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함께 춤을 추자.

조회 수 805 추천 수 116 2011.06.28 21: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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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함께 춤을 추자.


며칠 전 한국 TV에서 흥미로운 뉴스를 접했습니다. 개를 사육하여 판매하는 사람들과 개시장으로 가장 유명한 성남 모란시장 상인들이 보신탕 축제를 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신탕을 즐기는 한국인들이지만 공개적으로 축제까지 벌리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반발 때문에 그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입니다.  

축제를 계획한 이유는 최근 보신탕 소비가 눈에 띄게 감소했고 늘어날 기미가 전혀 안 보이기에 소비를 촉진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소비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인구의 주축을 이루는 젊은이들이 개고기를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먹을거리가 다양화 서구화되었고 개에 대한 인식도 식용보다는 애완용으로 상당히 바뀌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이번에 그런 축제가 벌어졌다면 아마 전 세계의 동물애호가로부터 온갖 비난을 덮어써야만 했을 것입니다.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기에 堧缺?눈으로 바라보는 일반인들도 한국의 문화는 아직도 미개하다는 비아냥거림을 퍼부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중지했다니 다행이다 싶고 또 한국이 경제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포용할 정도로 성숙되어가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였기에 오랜만에 참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저도 20여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까지는 소문난 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여름이면 보신탕을 즐겼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해 이전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았지만 전혀 그 맛이 나지 않아 크게 실망했습니다. 아마도 그 동안 입맛이 많이 바뀌었고 또 육식을 줄여나가려 노력하는 중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쉬운 기분과 함께 차라리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국에 살려면 조국에 대한 미련을 하루 빨리 버리는 것이 여러모로 편한데, 못내 잊지 못하는 것들 리스트에서 보신탕 하나는 과감히 지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 포기에는 저 나름대로의 성경적 이해도 제법 큰 몫을 했습니다. 동물애호운동을 하는 분들에게도 분명 잘못이 있다고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개고기를 먹는 다른 나라는 두고 유독 우리나라만 탓하느냐는 형평성을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또 원숭이 골, 곰발바닥, 타조, 악어 등을 먹는 것은 그리 따지지 않으면서 개만 문제 삼는 모순을 탓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동물 애호가들의 활동은 높이 사줄만 합니다. 그러나 개고기에 유달리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분명 사람에게 충성하고 여러 유익을 주는 사랑스런 동물을 먹다니 도대체 용납되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여기까지도 그들의 주장은 분명 옳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개가 애완용 동물이라고 인정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제 불만의 원인이 있으며, 엄밀히 말해 그들의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개가 애완용이 된 것이 과연 인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냐,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종자(種子)인지 여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래 전 케빈 코스너가 주연하여 아카데미작품상을 받은 “늑대와 함께 춤을”(Dance with wolf)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인디언 변경지역 초소에 혼자 부임한 미군 장교는 우연히 발견한 다친 늑대를 고쳐주고 먹이를 주어서 친해집니다. 인적 하나 없는 외로움을 그 늑대로 인해 이겨냅니다. 정말 훤한 보름달 밤에 늑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홀로 춤을 춥니다.

이처럼 늑대도 사람이 훈련시키기 나름이라서 개도 인간이 애완용으로 길들였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나 사자보고 아무도 애완용이라고 말하지 않지 않습니까? 모든 동식물의 종들에는 태생적이고 변하지 않는 고유의 특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선천적 특성에 맞추어 활용한 것뿐입니다.

수박은 원래부터 수박이었지 호박을 수박으로 인간이 바꾼  것이 아니듯이, 개도 늑대를 훈련시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호신용, 가택보호용, 애완용 등의 특성을 타고난 것입니다. 개나 늑대는 지금도 서로 별종일 뿐입니다. 모든 동식물이 각기 고유의 특성을 가졌다면 그 뒤에 분명히 그렇게 만든 존재가 있다는 뜻입니다.

동물애호가들은 개는 인간에게 충성하는 애완용이니까 그 은혜를 뒤집고서 잡아먹어선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충직한 애완용 개를 주신 존재에게는 절대 감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아주 선하다고 자부하면서 오직 식용 여부로만 인간들의 의를 판단했습니다.
    
마치 연말에 보너스로 선물상자를 사장에게 받고선 사장에게는 전혀 감사하지 않고선 선물은 잘 사용하고 또 선물상자도 귀한 것이니까 절대 손상시키면 안 된다고 고이 모셔놓는 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장에게 감사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온갖 욕을 퍼붓고 있습니다. 또 아예 사장으로 인정도 안하면서도 선물은 잘 활용했고 상자도 고이 모시고 있으니 자기는 아주 착하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엉터리 의도 없습니다.

