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2002
찬양 예배에서 누구든지 참여하는 나눔(Sharing)의 순서를 갖고 또 그 나눈 것을 가지고 성경말씀에 비춰 생각해보는 순서는 참으로 중요하다. 신자의 삶 속에서 실제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 안에서 다시 확인하므로 서로 믿음의 도전과 위로가 된다. 머리 속에만 계시던 주님이 가슴까지 내려오게 된다.
그런데 성도들이 서로 나눌 것이 없으면 큰 일이다. 목사가 성경을 갖고 풀어서 전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난 한 주간 신자들이 별로 나눌만한 것이 없는 고달프고 힘든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더욱 서로 나누어야 한다.
꼭 은혜 받은 것만 나누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간증이지 나눔이 아니다. 나눔이란 말 그대로 나눔(Sharing)이지 간증(Witness)이 아니다. 기쁘고 은혜 받은 일은 당연히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기쁜 일이 생기면 나누는데 주저할 사람 아무도 없다. 아무나 붙들고 그저 자랑하고픈 생각이 자연적으로 생긴다. 반면에 슬프고 힘든 일들은 자기의 연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 같아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정말 친한 친구 말고는 가능한 숨기고 싶어진다.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은 주 안에서 하나가 되고자 함이다. 교회가 수행하는 일과 담임 목사의 방침에 일사불란하게 단결하라는 뜻이 아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끼리 가장 친한 친구 이상이 되어야 한다. 자랑, 교만, 시기, 질투 그 어느 것도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나누는데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 특별히 고난 가운데 서로를 위해 기도하여 주님 주시는 위로를 체험하고 함께 나누어야 한다.
어떤 미국 목사가 커다란 흰 종이의 한 복판에 까만 점을 한 개 그려서 청중들에게 들어 보이며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모두가 “검은 점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목사가 “맞습니다”라고 하면서 “그 외에 또 무엇이 보입니까?”라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목사가 “검은 점 외는 정말 다른 것이 안 보입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청중들로부터 “안 보입니다”라고 한 목소리로 합창하듯이 대답이 들려 왔다. 그러자 목사는 “정말 놀랐습니다. 여러분은 가장 중요한 것, 즉 종이 전체는 전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기쁜 일만 간증하려 하니 지난 한 주간도 힘들게 산 것 같아 나눌 것이 없다. 하지만 정작 중요하고도 더 큰 흰 종이는 보지 못하고 우리의 시선이 자꾸 검은 점에 모였기 때문에 나눌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검은 점은 흰 종이 전체 면적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이 없다. 아주 사소한 힘든 일에 관심이 뺏겨버리면 우리가 받았던 더 큰 축복에 대해 감사할 여지가 없어진다.
힘든 일은 겨우 검은 점에 불과하고 받은 은혜는 그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고 넘치는 흰 종이 여백 만큼 크다. 그럼에도 제대로 기억해 내지 못하는 까닭은 항상 까만 점만 보는 우리의 습관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시103:2)”라고 했다. 분명히 받은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아주 특별한 은택만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것마저 잊어버린다. 대신에 아주 가끔 우리 삶에 찍히는 검은 점만 기억하고 괴로워한다.
흰 종이는 검은 점을 사방에서 완전히 둘러 싸고 있고 검은 점은 흰 종이 안에 품어져 있다. 우리의 고달픈 삶도 우리 눈에는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주님의 크나큰 은혜의 품 안에 붙들려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지만 하나님은 절대 그 사랑하는 자녀를 놓는 법이 없다.
어제 마침 한국에서 손님이 와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그 복잡한 LA의 프리웨이에서 우리 앞에 가던 카고 트럭에서 대형 사다리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마침 뒤를 따르던 모든 차들이 거리가 좀 떨어져 아무 사고 없이 무사했다. 그런데 막상 그 트럭의 주인은 자기 차 뒤에서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뻔한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그냥 달려 가버렸다. 우발적인 것 같아 보이는 그런 일들 가운데도 반드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저를 비롯해 누군가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신자의 삶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흰 종이에 검은 점이 찍힌 정도로 고난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만약 그 작은 점마저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검은 점이 있어도 흰 종이 여백을 못 보는데 하나님의 은혜는커녕 존재조차 믿지 못하지 않겠는가? 감사와 찬양과 경배는 둘째 치고 하나님을 찾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자의 삶에 때때로 찍히는 검은 점들은 바로 하나님을 찾고 은혜를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다. 나눔과 간증 거리가 풍부하게 만들고 성도들간에 서로 위로와 격려와 도전이 넘치도록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다.
이제부터는 찬양 예배에서 받은 은혜만 간증하려 하지 말자. 우리 삶에 찍힌 검은 점들이 기적 같은 방법으로 깨끗해진 것만 은혜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종이의 커다란 흰 여백이야말로 더 크고도 진정한 은혜다. 평소에는 종이의 흰 여백이 잘 안 보이듯 하나님 은혜를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그 때는 작은 점이라도 갖고 나와 나누어라.
간증은 혼자만 은혜 받은 증거이지만 고난을 나누면 함께 기도하여 그 고난을 완전히 극복할 때까지 성도들 모두가 은혜 받는다. 주 안에서 참된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 세상이 모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자만이 누리는 축복이다. 바로 이 일을 하기 위해 찬양 예배로 모이는 것이지 누가 은혜를 많이 받았는가 경연장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다. 혼자 간증(witness)하기 보다는 다 같이 나누는(shareing) 예배로 모이자!
여기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네요.
나눔의 중요함이요.
저희교회는 사실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여서
고통을 서로 부끄럼없이 고백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그 나눔으로서의 위로와 기쁨과 감사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나만큼 알고 나만큼 위로해 주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
처음엔 참 많이도 부끄러웠습니다.
처참한 현실을 고백하는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먼저 고백하니 다른 분들도 좌~~르~~륵
결국은 모이면 헤어지기 싫은 형제애가 매일 송글 송글...
조금만 아픈 일이 있어도 이젠 서로 서로 고백하며 함께 울어주는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은혜받은 것 간증하는 경연장이 아니고 함께 고통도 기쁨도 나누는 예배로 모이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