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한국의 전직 N 대통령은 가끔 넘치는 열정 때문에 직위에 걸맞지 않게 정제되지 않는 표현을 쓰곤 했다. “남북관계만 잘 되면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좋다”는 말은 아직도 시중에 회자될 정도다. 재임 중 가장 역점을 두었던 시책인 남북관계 화합을 강조하려다가 조금 지나쳤던 것 같다.
지난 2주간 미국에서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금융위기는 대체 어떻게 가닥을 잡을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물론 7천억 불이라는 천문학적 구제금융 법안이 미국 국회를 통과할 것이 확실시 되어 일단 최악의 사태는 막을 것 같지만, 과연 그것으로 경제가 회복될지 여부에 대해선 아직도 비관론이 우세하다.
그런데 그 법안이 부결되었다 다시 회생하는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주 흥미롭다. 우선 반대표를 던진 하원의원들은 이번 대선과 함께 치러질 자신들의 선거를 많이 의식한 것 같다. 월가의 잘못을 왜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보상해주어야 하느냐는 선거구민들의 월등한 반론을 반영하지 않았다가는 재당선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막상 그 법안이 부결되고 보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주식시세는 사상 최대로 폭락했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금융체계의 완전 붕괴에 따른 대공황으로 갈 것 같으니까, 이제는 선거구민들조차 법안을 찬성하라는 쪽으로 하루 밤 사이에 여론이 돌변했다. 월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들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이번 금융 위기의 발단은 익히 밝혀진 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이며, 또 그 원인은 부동산 가격의 거품 때문이었다. 전 국민과 모기지 연관 금융기관들이 연일 치솟는 부동산 시장에서 크게 한몫 보려다 양산한 부실 채권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 한탄한 대로 월가뿐만 아니라 미국민 모두가, 물론 선량하고 정당한 실수요자도 많았겠지만, 돈 놓고 돈 먹기 카지노 게임에 열중하다 너무 과열되어 도박장 자체에 불이 붙은 셈이다. 요컨대 미국 전체가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좋으니 돈만 벌자는 식으로 막간 것이었다. 구제금융의 의미도 사실 그것 아닌가?
이게 과연 현대판 로마 제국 미국이 서서히 몰락하는 징조로만 보아야 할까? 절대 아니다. 한국도 지난 대선에서 솔직히 따지자면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좋으니 먹고 살게만 해 달라”는 심리가 상당부분 작용했지 않는가? 최근 연달아 일어난 남녀 유명 탤런트의 자살 사건도 여러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돈 문제가 직간접으로 상당히 연류 되었지 않는가? 나아가 전 세계 엄마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중국산 멜라민 식품 사건의 원인도 무엇인가? 작금 각 나라의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사건 사고들의 원인을 엄밀히 따져 보라. 궁극적으로는 딱 한 마디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좋으니 돈만 벌게 해 달라.”는 것 때문 아닌가?
그런데 진짜로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풍조는 인류 역사 이래 항상 있어 왔던 것으로 최근에야 처음 불거진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 되었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나타날 죄악 일호다. 그러나 그 동안에는 이 세상은 자살하지 않고도 그런대로 살아갈만한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양심이 살아 있는 각계의 지도자들이, 특별히 교회도 돈 대신에 더 소중한 다른 가치들을 가르치고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의 지난 대선에서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잘 살게 해주겠다는 장로 대통령을 뽑는 데에 기독교계가 일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정치적 잘잘못을 논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칫 이 글의 진의를 곡해하고 악플이 달려 저도 마음고생(?)할까 두렵다. 나아가 미국의 몇몇 대형 교회를 필두로 한국 기독교계 일부도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돈만 벌게” 해주는 성공번영신학을 유포하는데 얼마나 힘과 공을 쏟았는가? 또 그 진짜 이유야말로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교회만 커지면 - 다른 말로 헌금만 많이 들어오면 된다.”는 것 때문이 아닌가?
이것은 아니다. 정말 교회 다니는 연예인들마저 연달아 자살하니 이것은 정말 아니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좋으니 십자가 예수님의 목숨마저 나 같은 죄인에게 주신 하나님만은 제대로 알고 경배하며 그분 뜻대로 살자”를 가르쳐야 하는 곳 아닌가? 그런데도 어긋나다 못해 완전 거꾸로 가르치고 있으니... 하나님마저 “이것은 정말 아니다”라고 한탄 하실까봐, 그래서 인내의 한계가 차실까봐 정말로 두렵기만 하다.
10/2/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