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바람이 길 가는 나그네의 옷 벗기기 시합을 한 이솝 이야기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바람이 아무리 폭풍우를 불어제쳐도 나그네는 더 옷을 꽁꽁 감쌀 뿐이지만 태양이 조금만 햇빛을 비추어도 금방 더워서 옷을 벗었다. 그래서 모든 인간 관계에서 특별히 남에게 어떤 일을 시킬 때에는 완력으로 밀어 부치지 말고 온화하게 설득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훈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자기 생각만으로 우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리 외에 엉뚱한 것까지 단정 지어버린다. 이 우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리는 인간 관계에서 강제력보다 친화력이 더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태양과 바람의 능력을 비교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언뜻 생각하기를 태양이 마치 바람보다 더 유익하고 좋으며 능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지난 2주간 틀림 없이 쓰나미의 영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몇 십년 만의 폭우와 바람이 캘리포니아를 덮쳤다. 적잖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내었고 아직도 물이 넘쳐 위험한 곳들이 산재해 있다. 그런 와중에도 지난 화요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따스하게 열어 제치며 활짝 모습을 드러내었다. 따스한 태양 빛이 집안 구석구석 번진 곰팡이와 한기를 완전히 말려버리고 다시 이전의 활기찬 삶으로 되돌려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역시 비바람보다는 태양이 인간을 살기 좋게 해 주는 능력에서 더 센 것처럼 느꼈다.
비록 비바람으로 생명을 잃고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태양이 비바람보다 좋은 것이 아니다. 이 우화를 역으로 재구성해 보자. 태양과 바람이 나그네가 옷을 벗지 않고 계속 꽁꽁 싸도록 하는 시합을 했다고 쳐보자. 누가 이겼겠는가? 당연히 바람이다. 태양이 입김만 한 번 불어도 나그네는 더워서 옷을 벗지만 바람은 한 번 헛기침만 해도 지퍼를 잠그고 꽁꽁 옷을 싸매기 마련이다. 결국 태양이든 비바람이든 그 자체로 능력 있고 은혜가 넘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 전도 하러 갔을 때에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 바쳐진 제단도 있었다. 헬라인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어려운 경우를 겪을 때마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 상황에 맞는 신들을 만들어 내었다. 태양의 신, 달의 신, 바람의 신, 바다의 신 등 수도 없이 많다. 그러다 혹시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들이 있어 그들의 비위를 거스리면 큰일이겠다 싶은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신들까지 고안해 내어 혹시라도 다른 신들에게만 신경 쓰느라 소홀히 대접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자기들 신이 완전한 신이 아니라 부분적이요 그 능력에서 한계가 있는 신들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 신들을 다 합쳐도 혹시나 능력이나 주권에서 모자라는 부분이 있을까 염려했다. 결국 그들의 신 중에는 태양과 바람의 신을 비롯해 참 신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테네 언덕의 파르테논(萬神殿) 안에서 온갖 위엄을 갖추고 아름답고 힘있게 서 있는 조각들은 단지 돌덩이에 불과했다.
많은 피해를 입힌 비바람을 밀어 제치고 태양이 떴으니 태양이야말로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비바람이 없으면 지구상의 공기와 물의 순환이 되지 않는다. 호흡을 해도 자기가 방금 뱉어낸 일산화 탄소를 다시 마시다 숨이 막히게 된다. 공기란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바람에 의해 항상 움직여야 신선한 산소를 인간에게 공급할 수 있다. 바람으로 물을 순환시켜야 물이 썩지 않고 또 비를 내린다. 비가 와야 역으로 공기를 깨끗케 할 수 있다. 바람이 없으면 심지어 비행기 여행도 하지 못할 것 아닌가?
태양이든 바람이든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것에 불과하다. 태양과 비바람의 유일한 존재 이유와 가치는 인간의 생명을 더 풍성하게 유지 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는 인간이 태양이나 비바람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그것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인간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동원하시고 그 분의 계획대로만 움직일 뿐이다. 쓰나미도 마찬가지다.
