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보건기구의 분석에 따르면 전세계에 1억5천만 명이 중증 우울증으로 절망에 빠져 있고 병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따지는 ‘질병부담’이 네 번째로 높다고 지난 주 뉴스위크지가 보도했다.
우울증은 빈부격차와 아무 관계가 없다. 서방 선진국은 국민의 10%, 아프리카 우간다의 한 마을은 AIDS로 인한 가족들의 죽음과 비참한 생활 환경으로 20%가 앓고 있다. 또 유전적으로 우울증이 있는 집안에서도 85%의 발병원인이 스트레스라고 한다. 유전과도 관계 없다는 뜻이다. 정신질환을 수치로 여기는 아랍권에서도 집단주의적 특성 때문에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억눌린 자가 많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지금 전세계는 인종과 문화를 넘어 완전히 우울증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 치료로는 최근 내면의 고민을 대화로 이끌어 내어 치유하는 심리 요법이 약물보다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우간다에서 약물치료를 요하는 중증으로 분류된 환자가 86%였으나 대화요법을 실시하자 6.5%까지 떨어졌다. 미국의 한 의대의 연구에 따르면 대화요법을 하니까 약물이 닿지 않는 뇌의 부위에서도 독특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대화로 잘 낫는다면 역으로 따져 우울증의 원인이 대화 부족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삶의 고난을 함께 이겨내기 위해 의지하고 섬기는 공동체가 점점 상실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우울증은 그 자체로만 끝나는 병이 아니다. 운동력, 사고력, 집중력이 저하되고 다른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떨어진다. 총체적으로 생에 대한 열망을 상실한다. 살아 있어도 산 송장이나 다름 없다. 또 이 병은 아이보다는 어른이 많이 걸린다. 나라마다 열심히 일해야 할 국민의 10-20%가 시체라는 뜻이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전쟁, 테러, 전염병, 에이즈로도 이만한 숫자의 국민을 한번에 죽일 수 없다. 나아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많을수록 도덕타락, 핵전쟁, 환경파괴, 무차별 테러의 위험성은 수직 상승한다. 이보다 더한 위기가 있겠는가? 인류 최후의 치명적 위기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은 사랑의 공동체에서 대화를 통해 섬기는 길 뿐이다. 가정마저 무너지는 지금 그 일은 교회가 짊어져야 할 최후의 사명이다. 교인이 많은 것보다 우울증 환자가 적은 교회가 참된 교회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1-3)
7/4/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