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을 크게 잡지 말고 줄여라.

조회 수 1909 추천 수 207 2004.08.04 05:27:22
6/11/04

전리품을 모두 불태워라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샤를 향해 승승장구하며 진군할 때의 일이었다. 어떤 결정적인 전투에서 패배할 조짐이 보여 위기에 몰렸다. 병사들이 너무 계속해서 이기다 보니 태만해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앞 선 전투에서 탈취한 수 많은 노획물을 운반하느라  행군이 늦어지고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대왕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병사들에게 노획물을 전부 한 군데에 모아 놓고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다. 군사들은 처음에는 불평했지만 곧 그 명령의 깊은 뜻을 이해했다. 당연히 그 다음 전투에서도 대승을 거두었다. 어떤 역사가가 이 사실을 기록하면서 “마치 그들에게 날개가 주어진 것처럼 가볍게 다시 걷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필요로 하고 소망하는 것들을 열심히 노력하여  이루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계획하고 원하는 것을 달성하는 삶이  가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마저 신자들에게 "비전을 크게 가져라. 믿음으로 무엇이든 구하라. 구하는 것은 이뤄진 것으로 믿으라”고 가르친다. 업적 지향적인 비전을 심어주기 바쁘다. 나아가 하나님을 신자가 소망하는 그 비전 대로 이뤄주실 수 있는 분으로 소개한다.  

물론 신자도 현실에서 원대한 목표를 갖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뤄나가야 하는 그 원리는 맞다. 그러나 문제는 신자가 갖고 있는 소망 가운데 정작 쓸 데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른다. 인생은 소망하는 것을 쟁취하여 쌓아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쓸모 없는 것들을 버려 나가는 싸움이다. 이사를 해 보면 우리가 십년에 한 번 쓸까말까 하거나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물건들을 얼마나 많이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었는지 발견하고 놀래지 않는가?  

신자가 현실의 삶에서나 신앙 생활에서 자신이 앞서 나가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질질 끌려 다니거나 눌려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꼭 더러운 죄악에 빠져 있거나 사탄의 시험에 넘어 간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현실적으로도 돈이 부족하거나 병이 들거나 인간 관계가 비뚤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매사가 형통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그렇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알렉산더의 군사들처럼 우리 내면 속에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로마로 행선 할 때에 폭풍우를 만났다. 거센 풍랑이 언제 끝날지 몰라 처음에는 식량을 아꼈다. 그러나 눈 앞에 육지가 보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음식을 나눠 먹고 원기를 회복한 후에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갖고 있던 비축분 식량을 전부 바다에 던져 넣었다.(행27장)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든 빨리 그 풍랑을 뚫고 육지에 도착해 생명을 건지는 것이었다. 알렉산더 대왕도 전투의 궁극적 목적은 승리에 있지 노획물을 많이 거두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고대 전투에서 패배는 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그에 비하면 노획물은 승리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부산물에 불과했다.

어떻게 믿음의 승리를 얻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신자의 내면을 누르고 삶을 얽어 매는 것들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가? 기도하고 말씀 보면 우리 속에 있는 여러 욕심과 계획들이 없어지는가? 경건의 훈련을 쌓다 보면 세상의 것들이 아무 소용 없음을 자연히 알게 되는가? 세상의 것을 줄이라고 해서 종교적, 도덕적, 금욕적 훈련만 하며 살아라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버리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 것인지 분명한 기준을 먼저 세워야 한다. 무엇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뤄야 한다. 어떤 것을 얻는다는 의미는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 숭배라고 했다.(골3:5) 탐심이라는 것이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치의 양을 정도 이상으로 많이 잡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아무 상관 없이 신자가 자기 멋대로 정한 것들을 꼭 이루기 위해 동원하는 열심과 치성의 양이 많은 것이 탐욕이다. 따라서 성경적 탐욕이란 목표치의 양보다 꼭 이루고자 하는 집착의 양이 많은 것이다. 나아가 이것도 이루고 싶고 저것도 이루고 싶어 정함이 없는 두 마음이 탐심이다. 제대로 분명하게 정한 것이 없으니 그저 온갖 것에 묶여 있을 수 밖에 없다. 마치 손발과 관절마다 줄에 메어 달린 꼭두각시 인형 같이 부자연스럽고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라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탐할 필요가 없고 안달복달해 치성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라고 해서 구체적으로 현실의 삶에서 어떤 방향으로 갈까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자가 자기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바로 서 있느냐의 문제다. 땅에 있는 지체를 버리고 위엣 것을 찾으려는 인생의 가치관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다.

신자는 자기 인생에 대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단 한 문장으로 줄여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의 기준을 미리 결정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영혼이 날개가 달린 것처럼 가벼워질 수 있다.  자꾸 노획물에만 신경을 쏟으면 신앙 행군이 늦어지고 지치게 마련이다.  