성경 기록에 따르면 하나님은 놀랍게도 당신의 목적을 위해 이미 쓰나미를 동원하신 적이 있다.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7:12)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실 때에 지구는 물에 덮혀 있다가 물과 물이 나뉘며 땅이 솟아 오르게 하셨다. 그 때에 급격한 지각 현상이 있었고 엄청난 양의 물이 지각의 틈새로 새어 들어가 지하수로 보존되었다.
노아의 홍수 때에 하나님은 이번 쓰나미에서 보다시피 홍수보다 먼저 혹은 동시에 지각들끼리 부딪히게 해 깊음의 샘들을 터뜨렸다. 해저 지진이 일어나면서 이번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해일이 순식간에 전 세계를 덮쳤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완악하게 대적하는 인간들이 혹시라도 홍수로 불어나는 물을 보고 배를 타고 피난 갈 시간적 여유를 가질까 봐 그것마저 전혀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의 궁창을 여시고 비를 40일간 쉴새 없이 퍼 부었다. 순식간에 전세계 전인류에게 완전한 종말의 심판이 닥친 것이다.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이었던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태평양이라는 가장 큰 대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진 인도양에서 일어난 해저 지진 하나로만 캘리포니아에 2주간 쉴새 없이 비가 퍼부었다. 금세기 최대의 자연재앙이라고 할 만큼 쓰나미가 3대륙에 걸쳐 덮쳤고 수십만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이 번에 동일한 크기의 해저 지진이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동시에 하나씩 만 더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얼마나 엄청난 피해가 났겠는가? 단순히 3배의 피해가 아니다. 복합적인 상승 효과로 인한 피해는 도저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어떤 슈퍼 컴퓨터도 계산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쓰나미를 보면서 모든 인간이 반드시 느끼고 반성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어느 누구도 노아 홍수를 기독교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기 지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자 하나님 앞에 목을 빳빳하게 곧추 세운 것이다. 또 성경 창세기의 기록의 그 정교함을 보아라. 얼마나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는가? 누가 감히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두렵고 떨릴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쓰나미를 신의 실수이자 잘못한 일인 양 착각 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천년 전 아테네 시민의 종교 의식에서 단 한 걸음도 진전된 것이 없다.
나아가 신자마저 비바람이 그치며 태양이 비추자 태양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해선 안 된다. 오직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때에 맞추어 주시며 하루도 빠짐 없이 태양을 떠오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한다. 어떤 폭풍우라도 그 위에는 태양이 항상 떠 있듯이 인간을 향한, 특별히 십자가 예수의 은혜로 당신의 자녀가 된 신자를 향한 그 분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 때에 분명히 약속하셨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1,22)
이번 쓰나미가 이 정도로 그친 것은 더 이상 물로서는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증거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이번에도 또 다시 참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반면에 당신이 성경을 통해 하신 말씀은 영원토록 진리임을 전 세계 앞에 다시 한번 엄숙하고도 강력하게 선포하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물의 심판은 없겠지만 불의 심판이 노아 때처럼 불시에 인간이 도저히 피할 짬을 주지 않고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신자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화목하는 직책을 정말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해야 한다. 마지막 때가 바로 내일 아니 오늘 중에라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음을 알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 혹시라도 이번 사태에 인간의 사랑과 온정이 너무 강조되어 인간이 힘을 합치면 어떤 자연 재앙도 이겨낼 것이라고 착각하게 해선 안 된다. 하나님 앞에 대적할 존재란 이 우주 전체에 단 하나도 없다. 오직 그분 홀로 언제 어느 때나 모든 피조물 특별히 인간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대상이다.
신자는 노아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평생동안 미친 사람이라고 조롱을 받더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만이 인간의 유일한 생명의 길임을 외쳐야 한다. 불신자의 죄가 문제가 아니다. 모든 세대를 통틀어 저들은 항상 죄를 탐닉해 왔다.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일차적인 관심은 신자가 제사장 나라로 서 있는가이다. 신자의 이런 외침이 사라지면 다음 번에는 틀림 없이 더 큰 쓰나미가 아니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질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3:9,10)
1/16/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