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침체의 가장 중요한 원인?

조회 수 3301 추천 수 308 2006.10.04 23: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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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에베소가 망한 이유

에베소는 초대 교회 당시의 로마 제국의 행정과 교통의 중심으로 문화와 산업이 아주 융성했던 도시다. 케이스터 강어귀에 위치해 있는 항구로서 넓은 길들이 잘 마련되어 있었고 체육관, 목욕탕, 원형경기장 등 로마 시대의 모든 영화로 가득 찬 도시였다. 특별히 고대 사회의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는 어마어마한 다이아나 여신의 신전으로 더욱 유명했다.

그런 도시가 몰락한 원인으로 일반적으로 아랍의 침입과 지진 등을 꼽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 하나 있었다. 케이스터 강에서 침적토가 밀려와 항구로서의 구실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에 모래가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나 흔적도 없이 물 밑으로 조금씩 쌓여서 결국에는 배가 들어올 수 없게 된 것이다.

신자의 영적 상태도 마찬가지다.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별 것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아주 작은 죄와 허물이 오랜 기간 쌓이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또 죄나 잘못이라고까지는 볼 수 없지만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방해하는 태도나 습관도 그렇다. 예컨대 자꾸 뒤로 미루는 게으른 습관 혹은 인간적인 의리를 앞세우는 태도 등이다.

이런 영혼의 침적토의 특징도 에베소 항구를 멸망시킨 모래와 똑 같다. 잘못을 범하고 있는 동안에는 잘못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폐해가 생겨도 초기단계에는 모르고 넘어가거나 그 피해가 아주 미미해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다 일단 그 폐해가 겉으로 드러나면 우연히 발견한 말기 암처럼 완전히 망한 이후라 도저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난감해진다.    

그런데 간혹 신자에게 그렇게 되는 데에 꼭 하나님이 한 몫 거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 문제다. 자기는 무지하고 불완전하므로 하나님이 바로바로 깨닫게 해 주셨더라면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신자의 핑계와 변명일 뿐이다. 하나님이 신자가 잘못할 때마다 징계하신다면 우리 모두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매번 벌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은혜다. 그런데도 하나님에게 그 책임을 미룬다면 배역의 죄 위에 핑계되는 죄까지 하나 더 얹는 셈이다.  

선악과 금령을 위반한 후 하나님의 추궁을 받은 이브는 그 책임을 사단에게 미루었다. 아담도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칭3;12)라는 핑계를 대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두고 언제 어디서든 보이게 해서 당신이 살아계셔서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하고 계심을 한 시라도 잊지 않게 했다. 그런데도 최초의 인간들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오히려 자기들 활동을 묶는 장애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영적으로 침체하지 말라고 성령을 주셨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했다. 당신이 신자를 한 시도 떠나지 않고 보호하고 인도하실 뿐 아니라  그 사실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오히려 하나님이 자기가 죄를 짓거나 나쁜 일에 빠지는 것을 일일이 막아주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불평이다.  

영적인 침체가 오면 가장 먼저 진정한 회개를 하고 또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묵상해야 한다. 그 일은 하지 않고 그런 핑계나 불평부터 먼저 갖는다는 것 자체가 영적 무지를 넘어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다는 증거다. 역으로 그런 불만 때문에 영적인 침체가 더 온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심지어 영적인 침체가 오는 것과 그것을 빨리 없애주지 않는 것마저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하나님인데도 신자인 나를 항상 바로 세워주지 않으니까 그분 잘못이지 내 탓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자가 갖다 대선 절대로 안 되는 핑계인데도 가장 자주 동원되는  핑계다.

그런 핑계가 준비되어 있는 자야말로 본인이 날마다 영적으로 조금씩 침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의식할 줄 모른다. 나아가 그런 핑계를 핑계 삼아 자신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나빠진 것을 즐기려 든다.

감사의 특성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 말고 신자가 일반적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으로 침체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겠는가? 죄인가? 그렇지 않다. 신자들은 무의식중에도 죄를 짓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또 일단 죄를 범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 앞에 두렵고 사람들 앞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아무리 죄의 권세가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꼼짝 없이 붙들 힘이 있어도 신자는 수시로 기도하며 말씀 보기 때문에 최소한 불신자보다는 죄를 덜 짓게 되고 또 짓더라도 회개하며 조심하게 된다.  

