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촛불을 켜는 것처럼 신에게 말하는 일이 쉽다면 아마도 이번 주에는 하나님이 너무나도 바빴을 것이다. 왜냐하면 쓰나미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방방곳곳에서 온갖 나라의 말로 ‘신이시여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Why God?)’라는 똑 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자의 말이 아니다. 미국 CBS TV 앵커 Dan Rather가 1/6 저녁 뉴스 시간에 한 말이다. 그리고 그 답으로 기자들이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을 만나 취재한 결과를 방영했다. 간단히 그대로 옮겨 보기로 하자.
힌두교 사제는 “인간이 만든 악이 이 땅에 엄청나게 가득 찾고 별들의 위치 변동” 때문에 일어났다고 했다. “세상은 악행으로 인해 벌 받은 것이다”라는 답은 유대교 랍비에게서 나왔다. 불교의 스님은 “이일은 단지 자연의 순환 현상이다. 때때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어디에서 일어날지는 도저히 알 수 없다”라고 답변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이슬람교 사제는 예상 외의 답변을 했다. “이 일은 신이 악행을 심판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 없다. 그렇다면 왜 신이 다른 곳에 있는 악들은 심판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혹시라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기 때문에 신의 심판으로 해석하면 자기들이 누명 쓰는 것을 싫어해서 한 해석은 아닐는지?-필자 주)
이와 비슷한 일이 이전에도 일어난 적이 있었다. 1755년 포루투칼 리스본에 큰 지진으로 일어난 불이 전도시를 파괴했고 이어서 발생한 쓰나미가 생존자들의 대부분을 또 삼켜버렸다. 그것에도 살아 남은 자들이 “신이여 왜 이런 일이?”라고 절규하자 사제들이 거리를 돌아 다니며 자기들이 보기에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켰을 만한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했다고 기자는 보도했다.
마지막으로 미국 워싱턴의 한 성공회 신부는 이렇게 분석했다. “하나님에게 왜라고 묻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희생당할 자를 미리 골라 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하나님을 꼭두각시 인형극 조정자로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줄을 당기지도 않고 또 누가 살아 남고 누가 죽을지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생존자들을 위로해 주는 사람들 사이에 틀림 없이 존재한다. 그분은 이번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질 하등 이유가 없다. 지구 상의 지각들이 움직이면 지구 상의 또 다른 지각이 움직인 것 뿐이다. 이 일은 지질학적 현상이지 하나님을 거론할 필요가 없다.(That’s a geological statement. That’s not a theological statement.).”
다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소위 신에 대해 연구하고 또 심지어 그 말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이 정도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전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말한 것뿐이다. 인간의 사상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제기된 질문인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에 대한 답변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하는 성공회 신부의 결론 부분 언급에 대해선 아연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하나님의 전적 주권 하에 일어난다. 인간의 죄악과 실수 때문에 일어나는 잘못이나 이번 같은 엄청난 자연 재앙마저 하나님이 직접 계획해서 일으켰다는 의미는 아니다. 피조세계는 아담의 원죄로 부패되어 있어 왜곡과 모순이 있게 마련이다. 또 사단이 욥에게 두 번에 걸쳐 온갖 재앙을 일으킬 때에 보다시피 그런 일들도 하나님의 묵인 내지 허락 하에 일어난다. 즉 인간의 타락과 그 결과로 이 세상에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계시고 그 일이 진행되어지는 과정과 그 결과까지 최종적으로 책임지시고 선으로 바꾸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성공회 신부의 말대로 비록 쓰나미가 지질 현상이 그 일차적 표면적 원인일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그 뜻이 무엇일까? 이미 위에서 각종교의 사제들이 답변한 가운데 절반의 정답은 나와 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가장 일차적으로는 사람들이 이번 주에 모두 “신이시여 왜 이런 일이?”라고 의아해 했듯이 세상 만사의 배후에 있는 전능하신 신에 대해 열심히 탐구하라고 하신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자체가 벌써 이일의 배후에는 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최소한 갖게 되었지 않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슬람 사제 말대로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것 같은 데 있다. 이 질문의 진짜 뜻은 사실 “왜 죄없는 사람들까지 죽어야 하는가”인데 이는 어떤 사실 두 가지를 전제로 했을 때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첫째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가 없는 선한 존재라서 세상에서 어떤 재앙도 당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어느 정도 죄인이라는 것은 다 인정하고 있으므로 이것은 맞는 생각이 아니다. 