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목사님께서 그들도 불쌍한 자라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하셨는데 오늘 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미성년자를 비롯해서 십수명을 성폭행 성추행한 모 대표가 포털사이트에 오르내렸습니다.
특히 사회적 위치를 이용해서 여성을 악의적으로 성추행하고 성폭행한 인물에 대해서는 잠을 이루기 힘들정도로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 몇 년 전 n번방 사건도 그렇고...
일전에 원수를 용서하는 기도도 해야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셨는데 그저 주님니 갚으실 것이니 조용히 그들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자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성폭행범이나 살인범이 회개를 한다고 해도 피해자가 살아돌아오는 것이 어니며 그들의 성폭행당했던 끔찍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않습니까. 그런 자들에게 제가 하고싶은 기도는
"절대 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게 하시고 저대로 이 땅에서도 벌을 받고 죽어서도 영구적인 지옥불에 불타오르게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입니다 . 악인의 회개를 위한 기도를 악인 본인이 하는 거야 본인이 알바 아니지만 제3자나 피해자의 가족이나 연인이 가해자를 위해 기도하고 일흔 번에 일곱번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너무 가혹한 것 같습니다.
구약시대에서 악인에 대해 가차없이 응징하셨던 공의로운 하나님이 그립습니다.
학창시절부터 따돌림도 당하고 사회적 약자 입장에 있던 경험때문인지 피해자들에게 너무 감정 이입이 됩니다.
제가 비성경적인 그리스도인 인것일까요?
일전에 하나님께 무엇이든 기도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진심으로 그들이 복음을 절대 깨닫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닌 것일까요?
저에게 분노를 쏟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진리를 알고도 막상 그 진리를 적용해야만 할 때에 그러지 못하는 것이 신자답지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자라도 잘 살펴보면 죄로 타락한 세상과 주변 죄인들에 의해 많은 상처와 핍박을 받았기 때문일 (억사님도 고백한 대로 그랬으나 정도가 약했고 또 믿음으로 잘 통제했음.)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예 그런 자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항상 악만 일삼은, 그래서 모든 이로부터 오직 증오와 저주만 받아야 할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세상의 악인들은 원죄 하에 태어나 하나님을 부인 대적한 것이 근본원인이므로 예수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이를 사랑으로 용서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자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샬롬!
억울한사람님 안녕하세요.
이에 대해 십분 이해되고 안타까운 마음 또한 들기에 개인적인 생각을 적습니다. 이해를 바라기 보다는 주님의 은혜안에서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 신자들이나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모르는 불신자들 모두 하나님앞에 죄인입니다. 차이라면 감사하게도 그들보다 조금 먼저 예수님을 믿게 되어 먼저 죄를 용서받은 것뿐입니다. 우리 신자들도 믿기전에는 그들과 하나 다름없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착하게 살든 그렇지 못하던간에 그 어떤 인간도 스스로는 절대 하나님의 의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만으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창세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속에 오늘날까지 이르렀고, 미래 역시도 그리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 택한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겉으로 선해보이던 또는 누가 봐도 악한 악인이든 우리 인간 기준의 사회 통념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택한자라면 완벽한 계획속에 구원의 역사가 이뤄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질문에서처럼 분노가 치밀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신자인 우리가 하나님께 제발 죄값을 치루게 지옥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그 자가 하나님께서 택한자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해를 돕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이 아니라도 신자라면 반드시 우리의 기준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하나님의 뜻이 이러할진데 그와 역행하는 질문의 내용처럼 기도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마태복음 18:23~35의 예수님께서 친히 비유하신 임금과 종들의 결산에서 만달란트를 빚진자가 누구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바로 우리들 자신 '나'입니다.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핍박해선 안됩니다. 빚진 양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은혜를 감사히 여기며 용서해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비유속의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핍박하는 만달란트를 빚진자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다른 누구를 정죄할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내 눈의 들보가 너무나 큰데 어떻게 타인의 티끌을 지적하겠습니까..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중의 괴수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한사람님도 주님의 은혜안에서 언젠가 같은 마음을 가질 거라 소망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이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만이 유일한 길이며 소망입니다. 물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공분을 산 죄악은 그 사회속의 법과 질서내에서 응분의 처벌과 댓가를 치뤄야 하겠으나, 신자인 우리는 주님처럼 그 죄는 미워하되 그 사람은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목사님의 요나서 강해를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만 달란트를 빚졌다는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빚을 말합니다. 반면 백 데나리온을 빚졌다는건 사람이 사람에게 진 빚의 크기를 말합니다. 당연히 억사님이 하나님께 만 달란트를 빚졌다면 그 범죄자들도 하나님께 이만, 삼만 달란트를 빚졌을 것입니다. 다만 저나 억사님이 그 범죄자에게 요구할수 있는 빚은 아무리 커봐야, 심지어 우리가 직접적 피해자가 되더라도 백 데나리온 스케일입니다.