또 도덕적으로는 전혀 악하지 않으면서 현실적 평안과 기쁨을 주는 일들이 신자에게도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당장에 부정적 영향이 없어 보이더라도 만약 그 배후에 사단이 있다면 신자는 성령이 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은 몰라도 그런 기쁜 일들 중에도 자신이 영적으로 눌리고 있다는 것만은 깨달을 수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던 신자 스스로 영적 장애의 원인을 파악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고쳐 나가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야금야금 심령을 파고들기에 본인도 전혀 인식 못하는, 그래서 더욱 큰 장애가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어떤 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자신에게 눈에 띄는 변화나 영향을 전혀 끼치는 것 같지 않은데 나중에 보면 가장 큰 영적 폐해로 바뀌어져 있다.  

그것은 바로 감사가 모자라는 것이다. 언뜻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나님에게 감사를 하던 안 하던 외부적인 변화가 없고 또 자신에게도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감사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행위라 감사한다고 해서 더 이상 좋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도는 힘든 일을 해결 받고, 찬양은 정서적 충만이 생기고, 말씀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고, 봉사도 보람과 가치를 느낀다. 그러나 감사는 단순히 감사로만 그친다. 신자가 절실하게 해야 할 이유와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라고 하면 꼭 고마움을 표시하는 어떤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니까 더더욱 강하고 뜨거운 성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미 끝이 난 어떤 일을 감사해 봐야 하나님께 더 받을 것도 없는데 구태여 더 뜨거운 성의가 그리 쉽게 바쳐지겠는가?

참 감사란 그렇게 많은 성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의외로 단순한 것이다. 상대의 잘한 점을 그냥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다. 흔히들 한 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고 말한다. 꼭 보상 행위가 따르지 않더라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로 감사가 족할 수 있으며 또 그 자체가 감사의 본질이라는 뜻이지 않는가? 한마디 말이란 상대의 감사할 만한 행위를 진짜로 감사할만한 행위였다고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구태여 화려한 수식어나 정성어린 단어 선택이 따르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니 하나님에게는 더욱 그렇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과연 어떤 보상을 해 줄 수 있겠는가? 감사 헌금과 십일조는 나중 문제이고 사실은 아주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해주신 일이 감사하면 감사하다고 입술로 고백하면 된다. 하나님도 진정한 감사 없이 드리는 제사가 오히려 더 문제라고 말씀하셨지 않은가?

그런데도 감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준 것들이 별로 감사할만한 거리가 못되더라는 불만의 표시다. 아니면 신자로서 주일날 예배드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에게 구태여 일일이 감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신경 내지 게으름이거나...  

신자가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감사거리가 없다고 불만을 가지는 것은 그 정도야 어찌되었든 고난 중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고난이 끝나고 평안을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서 감사하지 못할 신자는 아무도 없다. 참 감사란 오히려 고난 중에 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도 분명히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으며 범사에는 당연히 고난도 포함된다.

물론 환난 중에 감사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자꾸 감사를 정서적 측면으로만 하려고 해서 그렇다. 감사를 잘 하려면 그 특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감사의 또 다른 특성은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장이 보너스를 주면 사장에게, 아내가 생일 선물을 주면 아내에게 감사해야지 보너스나 선물에게 감사하는 법은 없다.  

그런데도 이런 간단한 감사의 원칙이 하나님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신자의 감사의 유무(有無) 여부가 현실적인 풍요와 궁핍에 따라 결정된다면 그 상대방인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일어난 현실적 일에게 감사하는 셈이다. 보너스나 선물을 앞에 두고 절하는 것과 똑 같다.  

실제 현실에서도 상식을 갖춘 자라면 회사 사장과 아내에게 꼭 보너스와 생일선물을 주어야 감사하는 것은 아니다. 안정된 직장을 주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게 해준 사장에게, 묵묵히 집안일을 감당하며 자식을 잘 키워주는 아내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때때로 그 감사를 표하지 않는가?  

