선 사람을 부모로 알고 자란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과 부모가 전혀 다른 핏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기분을 감히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의 어린 시절 추억거리는 무엇이든 남겨둔다고 한다. 두 살밖에 안된 아이가 앨범이 24권이고 6시간짜리 비데오 테이프가 17개라는 사람도 있었다. 시시콜콜한 장면도 병적으로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자기처럼 과거가 없어져 정체성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지 않게 하겠다는 뜻이다. 친부모를 못 만나고 말은 안 통해도 생전 처음 자기와 피부색이 같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다고 했다. 누군가 고백한 대로 자기 자신 안으로 여행해 상실되었던 부분을 다시 찾은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선진국에서 풍요롭고 자유롭게 자랐기에 가난한 한국에 있었다면 되었을 것에 비해 결과적으로 좋아진 것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한결같이 입양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항상 가슴과 마음만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흔히들 미국에 와 있는 교포 2세를 바나나로 표현한다. 겉은 노랑 색인데 그 속은 흰색이라는 뜻이다. 부모가 함께 있고 김치를 먹고 한국말을 해도 이미 속 사람은 서구화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민 2세든 입양 고아든 혈육의 뿌리만 붙든다고 인간으로서 진정한 정체성은 회복되지 않는다. 장애인 남편과의 사이에 친 자식을 두지 않고 장애인만 25명 입양해 키우는 한 미국 여인이 “가족은 피가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근본 뿌리를 찾지 않으면 부모가 있던 없던 항상 갈급하게 마련이다. 지금껏 짝하고 지냈던 세상의 쾌락과 형통이 나와 전혀 핏줄이 다름을 깨닫고 자기 영혼 안으로 참 자아를 찾아 나서야 한다. 하나님의 족보인 하늘의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올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족보에 오르는 길은 십자가에 흘리신 당신의 독생자와 피를 나누는 수 뿐이다. 또 설령 그 족보에 올라 있더라도 지금 주위 사람과 참사랑으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내가 아닌 것이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3:7,8)
8/8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