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가 최고 인기(?)를 끄는 이유
한국 TV 드라마에 가장 자주 등장되는 종교는 아무래도 천주교일 것입니다. 그 교인들의 숫자가 가장 많은 것은 분명 아닐 텐데도 말입니다. 주요 배경 장면이 되거나, 중심무대가 성당이거나, 수녀나 신부들이 큰 역할을 맡거나, 중요등장인물들의 신앙이 천주교이거나, 심지어 악한 범인이 단골로(?) 죄를 회개하는 장소도 성당입니다.
평소 사람들이 천주교에 대해 갖는 인식이 드라마에 그대로 반영된 까닭일 것입니다. 성당이 위치한 장소의 풍경은 아름답고, 건물도 고풍스러운데다, 예배에 경건한 분위기가 자연히 묻어나오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역할에 수녀나 신부들이 적격이며, 특별히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집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주로 어떤 모습으로 묘사됩니까? 목사는 성직자임에도 사기치고 돈을 밝히는 자로, 교회는 부정과 분란의 대명사이며, 신자들은 무식한 광신도 내지 맹신자라는 인상만 심어줍니다. 거기다 많은 교회들이 도심상가에 초라한(?) 모습으로 위치하니까 드라마 배경으로도 부적격입니다.
가끔은 의로운 모습의 개신교도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시청률을 제고해야 하는 드라마로선 최대 다수의 공감을 사야하기에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습이 바로 일반적 인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면 틀림없습니다. 개신교 스스로 자초한 결과입니다. 개신교인들의 잘못된 처신 때문에 성경의 진리마저 왜곡 편향 되게 비춰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시키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며칠 전에 본 어떤 드라마에서도 천주교는 의로운 반면에 기독교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대비되었습니다. 짜증나고 불편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도 자업자득이겠거니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천주교가 일반인에게 더 의롭게 비춰지게 되는 큰 이유를, 이전에도 알기는 했어도 미처 신경을 쓰지 않았던,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 조연급 인물이 회사에서 권력다툼을 하는 와중에 우발적이긴 하지만 부사장을 살해했습니다. 이 자의 신앙도 천주교였는지 성당에 가서 기도하며 회개했습니다. 여기까진 일상적 모습입니다. 그러다 형의 잘못을 알고 찾아온 동생에게 하는 말에 제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네. 그 가족들은 물론 내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내가 죽으면 지옥 가는 것이 당연하며 그곳에서 어떤 큰 벌이라도 달게 받겠네.” 대사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참으로 선하고 의로운 모습입니다. 우선 자기가 저지른 죄를 정확하게 자백하며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 죄 값이 무엇이 되던 기꺼이 받겠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니까 천주교가 일반인의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철저히 회개하는 모습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지은 죄 값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며 선한 이는 천국으로, 살인 같은 엄청난 죄를 지은 자는 마땅히 지옥으로 가야 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물론 죄를 철저히 회개하며 죄 값을 달게 받겠다는 측면에선 분명 의로운 자세이며 개신교인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진술에는 결정적 모순을 내포합니다. 천국 가고 안 가고 여부를 인간이 결정했습니다. 또 살인자는 반드시 지옥가야 한다는 예단(豫斷)이 깔려 있습니다. 심판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지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거기다 착한 자는 천국 가고, 악한 자는 지옥 가려면 도덕적 측면에서 인간끼리 분명한 우열(優劣)이 드러나야 합니다. 또 우열이 여실하다면 착한 자는 자동적으로 천국 가니까 여전히 하나님이 개입될 소지가 없습니다. 그분의 역할은 시험점수를 채점하거나, 천국 문에서 티켓을 검사하는 정도로 제한됩니다. 그분의 고유 영역인 심판과 구원을 인간이 결정하는 셈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했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살인자 같은 중죄인에겐 아예 구원의 문이 닫혀버립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인간이 제한한 것입니다. 이 또한 그분의 사랑의 크기를 건방지게 감히 과소평가했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그분의 사랑을 받기를 인간 스스로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상의 흉학한 사형수도 구원하셨습니다. 아니 모세, 다윗, 바울 같은 성경의 위대한 신앙위인들도 실은 살인자였지 않습니까?
나아가 살인했기에 지옥 간다고 여기는 것은 사실상 “악한 자가 지옥 가야 한다.”는 원리와 상충됩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악한 행동”을 한 자가 지옥 간다고 해야 맞습니다. 세상에서 착한 자라고 칭송 받는 자도 때로는 엄청난 죄를 범할 수 있으며, 반대로 악해 보이는 자도 아낌없는 선행을 베풀 수 있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복잡 미묘한 존재인지라 선행 혹은 악행만 가지고 선인과 악인으로 구별지울 수 없습니다.