환난 중에 하는 참 감사

그런데 좋은 일 대신에 그 배경에 있는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한다면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궂은일에도 그래야만 한다. 궂은일을 주관하시는 이도 하나님이며 또 반드시 신자가 알지 못하는 당신만의 선한 뜻과 계획이 그 안에 있어 종국에는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가 감사가 부족한 이유가 기도나 말씀에 등한히 해서가 아니다. 평소 하나님에 대한 경배가 모자란다는 뜻이다. 또 다시 예배 참석율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감사가 감사한 일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에 대한 감사도 단순하게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감사한다고 해서 종교적인 열심과 치성을 최고로 만들어 바칠 것까지 없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출발점이자 사실은 거의 전부다. 신자이면서 그래야 하는 줄 잘 알면서도 환난 중에 감사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자꾸만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일어나게 했을 리가 없다는 의심과 불만 때문이지 않는가?

그렇다. 하나님이 일부러 신자에게 나쁜 일을 일으킬 리는 없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과 무엇이 원인이었든 간에 최소한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허용하셨지 않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계속 그대로 두시겠는가? 반드시 선으로 이끄실 것 아닌가? 이 사실 하나만이라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지 않는가? 아니 불평 하지 못할 확실한 근거는 되지 않는가 말이다.

환난 가운데도 매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묵상하며 기도하면 반드시 그분께서 위로와 힘을 주신다. 형편은 나아진 것이 없어도 영혼이 새 힘을 얻고 감사할 수 있다. 바울 사도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간구하라고 했다.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환난 중에 있다는 말이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감사하면 당장에 좋은 일로 바꿔주기 이전에 하나님의 평강이 신자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서 그 염려를 없애준다고 했다. 감사할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넘친다는 것이다.  

환난 중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신자는 눈물이 나는데도 웃음이 나오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된다. 불신자는 환난 중에 감사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선물을 주시는 분 대신에 선물에게 절을 한다. 신자는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겨야만 웃는 불신자와는 달라야 하고 또 실제로 다를 수 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일어나는 범사의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신자가 해야 할 더 중요한 감사는 따로 있다. 기쁨과 환난 중에 보다는 말 그대로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신자가 미처 감사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화끈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쁨과 환난은 사실은 인생에서 아주 적은 부분이다. 일상적이고도 아주 작아 보이는 일에 그분의 감사거리는 훨씬 더 넘치도록 숨겨져 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만 제대로 인정하여 매사를 그분의 생각으로 채워보아라. 자신도 놀라자빠질 정도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감사가 없으면 불평 밖에 나오지 않는다. 불평하는 곳에는 감사가 당연히 실종 된다. 그 중간은 신자에게는 아니 어떤 사람에게도 없다. 누워 자는 일 말고는 모든 인간에게 끊임없이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 있으며 또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감정에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감사든 불평이든 둘 다 없으면 식물인간일 뿐이다.

지금 혹시라도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는가? 당장 기도하고 말씀보고 찬양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것들을 영적인 힘을 얻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불평을 없애고 감사를 회복하는 수단으로 동원해야 한다. 다른 말로 기도하고 찬송하면 당장에 불평할 일들이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나쁜 일을 없애고 빨리 기쁜 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선물 준 사람보다 선물보따리에다 대고 절하는 것과 다름없다.  

불평거리가 생겼거나 감사거리가 없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 또한 선물 보따리가 생겨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할 대상인 참 하나님을 찾지 못했기에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불평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사의 본질은 하나님을 진짜 하나님답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사를 신자의 좁은 소견 안에 한정시키지 말고 하나님의 광대한 품 안에 넣어서 판단해야 한다. 쉽게 말해 항상 하나님과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실종된 감사들이 어느 듯 나타나고 또 영적인 침체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라질 것이다.

