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맑스의 결정적 실수

조회 수 1764 추천 수 176 2005.05.15 15:22:50
일본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래된 경구(警句) 중에 “나이 삼십 전에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는 자도 바보지만 나이 삼십 넘어서도 공산주의를 붙들고 있는 자도 바보다”라는 것이 있다. 정확한 출처는 모르지만 일제 시대에 일본말로 공부한 부친에게서 직접 들은 것이라 당시에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던 말임에는 틀림 없다. 실제로 그 때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수 많은 젊은 지성인들이 나라 잃은 울분을 풀어야 할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공산주의를 택했지 않는가?

그 경구의 뜻은 공산주의가 이론적으로는 인간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장 완전한 사상이라 한창 이상을 추구하며 정의감에 불타 있을 청년 때에는 열광하게 마련이지만 나이가 들어 현실과 인생에 대해 조금 눈이 깨이게 되면 바뀐다는 것이다. 나이 삼십을 분기점으로 나눈 것은 아마도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고 현실에 직접 부닥쳐야 할 때를 의미했을 것이다. 즉 공산주의가 아무리 이념적으로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그대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데올르기나 경제학에 관해선 거의 까막눈인 필자로선 그 쪽 방향으로 분석할 재간은 전혀 없다. 공산주의가 갖고 있는 이념적, 제도적, 장단점을 자본주의와 비교해서 논할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공산주의는 그 출발부터 반드시 실패할 소지를 안고 있었다는 것 한가지 만은 분명히 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인간 사회의 모순을 수정하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 잡혀 그 모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한 마디로 모든 사람이 부자와 거지 따로 없이 공평하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제반 문제의 원인을 빈부격차에다 두고 모든 재화를 공동소유(국가)로 하여 공동으로 생산하여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명분과 그대로만 되면 당장 인류에게 분홍빛 미래가 닥칠 것처럼 여겨졌고 당시의 젊은 청년들로선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왜 그런 빈부격차가 생겼는지 그 본질은 깊이 파헤치지 못한 태생적(胎生的)인 약점을 지녔다.

정말 모든 인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공동으로 생산해 공동으로 분배하여 공동으로 소비하여 가난한자도 부유한 자도 없이 모두가 평균 되게 사는 문자 그대로의 공산(共産) 사회일 것이다. 부유한 유대인 크리스찬 가정의 7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던 맑스인지라 인류 역사상 단 한번 초대교회 시절 길어야 십 수년 동안 아주 제한된 인원에 의해 성취 되었던 그런 참 사랑의 공동체를 오매불망 꿈꾸었을 것이 틀림 없다. 실제로 초대교회의 모습을 묘사한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는 성경 말씀에 그가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이론을 고안해냈다고 전해지지 않는가?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근본적인 죄성 탐심(貪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존심이다. 인간은 반드시 내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야 하고 남이 자기를 알아 주어야만 살 맛이 나는 존재라는 것을 그는 공산주의 이론에 적용시키지 않은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남과 똑 같이 평등하게 살면 서로 다툼은 없어질지 몰라도 도저히 인생의 살 맛이 없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면에서 마르크스는 정말 정의감에 불타 이상만 추구했던 순진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청년이었는지 모른다.

반면에 자본주의를 보라. 이만큼 인류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더럽고 추한 이론은 없지 않는가?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재화를 갖고 있는 자가 더 많이 가질 수밖에 없고 반면에 구조적으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평생 소외계층이 되어 변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탐욕이 거대한 괴물이 되어 청년 시절의 이상과 정의감을 통째로 잡아 먹으면서 부익부빈익빈만 불러 오는 제도이지 않는가?

그러나 약 1세기에 걸친 실제 적용 기간을 거친 후의 승패는 어떻게 되었는가? 자본주의의 승리, 그것도 완전한 TKO로 끝났다. 그 이유는 제도적 보완장치를 잘했느냐 못했느냐가 아니었다. 간단한 한 마디로 공산주의는 이념이고 자본주의는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전자는 모든 인간이 마르크스 자신처럼 선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머리 속에서만 그려낸 꿈의 세계에 불과했다면, 후자는 인간의 탐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가장 잘 들어 맞았던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럼 이제 따져 보아야 할 것은 “초대 교회 때는 성공했던 그 이상적 공산사회가 지금은 왜 도저히 실현이 안 되는가?”이다. 당시 사람은 지금보다 순수하고 정직했는가? 그래서 누구 하나 잘 살고 못 살고 없이 똑 같았는데도 아무 불평 불만이 없었던가? 아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앞에선 똑 같이 나누어 쓰자고 해놓고는 뒷구멍으로 빼돌리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을 만큼 여전히 인간의 본성은 그 때나 지금이나 추악하기는 똑 같다.

인간의 자존심에 기인하는 탐심이 남아 있는 한 공산사회는 어떤 이론과 제도를 보완하고 수정해도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존심은 절대 인간 스스로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이 경쟁이 격심하고 모순과 갈등이 들끓으며 예상치 못한 재해와 병마와 환난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제 멋에 사는 재미라도 없애버리면 도대체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는가?

