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에겐 인권은커녕 양심도 없다.
“성경의 진리를 믿는 신자는 이미 완전 왕따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왕따란 나머지 모두는 다른 편이고 혼자만 남았다는 뜻이다. 필연적으로 그 사회에선 이미 미친 놈 취급받고 있다는 뜻이다. 정상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이전의 비정상을 두고 비정상이라고 이야기 해봐야 입만 아플 단계가 되었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왕따가 되느냐 마느냐를 선택해야만 할 단계에 이르렀다면 그 사회에선 다른 모든 인간적 현실적 수단은 완전히 쓸모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 즉 심판뿐이지 않겠는가? 이사 갈 곳이 없다고 지구를 떠날 수도 없으니 진정한 신자가 한 명이라도 남아 있다면 하나님이 뭔가 특단의 조처를 취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의 하나님이 틀렸다면 차라리 이런 염려도 하지 않고 살겠건만 아무리 곰곰이 따져 봐도 그럴 리가 없으니 더더욱 큰일이다. 과연 이 땅이 어디까지 흘러갈 것인지?”
작년 6월에 “지구를 떠날 수는 없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제가 썼던 칼럼의 결론 부분이다. 동성애 찬성 논쟁에서 보듯이 정상적 윤리가 오히려 완전 비정상으로 되어가는 세태를 꼬집은 내용이다. 그런데 정말 지구를 떠날 순간이 차츰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의사와 간호사는 자신의 양심에 저촉되면 낙태 시술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양심조항(The Conscience Clause)을 제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 조항을 곧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법률 조항 하나 수정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임부가 낙태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Pro-Choice) 주장이 옳고,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므로 반대하는(Pro-Llife) 주장은 인권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틀렸다고 한참 인기 있는 대통령이 최종 판결을 내려준 셈이다. 나아가 낙태를 반대하는 의사, 간호사는 반드시 시술을 해주든지 아니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낙태를 반대하는 양심을 가진 자는 의사나 간호사는 되지도 말라는 셈이다. 일부이긴 해도 직업 선택의 자유를 막은 셈이다. 그것도 어린 생명을 죽이는 자유와, 물론 주에 따라 낙태에 관한 여러 엄격한 규정들이 있긴 하지만, 맞바꾸어서 말이다. 어쨌든 양심상 절대로 낙태를 찬성할 수 없다는 자는 단지 대통령의 양심과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에 산부인과 계통의 의사나 간호원이 될 꿈은 버려야만 한다. 말하자면 직업 선택뿐 아니라 양심을 지킬 자유마저 없어질 판국이다.
이는 미국에만 해당되는 제한된 풍조가 아니다. 미주기독일보에 따르면(4/1자) 최근 유엔이 ‘종교 모독 결의안(Resolution on Defamation of Religions)’을 채택했다고 한다. 단순히 종교의 자유를 권장하는 내용이 아니다. “유엔 회원국들은 종교에 대한 모독이나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과 행위에 맞서 싸워 달라”고 촉구하고 있어도, 모독 행위를 금지하는 종교를 사실상 이슬람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동안 이슬람은 테러리스트라는 인식으로 취급받았기에 언뜻 별로 틀린 내용이 아닌 것같이 여길지 모른다.
이슬람 국가 대부분이 개종은 물론 최근에는 정상적 종교 활동마저 엄격히 금하고 있다. 따라서 전도는 둘째치고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에 관해 논해도 모욕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 외부는 완전 재갈을 물리고 족쇄를 채운 반면에 이슬람은 제한 없는 종교의 자유를 쟁취한 셈이다. 당연히 그들을 향한 전도에 열심인 개신교인들이 제일 문제로 종교 즉, 양심의 자유마저 묶인 것이다. 세계는 지금 낙태의 자유를 허용하느라 직업선택과 양심의 자유마저 제한하려는 미국과 그 속도와 정도에만 차이가 있지 동행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인간을 존엄하게 창조하였고 성경에 계시된 그분의 절대적 진리대로 살겠다는 믿음은 이제 완전 난센스(Nonsense)가 되어버렸다. 신자의 인권과 자유는 얼마든지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다. 문화전쟁, 종교전쟁의 승자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절대자 하나님을 믿고 따르려는 신자의 양심은 양심조차 아니게 되었다. 진리는 상대적이고 다양하기에 절대적 진리를 믿는 양심은 아예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마땅하다는 뜻이다. 인간이 제 멋대로 하고 싶은 권리나 자유를 막는 것은 무조건 악이 되었다.
필립 존슨이 “위기에 처한 이성”에서 설파한 그대로다. “진리에 관한 상대주의는 관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갈등은 이성에 의해서나 타협에 의해서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그 이유는 근본적인 질문에 관해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그룹들을 연대시켜 줄 수 있는 공통의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IVP 발간, 193P) 쉽게 말해 절대자 하나님이 실종되니까 최소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도 누구나 인정하는 전통적 도덕기준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결국 절대자 하나님을 믿고 또 그 진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도 함께 도태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까지, 최소한 그 입구에는 다다랐다. 하나님만의 새롭고도 강력한 부흥의 역사가 절실하기에 신자들은 깨어서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다. 신자의 인권과 자유는 둘째 치고 양심만이라도 통하게, 아니 그 양심 때문에 박해라도 받지 않는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말이다.
4/2/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