피해자들이 진 고통의 무게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죄를 극도로 미워하시고 죄로 인해 마음에 큰 고통을 느끼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무한히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많아서 동감합니다. (게다가 며칠간 학교사건 군대사건 등으로 심리적인 동요가 많았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하지만 같은 걸 또 묻고 물으면 목사님이 싫어하실 테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저도 몇달 전까지 같은질문을 또 하고 하다가 너무 자주 올리는 것 같아 글쓰기 버튼을 누르려다 만적이 많습니다)
세상의 반인륜적인 문제로 화가 나실 땐 신문 기사를 끄고, 안 좋은 기억에 트리거가 될 수 있는 정보들을 차단한 뒤, 30분간 노래를 들으며 산책을 하거나 헬스장에 가거나 혹은 의자에 앉아서 재미있는 책을 골라서 (만화책도 좋습니다) 편하게 독서를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인간 세상에는 화난 사람들 밖에 없어서 같이 화나는것일지도 모릅니다...
다윗도 원수를 저주하며 하나님께 벌을 내려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시54:5, 59:10 등) 그때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알기는커녕 성경도 온전히 없었고 개인별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세히 보면 자신에게 직접 죄를 지으며 괴롭혔던 자이며, 나아가 그런 기도 끝에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마음에 평안을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 택함을 받았기에 단순히 원수 갚는 기도로 끝나지 않고 불신 세상 앞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온 신약 신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접근, 이해, 판단, 적용하는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신자가 세상의 흉악한 죄인을 보면 증오심이 끓어오르는 것은 아주 의로운 일로서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그들에게 벌을 내려 달라는 기도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증오하며 저주하는 것으로 그쳐선 절대로 안 됩니다. 최소한 구약 신자들처럼 신자 본인부터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당신께서 세우심을 온전히 믿고서 분노와 저주의 늪에서 빠져나와서 평안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의 악한들을 볼 때는 우리보다 일차적인 감정으로는 더 분노하시고 저주하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바리새인들을 저주하며 야단쳤고 성전 장사치들을 불같이 화를 내며 쫓아내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죄인들을 향한 궁극적인 뜻은 심판의 재앙이 아니고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십자가상의 한쪽 강도를 구원하셨고, 끝까지 완악하게 당신을 대적한 다른 강도는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 악인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은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탁해야 합니다. 신자가 행할 일은 자신부터 악을 멀리하며 세상 앞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 악인에 대해선 끝까지 예수님의 심정으로 기도해주면서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신자도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죄 중에 있을 때 구원을 은혜의 선물로 받았지 않습니까? 세상 악인 중에도 하나님이 구원으로 택한 자들도 분명히 있을 텐데 무작정 증오와 심판의 기도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계획과 성령의 역사를 인간 신자가 훼방하는 셈입니다.
분노하며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신자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런 진리를 훤히 다 잘 알면서도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악인을 증오하면서 저에게 묻고 또 묻는 것이 신자답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악한을 보면 당연히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잠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회상하고서 평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런 자를 위해서 한 번이라도 기도해본 적이 없다면, 감히 말하건대 아직 예수님을 온전히 모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