성경은 엄숙히 선언합니다. 만물 가운데 심히(가장)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입니다. 또 하나님을 아예 찾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형에 해당되는 죄인 줄 알고도 마음껏 즐기며 범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법정에서 고개를 들고 설 수 있는 인간이라곤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몽땅 당장에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구원은 우리 죄 값을 다 감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들여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겸비하게 항복한 자에게 선물로 주어질 뿐입니다.
결국 천주교를 비롯한 흔히 통용되는 권선징악적 구원관과 개신교의 은혜의 구원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전자는 자신의 죄 값을 치름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의로움이며, 후자는 인간은 아무 하는 일 없이 예수의 공로에 무임승차하려는 얌체 짓입니까? 아닙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며 인간이 사후세계마저 스스로 결정지으려는 독단인 반면에, 후자는 인간이 낮아지고 낮아져서 하나님의 구원을 진심으로 간구하는 소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달게 받겠다고 나서는 것은 분명 의롭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라면 엄밀히 말해 그것으로 자기가 할 바를 다하겠다는 뜻도 됩니다. 인간 의로움의 끝으로 더 이상 할 바가 없어집니다. 이해하기 쉽게 보충 설명해보겠습니다.
가해자가 여유가 많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넘치도록 해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피해자가 감지덕지 여기고 구태여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가해자로서도 구태여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게 됩니다. 오히려 자기가 범한 잘못에 비해 넘치도록 과분한 보상을 해주었다는 자랑이 앞섭니다. 지옥 형벌을 달게 받겠다는 뜻과 같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자가 큰 부자에게 잘못을 범했다면, 예컨대 국산소형차로 최고급외제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면 도무지 자기 형편으로 배상해줄 재간이 없습니다. 손이 발이 되도록 한 번만 봐달라고 용서를 빌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진짜로 돈 한 푼 안 받고 용서해주었다면 어떻게 됩니까? 다음부터는 그 사람을 위해 뭐든지 보답하려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심판만 유독 강조하는 것은 심판을 감당할 자신과 능력이 있고, 심판에서 면제될 자신마저 있으며, 심판을 받고 나면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나 추가로 행할 의무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허물만 지우겠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으면 그 후로는 구원해 주신 분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성숙을 소망하고 실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로는 분명히 개신교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분은 인간이 범한 결정적 행위 한둘을 가지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진심으로 무릎 꿇은 자에게만 영생을 주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분명히 개신교가 성경이 말하는바 즉,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구원관을 가르치는데도 왜 세상에선 그렇게 인기가 없습니까? 물론 그 첫째 원인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마저 쟁취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모든 이들은 생래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논의하는 주제는 하나님이 인기 없는 이유가 아니라 개신교가 왜 천주교에 비해 인기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천주교인들은 자기 믿는바 대로 행하지만, 개신교인들은 스스로 잘 믿어서 구원 얻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 믿음으로 구원 얻은 것입니다. 믿음 자체가 인간의 공로가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공로가 돌아가면 필연적으로 그 자체가 자랑이 됩니다. 그런 후에는 하나님이 그 공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줄 차례라고 기대합니다. 말하자면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은 것 위로해달라는 것입니다. 철두철미한 회개를 거치고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숙해야겠다는 소원이 없습니다.
아무 조건 없는 용서를 받았으면 그분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단과 실천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데 도리어 적반하장입니다. 뒤에서 받힌 고급차 주인에게 사고를 낸 소형차 주인더러 당신이 내 차 앞에 있은 것이 잘못이니 내 차도 당신 비용으로 고쳐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어 주었으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믿게 만들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무조건 무한정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자기 죄 값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천주교인에 비해 덜 의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작금 상당수 개신교회가 이신칭의의 복음만 선포하지 그 복음 안에 담긴 참 뜻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무조건 당장에 믿게 만들어 교회 멤버의 숫자만 늘리려는, 다른 말로 헌금액수를 높이려는 종교적 탐심이 앞선 것입니다. 복음 안에 담긴 참 뜻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살리요. ...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 & 12,13)
요컨대 정말로 교회마다 참 복음이 가르쳐지고 교인들이 그대로 순종하면 개신교가 천주교의 몇 배나 더 인기를 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가 당시 사람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기독교가 염병처럼 번져 나간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 않습니까? 심판의 하나님만 전하는, 그것도 인간이 그 행사를 대신하는 종교를 하나님에 의해 당신의 공의와 사랑이 완벽하게 실현된 은혜 안으로 아무 조건 없이 그분께서 직접 초대하는 종교에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바꿔 말해 세상에서 개신교가 천주교에게 인기가 역전된 까닭이 사람들의 편견, 선입관, 오해, 무지 때문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대교회와 그 교인들과는 판이하게 달라져버린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3/25/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