만약 개를 애완용으로 만들어 주신 창조주가 없다면 즉, 개도 그런 모습과 특성대로 정말로 우연히 생겼고 그래서 인간이 훈련시켜서 인간의 편의대로 활용했다 칩시다. 그럼 개를 식용으로 활용하겠다는데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이젠 이런 불합리도 없습니다. 요컨대 보신탕 먹는 것을 탓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러려면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을 최소한 인정하는 바탕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박은 수박이고, 호박은 호박입니다. 개는 개이고, 늑대는 늑대입니다. 그 중간의 교묘하게 혼합된 형태도 없으며 그 둘 사이에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교차되어서 상대의 모양과 특성으로 변종(變種)될 수도 결코 없습니다.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께서 만들고 싶었든 그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젠 대다수 인간들이, 심지어 범(凡)기독교계 내에서마저 우주만물은 우연이 작용하여 또 다른 우연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확률 수십억 분의 일의 일도(사실은 실현불가능한 일임) 어쨌거나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지 않느냐고 우기면 그만입니다. 보신탕을 탓하면서 개는 그저 우연히 사랑스럽고 충직한 특성을 갖게 되었을 뿐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또 그 억지는 억지가 아니라 아주 뛰어난 지성과 의로운 도덕성이라고 우기니 억지가 갑절이 되었습니다.  .

“예의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문명과 지성이 뛰어나 보이는 백인보다 자연 속에서 미개하게 사는 인디언들이 더욱 의롭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어떤 의로운 인간보다 차라리  늑대가 더 선하더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그 영화를 볼 때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왜 하필 다친 늑대가 그에게 그 시점에 나타났는지, 원작자에게 그런 메시지까지 포함시킬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해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냥꾼이나 외지에 홀로 사는 자는 개를 키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장교는 초소가 그렇게까지 외딴 곳인 줄 몰랐기에 혈혈단신으로 부임했습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이 너무나 외로운 그를 불쌍히 여겨 늑대를 붙여 준 것은 아닐까요? 가축인 개는 당연히 그곳에는 없고, 또 늑대가 다치지 않고는 장교와 인연을 맺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의 견지에선 늑대가 우연히 나타났다고만 이해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천하 만물을 지으신 후에 아담의 눈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아담은 그 만물에 각기 이름을 지었습니다. 각 종류마다 특성이 이미 다 달랐다는 뜻입니다. 또 그 특성대로 인간의 유익을 위해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수박은 여름에 갈증을 채우고, 호박은 속을 꺼내선 물 퍼는 바가지로 사용하고, 개는 외로워서 바로 곁에 두고 잠 재웠고, 늑대와는  에덴동산의 그 아름다움과 풍족함에 기뻐하며 함께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불행하게도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단숨에 그 모든 질서와 균형이 깨져버렸습니다. 창조주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되어도 극력 부인합니다. 오히려 그런 하나님의 영광을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로 깔아뭉개고선 자신들의 지성과 도덕성이라는 우상으로 대체해 스스로 숭배합니다. 미개인들이라고 무시하던 인디언, 아니 야생맹수에 불과한 늑대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그래서 그 영화를 보고는 하나 같이 수치와 찔림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면서도 자기들은 아주 똑똑하고 의롭다고 주장합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현상입니까? 이보다 더 불쌍한 경우가 있겠습니까? 왜 불쌍하고 비참합니까? 비유컨대 사형을 당해 마땅한 흉악범이 자기는 가장 착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결코 제정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아니 성경이 말하는 바로는 인간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 과제를 해결하는 길은 성경에 계시된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늑대와도 교통하며 함께 춤을 추게 되어야만 합니다. 비록 죄로 찌든 인간들과 피조세계 때문에 그 완전한 실현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미뤄졌지만, 은혜의 복음을 아는 신자들끼리라도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늑대와 함께 춤추기는커녕 같은 교인들끼리도, 아니 가족들끼리도 그렇게 못하고 있으니.....

6/28/2011


사라의 웃음

2011.06.28 23:24:18
*.169.30.48

아멘! 우리 홈피교회의 넘치는 사랑으로 웃음꽃이 피었던 그 시절이 요즘은 많이
그리워집니다.
어느순간 저부터 이렇게 머쓱해지고 쭈삣해진 것을 보며 내가 왜이러지??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정말 늑대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데 우리 성도들끼리는 더더욱 아름다운
춤을 추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 엉거주춤한 저 부터 고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정충열

2011.09.07 06:10:21
*.229.29.170

다행입니다,.세상에,,,,먹을것이 엄청나게 널려 있는데 하필이면 왜 그것을잡아 찿아 드실려는지 참 이해가 불능이군요. 살롬 입니다.

운영자

2011.09.07 17:49:00
*.104.239.214

정충열 전도사님

주님의 사랑 안에서 반갑습니다.
제가 회원가입을 환영하는 메일을 하나 보냈는데 댓글부터 먼저 달아주셨네요.

앞으로도 은혜 받은 귀한 말씀이나 간증들을 종종 나눠주시어
성령 안에서의 아름다운 교제와 동역이 이어지길 소원합니다. 샬롬!

사라의 웃음

2011.09.08 00:00:02
*.169.30.48

전도사님,
저도요 예수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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