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하나님이 우실 일
법률에 관해 일자무식인지라 자세히 논할 계제가 못되지만 미국과 일본에는 한국과는 다른 특이한 재판제도가 있다. 우선 미국에는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jury)들이 재판에 참여하는데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와 비교적 익숙한 제도다. 전원합의제로 피고의 유죄 여부만 결정하고 만약 유죄가 인정되면 형량의 선고는 판사에게 맡겨진다. 배심원이 필요 없는 약식의 경범죄 재판을 제외하면 죄인인지 아닌지는 사실상 일반인이 판단하는 셈이다.
이보다 더 진전된 제도를 일본이 금주에 처음으로 시행했다. 일반인 판사(lay judge)제도로 6명의 보통사람이 3명의 전문판사와 함께 재판을 직접 진행했다. 미국의 배심원은 재판장과 별도로 우측 하단에 자리 잡고서 심리에는 일절 참여하지 못하고 단순히 그 진행과정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반면에 일본의 일반판사 제도는 상단 재판장석에 전문판사와 함께 앉아서 피고에게 질문도 할 수 있으며 유죄여부와 형랑까지 함께 결정했다.
최초의 케이스로 72세 남자가 66세의 이웃 여자를 살해한 사건을 다뤘다. 일반인 6명은 30-50대에서 회사직원, 피아노교사, 파트타임노동자 같은 아주 평범한 직업에서 남녀 각각 3명씩 선출되었다. 이들 모두가 피고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 중에는 피해자를 칼로 찌른 후에 구급차를 불렀는지 여부를 물은 질문도 있었다.
이는 범죄 의사를 검증하는 상당히 예리한 질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잡혀가더라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최소한 잘못은 인정하고 피해자를 치료부터 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우발적 살인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피고는 누군가 곧바로 신고해주리라 생각하고 자신이 직접 그러지는 않았으며 또 단지 위협만 하려고 칼을 지니고 있었다고 자신을 변호하기 바빴다.
검사는 피고가 무방비 상태의 피해자를 뒤에서 찔렀고 또 도망가려는 피해자를 붙잡았다는 점에서 고의로 아주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16년의 형량을 구형했다. 결국 삼일간의 심리를 마친 어제(8/5) 오후에 재판부는 1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재판의 세부규정은 모르지만 참으로 흥미롭고도 아마 세계 최초의 제도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 같다.
흥미롭다는 까닭이 단순히 제도가 특이해서가 아니다. 배심원이나 일반 판사는 법률상식이 전혀 없다. 참고로 미국에 사는 필자 같은 문외한에게도 배심원을 맡으라는 요청이 수차 있었으나 건강사정과 영어미숙으로 면제를 요청했을 정도다. 나아가 인종이나 문화나 경제적 여건, 생활환경은 물론 교육 정도나 종교적 배경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작위로 선정한 보통사람에게 재판의 결정적 권한을 맡긴 것이다.
두 제도가 공(共)히 갖고 있는 특별한 의미는 무엇인가? 모든 인간은 건전한 상식과 도덕적 분별력을 다 소유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다른 말로 학벌, 가문, 재정형편, 사회적 지위나 신분 등에 전혀 무관하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수준의 양심을 가졌다는 전제가 없으면 시행할 수 없는 제도라는 뜻이다. 물론 교육, 경험, 관습, 제도 등으로 그 양심이 더욱 성숙되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점을 감안하려면 최소한 교육 정도에 따라 선출해야만 한다. 절대 무작위로 선출하지 못한다. 무작위로 선출했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태생적인 양심이 있다는 진리에 그 사회가 무언의 합의를 이룬 것이다.
만약 인간이 장구한 세월 동안에 우연히 진화된 존재라면 어떻게 모든 사람이 비슷한 수준의 도덕성을 갖게 될 수 있는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흔히들 도덕 교육 덕분이라고 반발한다. 그러나 최초의 도덕 교육을 고안한 사람은 대체 그 도덕성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영적천재인가? 아니다. 세계의 모든 인종이 비슷한 도덕교육을 그 공동체를 형성할 때부터 아무 반발 없이 채택해 왔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도덕성은 모든 인간에게 미리부터 심겨져 있었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런데 미국은 처음부터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모든 제도를 만든 나라다. 추측컨대 배심원들이 기본 양심을 갖고 상식적인 판단을 해주리라 믿는데 큰 저항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국가적으로 수만 가지 잡신을 믿는 우상숭배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래적인 도덕성을 인정한, 이 제도를 만든 사람들이 의식을 했든 안 했든 간에, 셈이다. 또 재판에 가장 많이 참여시켰으니 그 사회 전반에 전통적 도덕이, 각 개인에게는 양심이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으로 놀랍지 않는가? 가장 반기독교적인 나라가 가장 기독교적인 사상을 드러내보였다. 단순히 흥미로운 역설적 현상으로만 취급할 사안이 아니다. 어떤 불신자라도 종교적 지식과 무관하게 부지불식간에 인간은 창조된 존재이며 그 창조하신 분의 거룩한 품성을 닮게 지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아무리 창조주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온갖 심오하고 정미한 이론과 철학을 내세워도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허둥대는 꼴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무신론자의 삶 자체가 완전한 무신론의 영역 안에 머무를 수는 절대 없고 오히려 알게 모르게 유신론 체계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았다거나, 하늘 무서운 줄 알라는 등의 말을 하고 또 힘든 일이 생기면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알 수 없는 대상에게라도 기도한다는 현상이 바로 그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지 않는가?
그런데 말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가장 많이 구현해야 할 가시적 조직은 바로 교회다. 말하자면 교회에선 이런 배심원이나 일반판사 같은 제도가 당연히 가장 많이 시행될 수 있어야, 아니 되어야만 하지 않는가? 종교개혁자들이 천명한 만인제사장제도 말이다. 그런데도 많은 교회들이 오히려 담임목사나 당회가 독선적 전횡만 일삼는 바람에 온갖 분란으로 지새고 있으니 대체 어찌된 연유인가? 그들이 성경을 모르는가? 아니면 기본적 양심도 없는가? 그 반대로 평신도들이 그러한가? 혹시 평신도들이 귀찮아서 교회를 가꾸어가는 일에 아예 참여하지 않으려는가?
더 기가 찰 노릇은 따로 있다. 교회 문제를 인간의 기본 양심으로만 판단하는 세상 법정에 예사로 끌고 나가고도 서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긴다. 하나님의 절대적 도덕률인 성경을 엄연히 소유하고 있고 나아가 성경이 그렇게 하는 일을 명시적으로 금해 놓았는데도 말이다. 정말 하늘에서 하나님이 웃으실, 아니 우실 일이지 않는가?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전부 그 교회를 향해 웃고 있는 가운데 말이다. 물론 우상숭배의 최고 전문가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일본사람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8/6/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