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후(時候)에 따른 비가 사라진 세상
지난주 미국 NASA가 발표한 위성사진에 따르면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오히려 늘어났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럼에도 기후에 대해 모두가 수긍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최근의 기후가 정상은 아니며, 최소한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곳 LA만 해도 올해는 한두 주 빼고는 전혀 덥지 않았고 오히려 서늘했다. 지구 온난화와 역행하는 결과였다. 반면에 모든 이가 이구동성으로 이전보다 많이 습해졌다고 한다. LA 기후가 더 더워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로 몇 년 전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주 콜로라도 주에 일어난 홍수 또한 그렇다. 며칠 사이에 6 인치가 넘는 비가 퍼부어져 가옥만 1만7494채가 침수되고 그중에 1502채가 완파되었다고 한다. 실종자는 천 명이, 그 대부분이 통신시설의 파괴로 연락두절이지 사망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넘는다고 한다. 무엇보다 홍수로 침수된 지역이 제일 적은 주인 로드아일랜드 면적의 두 배가 넘는다는 것이다. 남한의 약 1/10이 완전히 물에 잠긴 셈이다.
이 홍수를 두고 오백년, 천년에 한번 있을까한 홍수라고 한다. 그럼 분명 이전에도 이런 정도의 홍수는 있었다. 지금도 규모는 작아도 홍수는 여전히 곳곳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전에는 비정상적 자연재해는 말 그대로 흔치 않았다. 반면에 지금은 모든 지역에서 어떤 형태가 되었던 비정상적인 기후가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다반사가 되었다. 자연 재해의 규모가 엄청 커지고 훨씬 자주 일어난다거나, 지구 온난화가 확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지역에서 피부로 실감할 정도로 기후가 이전과 달라지고 있고, 그것도 아주 불규칙적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時候)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찌라.”(레26:3,4) 시후에 따라 비가 온다는 것은 농부가 경작하는 순서에 맞추어 수분이 필요할 때는 비를 내리고, 햇볕에 쬐어야 할 때는 비를 그친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시사철을 경험한 그대로 예측 가능한 기후를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또 구약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로 타락하면 기후로 직접적인 징벌의 도구로 삼겠다는 것이다. 물론 역으로 당신께 순종하면 풍작을 이룰 기후를 주신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이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인간들 스스로 기후를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는 근본적으로 공기의 흐름과 변화가 이뤄내는 양상이다. 공기가 맑고 순수하면 그 흐름도 규칙적이 되지만 혼탁하면 불규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산소는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살아있는 공기인 반면에 일산화탄소는 생명을 훼방하는 죽이는 공기다. 하나님은 그 죽어가는 공기를 지구에 충만하게 덮고 있는 수풀을 통해 다시 살아있는 공기로 바꿀 수 있게 하셨다. 시후에 맞는 비를 내리게 하는 조치였다.
그런데 지금은 급속도로 진행되는 도시화와 공업화로 수풀이 없어져 가고 있다. 죽어가는 공기를 살릴 방도가 급격히 줄게 된 것이다. 거기다. 인간의 끝없는 자국 이기주의와 탐욕으로 인해 경제개발경쟁이 무분별하고도 무한도로 진행되고 있다. 두 거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프레온가스배출감소 협약을 외면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는 두말할 것도 없다. 작금 지구상의 모든 공기가 급격히 혼탁해지고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쉽게 말해 공기가 미친 것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하게 제 멋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하나님이 마련해놓은 시후에 맞는 비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인간들은 자랑하는 그 알량한 과학지식으로 기후를 맘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기후 온난화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큰소리친다. 비유컨대 개미가 코끼리와 씨름해 이길 수 있다는 허세밖에 안 되는데도 말이다.
불규칙적인 기후를 규칙적으로 바꾸려면 미쳐서 죽어가는 공기를 생명을 살려내는 순수한 공기로 바꾸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어느 나라가 경제개발을 스스로 포기하겠는가? 최소한 개발을 늦추는 한이 있어도 자연보존을 더 우선시하겠는가? 모든 인간이 남을 위해서 자기를 죽이지 않는 한에는 불가능하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오지 않는 한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 한 가지 예외는 있다. 미쳐가는 공기로 인해 모두가 죽는 재앙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실제로 죽지 않는 한, 죽음에 대해 그것도 남의 죽음에는 눈도 깜박하지 않는 존재다. 최근 화학무기를 동원해 무고한 어린이까지 죽이니 하나님의 진노는 둘째 치고, 공기가 자동으로 더 혼탁해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작금 중국은 급속히 사막화가 진행되고, 한국 연변에서 나는 생선은 먹을 수 없게 되었고, 자연보존을 그렇게 강력히 추진했건만 미국도 미쳐가는 기후로 인한 피해가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지 않는가?
무엇이든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 망함에서 다시 성하게 되는 일은 너무나 어렵고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후가 불규칙적으로 변해 시후에 따른 비가 사라진 것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지만, 제대로 회복하는 것은 수천 년이 걸릴 수 있다. 실상은 인간의 악한 본성이 뿌리 뽑히지 않는 한 아예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데 말이다. 시후에 따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실천해야 할 교회마저 기독교이기주의, 신자개인의 기복주의에 빠져 있으니 미쳐가는 공기로 죽어가는 세상에 더더욱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 아닌가? 우리 모두 힘써 시후에 따라 비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겸손하게 돌아가야 한다. 교회와 신자는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당장 나의 자녀와 손자들이 미쳐가는 공기의 피해자가 될 것이다. 이대로 두면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듯이 모두가 방독면을 쓰고 유리관 안에서 생활할 날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닥치지 않는다고 누가 보증하겠는가? 양극 지방의 얼음이 늘어나고 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설령 기온이 오르는 일은 없다 해도 그 얼음이 혼탁해서 미쳐 돌아가는 공기마저 순전하게 바꾸지는 못할 것 아닌가? 아니면 과학자들의 예측대로 거꾸로 늘어나는 얼음으로 인해 새로운 빙하시대가 곧 도래할지도 모르잖는가?
9/17/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