신자가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은 바로 이 버리는 싸움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 무엇이 더 중요한가  그 기준을 하나님께 물어서 세우는 작업이다. 그 기준이 확고하게 서 있다면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동으로 갈까 서로 갈까 하나님께 물을 필요가 없다. 세상의 것을 버리는 작업에는  열심과 치성이 전혀 필요 없다. 그것들은 무엇을 꼭 얻어 내고자 할 때 동원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비전을 크게 세워 놓고 달성하고자 할 때 믿음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다. 내 속의 소원과 필요를 버릴 때야 말로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당장 못 살고 힘들어 불편해질 것 같은 것들을 버릴 때에 하나님만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믿음은 신자의 삶의 목표를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단순화 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지 내 삶을 다양하고 화려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내 목표 안으로 끌어 넣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힘에 지나치는 것을 소원하여 하나님께 간단하게 해치워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도 우리 요구대로 그렇게 쉽게 해치워주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항상 신자에게  이 땅에서 진정으로 해야 할 것 오직 하나만 하라고 요구하신다. 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재능과 은사를 신자에게 이미 다 주셨고 그것을 갈고 닦도록 세상에서 온간 체험과 연단을 겪게 하신다. 우리가 그 일이 무엇인지 알아 내어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은 그 분이 우리 속에 심어 주신 것이다. 나아가 그 소원을 하나님 당신이 이루어 주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지며 함께 하신다. 신자는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귀하게 가꾸면 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시게 하시나니”(빌2:13),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신자가 비전을 크게 잡을 필요가 없다. 비전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자신의 뜻과 계획을 보여 주는 것이지 우리가 자의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 비전을 잘 보기 위해 신자가 세운 자신만의 계획을  계속해서 하나씩 줄여 나가야 한다. 신자 스스로 갖고 있었던 비전들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마지막 하나를 붙들기 위해 다 버린 후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연관이 없는 다른 모든 것들에 관해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하나님이 나에게 이뤄주신 일들을 신자가 지나고 나서 회상해 보면 하나님 만의 때와 방법으로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으로 바꿔진 것을 안다. 우리 예상과 기대와 꿈꾼 것을 훨씬 초과할 뿐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뤄진 것이 더 많음을 발견하고 놀래지 않는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시는데 우리가 양을 늘리거나 이루고자 하는 집념을 늘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증인들을 보라. 특별히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린 것 같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 외에는 세상의 어떤 매혹적이고 권세 있는 것들에 관해선 철저하게 외면했던 자들이다. 세상에 의해 그 소명이 자칫 잘못 된 영향을 받을 것들 특별히 얽매이기 쉬운 죄들은 완전히 버렸다.

신앙 생활을 승리로 이끄는 길은 비전을 크게 잡아 믿음으로 쟁취해 내는 것이 아니다. 내 속에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힘에 부친 내 자신의 비전을  계속해서 줄여 나가는 것이다. 대신에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비전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그 하나 만을 위해 일 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그 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김순희

2010.08.21 10:46:47
*.10.64.224

자신의 비전을 하나님의 비전이라 착각하면서부터 생긴 이상한 현상들 앞에 얼마나 많이 당혹스러웠던지 모릅니다. 전리품을 불에 태우는 그 깊은 뜻을 발견하는 것이 신앙의 실력임을 다시한번 맘을 모으고 생각해봅니다.

생명의 중요함, 전리품보다는 생명의 귀중함의 그 무게를 늘 느끼며 그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신자임을 확인하는 삶이길 소원해 봅니다.

날마다순종

2020.08.05 16:13:20
*.14.99.253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비전을 크게 세워 놓고 달성하고자 할 때 믿음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다. 내 속의 소원과 필요를 버릴 때야 말로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당장 못 살고 힘들어 불편해질 것 같은 것들을 버릴 때에 하나님만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믿음은 신자의 삶의 목표를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단순화 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지 내 삶을 다양하고 화려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내 목표 안으로 끌어 넣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신자가 비전을 크게 잡을 필요가 없다. 비전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자신의 뜻과 계획을 보여 주는 것이지 우리가 자의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 비전을 잘 보기 위해 신자가 세운 자신만의 계획을  계속해서 하나씩 줄여 나가야 한다. 신자 스스로 갖고 있었던 비전들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마지막 하나를 붙들기 위해 다 버린 후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연관이 없는 다른 모든 것들에 관해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말씀 감사합니다.

날마다 나를 죽이고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 사는 것. 신자로서의 살아가야할 이 모습을 저를 비롯하여 이곳을 찾는 모든 성도들이 가벼히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어리석은 자녀들이 되지 않도록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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