10/4/2006


김문수

2006.10.05 03:01:15
*.75.9.173

환난 중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신자는 눈물이 나는데도 웃음이 나오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된다. 아멘!!!!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 오겠느냐 하니라 -

제 사부와 저의 공통적인 생각은
이런 행동을 한 다윗왕에게
절대 믿음이없다고 처신을 올바르게못했다고
돌멩이를 던질수없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너무 신기한것같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올바르게 사는것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훌륭한 관계라 생각했었는데,

물론 올바르게 사는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정말로 신기하고도 신기한점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환난중에서 올바르게 처신했을때나
그렇게 처신하지 못했을 때나

하나님께서는
당신만의 특유의 방법으로
어느쪽 방향으로 행동했어도
깨닫게 만드셔서 (저는 후자의 깨달음이 더컷음)
당신앞에서 무릎꿇게 만드시면서
나는 여호와라 말씀하시니,

시간이 지나면서
자동으로 깨닫는 사실 한가지는
바울형님의 슬프고도 당당한고백!!!!
나는 죄인중의 괴수
오직 하나님의 공로와 은혜만이
점점 깊이 인식됨을 느낄뿐입니다. 샬롬!!!!





정순태

2006.10.05 10:51:49
*.75.152.75

목사님 가르침에 아멘!!!

형제님 보충말씀에도 아멘!!!

황호연

2006.12.26 13:17:15
*.57.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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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라 하신말씀이 생각나 자기전에 감사의 기도(평안히 누워 잘 수 있는 집이 있슴에 대해)를 드렸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게 진정한 감사가 아니었다는걸.. 제가 그 감사의 조건에 대해 사람들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집이 코딱지만하고 고개를 똑바로 들면 머리에 문턱이 부딛쳐 아프다는둥.
소변을 볼때도 목을 90도로 꺽어야 할만큼 화장실이 낮은 다락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불평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래서 감사조차도 쉬운게 아니란걸 알았습니다.

주머니에 전 재산이 500백원인 사람이 그것을 인해 감사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5000만원에도 5억에도 감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만..
진정 내 삶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하나하나 들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일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또 그런 자세로 살아가기까지 훈련되어야 하는 시간들이
무겁게 느껴질때도 많습니다.

오늘도 내앞에 주어진 모든 조건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며
감사를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그 누군가는 하루에 감사하는 10가지를 적어서 감사하는 생활을 했더니
자연이 얼굴이 이뻐지더라는 연예인의 얘기처럼 어떤 목적때문이 아닌
감사 그대로의 감사를 깨달아 가는데 성령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할뿐입니다.

목사님의 홈피를 알게 해주신것에 대해서도
오늘 이렇게 감사할수 있는 말씀을 듣게 해주신것도 감사드립니다.

김순희

2010.09.07 10:27:34
*.161.8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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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침체를 자신이 느끼고 있다면 더 이상 영적침체가 아님을, 문제는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우리가 발견치 못한다는 것..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더 선명해진다면, 우리의 영적시력이 점점더 좋아진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 높으심, 그 놀라우신 능력, 그 섬세하신 사랑의 방법 앞에 그저 놀라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음을 알게될 것이기에...

저녁놀의 아름다움과 저 별과 달을 매달아 놓으신 솜씨며 그리고 촉촉한 아침이슬을 머금은 야생화의 싱싱함을 바라보면 그 손으로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시며 한 나라의 역사를 그 손으로 이끄시며 한 개인의 역사를 하염없는 사랑으로 만지시며 인도하여 가심에, 그 수고하심에, 그 사랑하심에 우리 모두 무릎을 꿇고 감사의 몸짓으로 춤을, 감격의 목소리로 찬양을 매일 매순간 올려드릴 수 있기를...

사라의 웃음

2012.06.24 22:42:31
*.109.8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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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란, 하나님의 그 아름답고 신기하고 평안하고 고요하고 푸근하고 넓디 넓은 그 품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하여주심을 느끼는 것, 그렇게나 사랑해 주시는 그 사랑을 깨닫기에 무한히 감격하며 감사할 수 밖엔 없는 사귐이 기도임을 배웁니다. 그러하기에 감사는 하나님 임재 가운데 있기에 아주 자연스러이 고백될 수 밖엔 없는 것임을 배웁니다.

날마다순종

2020.08.28 16:41:27
*.14.99.253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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