쉬운 예로 국민학교 때 꼴찌하고 항상 바보 소리 듣던 사람과 전교 일등만 도맡아 했던 사람이 똑 같은 크기의 집에 똑 같은 월급 받고 살아도 전혀 무신경이 될 만큼  정말 자존심을 다 죽일 자신이 있는가 말이다. 실제로 사회복지 제도를 완비한 캐나다 같은 나라의 의사들은 아주 긴급한 상태가 아니고는 심하게 말해 자기 기분 내키는 날로 담당 환자의 수술을 미룬다고 한다. 몇 시간이고 서서 고생하며 수술해 봐야 따로 수당이 더 나오지 않고 정부에서 주는 월급이 의사마다 똑 같기 때문이다.

아마 남들도 모두 똑 같이 나눠먹겠다는 것에 완전히 동의하면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은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그렇게 쉬운 문제만은 결코 아니다. 설령 물질적인 공산주의는 그런대로 성공했다 치자. 간단하게 물질과 전혀 상관 없는 남녀 간의 애정 문제에서도 시기 질투 없는 공산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로 인해 상처 받은 자존심이 오히려 물질적 공산체제의  근간을 어떤 수를 써더라도 흔들지 않는다고 과연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초대 교회에서 재산을 공유했던 신자들이 지금보다 아주 선하거나 신앙심이 특별히 더 깊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일이 가능했던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성령으로 변화시켜서 탐심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철저하게 자기가 가장 큰 죄인임을 자각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다. 각자가 스스로 꼴찌요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인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구성원 모두가 남들보다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내지 않았고 평균 수준에 불과해도 오히려 만족하고 감사했기 때문에 공산사회가 가능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의 인간사회를 향한 뜻이 공산주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AD 40년대에 온 이스라엘과 로마제국 곳곳에 대기근이 닥쳤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재산을 공유하며 서로 통용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결성했지만 유대교와 로마의 박해를 피해야 하는데다  기근이 겹쳐 추가 생산 활동을 거의 못하는 바람에 갖고 있던 재산만 까먹은 셈이 되었다. 결국 계속되는 기근에 견딜 재간이 없어 마게도냐 지역 교회들의 구제 헌금에 가까스로 연명할 정도까지 되었다.

이런 기근과 박해의 배경에 하나님의 간섭이 작용하여 그 공산사회를 흩어지게 했다면 당신의 뜻이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혹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유물론을 주창하여 하나님을 배제한 현대 공산주의(하나님이 배제되므로 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뜻과는 다름)가 아니라 초대 교회 당시의 순수 공산주의조차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순수한 공산주의를 인정하려면 인간은 탐심과 자존심이 없다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했어야만 논리적으로 앞뒤 말이 맞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라. 죄인인 인간을 죄 속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죄의 형벌은 당신이 감당하고 대신에 죄인은 사랑하고 용서해 주셨지 않는가?  

칼 맑스는 분명 기독교에 능통했고 그래서 그 부조리도 잘 알았다. 하나님을 아는 신자마저 물질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교회 안에도 성장주의와 서로 자존심을 세우려는 온갖 작태를 보다 못해 기독교를 버렸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본 따 최고로 이상적인 이론을 도출해 내었다. 그러나 그는 딱 한가지는 몰랐다. 인간이 얼마나 탐욕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라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말 없이 죽으셔야만 했던 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참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 그 사랑과 권능 아래 항복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단지 제도로서의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인간사회의 결과적 외형적인 모순은 보았어도 그 모순의 본질과 원인은 몰랐던 것이다. 이상만 붙들고 현실을 저 땅 아래에 두고 자기 혼자서만 하늘을 날랐던 것이다. 온갖 모순과 죄악으로 가득찬 이땅과 그 속에 있는 불쌍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현실 속으로 내려 왔던 것에 반해서 말이다. 아마도 그는 공중에서만 날아 다니느라 그랬는지 몰라도 마지막 인생의 10년은 만성적인 정신적 침체에 빠져 지내야만 했지 않는가?    
        
한국의 청년들이여! 만약 그대가 정말 탐심과 자존심이 없이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할 자신이 있고 또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되리라 자신할 수 있다면 정말 열심히 공산주의를 추구하고 이땅에 참된 이상향을 구현해보라. 그러나 만에 하나 그대 스스로 그런 자신이 없고 또 다른 사람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안 된다면 이상보다는 현실을 바라보라. 그리고 진지하게 자본주의를 택해 연구하고 발전시켜라. 그것도 나이 삼십이 되기 전에 말이다.(삼십이 넘은 자에게도 이런 너무나도 상식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는 결코(?) 없으리라.)

이상을 현실과 타협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현실이 남북대치 상태, 주변열강과의 관계, 경제성장의 효율성, 이념과 제도의 우월성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아주 극소수의 사람을 빼놓고는 탐심과 자존심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자 없다는 그 현실 말이다. 현실을 배제한 채 이상 하나만으로는 절대 힘을 발휘할 수 없고 또 이상이란 현실을 바꾸려 시도하는 곳에서만 그 의미와 가치를 가질 뿐이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면 완전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얼마든지 이상을 현실 안에서 하나씩 아름답게 실현할 수 있다.

5/15/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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