혹시라도 자기는 죽어도 죄가 전혀 없다고 끝까지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할 수 없지만…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다. 그렇게 큰 벌을 받을 만한 큰 죄는 안 저질렀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와 신의 심판 사이에 불균형이 있다는 불만이다. 어떤 구체적 잘못을 직접 범했을 때만 그에 따른 벌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즉 나쁜 짓을 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하면 그 때마다 그에 비례하는 축복이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 앞에 항복하지 않을 자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 분을 경외하며 사랑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두려워서 혹시 벌 받으면, 상을 못 받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으로만 신을 찾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스스로 그렇게 되기 싫어하는 꼭두각시를 자청해서 되고 하나님을 인형극 조정자로 모시겠다는 뜻이 되지 않는가? 나아가 오래 전 리스본에서 있었던 것처럼 남의 잘못으로 자기에게까지 화가 미치지 않도록 인간끼리 신의 분노를 살만한 죄를 지은 자를 잡아 죽여야 한다.
인간은 혹시 자신들이 로보토가 되어도 좋다고 나설지 몰라도 하나님은 다르시다.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닮게 만드셨기에 신의 성품에 참여하길 원하신다. 이번 쓰나미에도 인간을 기계로 취급하지 않으시려고 꼭 살고 죽어야 할 사람을 일일이 선택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쓰나미로 무차별적인 큰 벌을 억울한 사람들에게조차 마구 내린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속에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이 오히려 더 드러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루시는 진리는 오직 하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사랑이다. 로마를 심판하고 유대인에게 복 주셔야만 메시야를 따르겠다는 인간의 요구를 거절하셨다. 대신에 인간더러 오직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죄를 감당하신 하나님의 참 사랑을 제대로 깨달으라고 하셨다. 모든 인간은 단 한명의 예외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상벌에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분의 일방적 사랑과 은혜만이 넘친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께서 모든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재앙에도 그 분의 선하신 뜻이 없거나 궁극적으로 그 선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세상에서 형통하고 평안하게 살아 화를 안 당하도록 하는 것은 인간을 향한 당신의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당신을 찾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이 땅에 있는가 굽어 살피시고 계신다. 이런 재해를 겪고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찾고 또 찾으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이 땅을 거룩하게 변화 시키신다.
결론적으로 “Why God, Tsunami?”란 질문에 간단하게 답해보자.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그 속에 뜻이 분명히 있다. 규모가 엄청나다. 그렇다면 그 뜻 또한 엄청나다. 큰 재앙이다. 그렇다면 큰 분노의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분노를 표시하고 그 분노에 반응시킬 대상은 오직 인간뿐이다. 그렇다면 분노가 클수록 빨리 십자가에 드러난 그 진리와 사랑을 외면했던 죄에서 돌이키라는 것이다. 인간을 향해 더 크게 안타까워하시는 사랑의 마음이 그 속에 있다. 하나님에게는 이것 이상 다른 뜻은 없다.
이것이 아니면 오직 유일한 가능성은 하나님이 이 땅에 없다는 것이다. 있어도 인간 만사를 전혀 주관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그것은 신이 아니고 우주는 단지 스스로 순환할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구태여 “Why God?”이라고 묻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단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쓰나미는 우연히 일어난 지질 현상이므로 앞으로 인류의 운명을 지질학자나 기상학자들에게 맡기면 된다. “Why God?”이라는 질문을 “Why Scholar?”라고 바꾸어야 한다.
이처럼 “Why God?”이라는 질문 속에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데도 인간들은 사단의 미혹 속에 빠져 알지 못한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가장 먼저 인정하여 그 앞에 완전히 항복하지 않고는 절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 생각 속에 하나님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감히 추측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2:11)
1/7/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