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 축약하다보니 제목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한달 여 전에, 목사님께서 세계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앙과 전쟁, 그리고 자연재해 등에 대해서 자세히 적어주셨고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뒤늦었지만 감사드립니다.

 

다만 해소되지 않은 부분도 남아있기도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1) 이 땅에서의 불행과 고난은 인간이 자초한 것이며 하나님은 이것에 책임이 없으시다

 

-> 동의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래로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원죄를 지니게 되어서 내면에 죄악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타락 이전의 순수한 '선' 그자체가 아니라, '깨어진 모습'으로 선의 모양이 남아있으되 원죄의 때로 인해 

     더럽혀진, 본래는 깨끗했으나 지금은 때가 낀 거울 같은 느낌입니다. 

 

 

 

2) 인간의 악행에 대해 하나님은 막을 능력이 있으신데 막지 않았으니 잘못이다

 

-> 그렇지 않다고 누누히 말씀하셨고,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현재 이 땅에서의 모든 고통과 악, 자연재해부터 인간관계에서의 끔찍한 사건까지 모두 인간의 죄악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렇기에 "막을 능력이 있으신데 막지 않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잘못된 방관자적 태도이다" 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목사님의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3) 여기서 "능력은 있으되 이를 막지 않은 것은 직접적인 잘못을 일으킨 것도, 부추긴 것도 아니므로 

    능력이 있는 자가 능력을 발휘해서 그것을 막지 않은 것은 비난의 요소가 되지 못한다"

 

-> 위의 2가지 전제에서 도출된 결론입니다. 앞으로 전개할 논지의 중심 내용이자 불신자에게 이해시켜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막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만 악행을 저지른 당사자도 아니거니와 심지어 악행을 부추긴 것도 아니므로  이 땅의 죄악문제에서 구애받지 않으십니다.

 

4) 그렇다면 죄악을 막을 능력이 있음에도 방관자적으로 행한 것, 혹은 죄는 아니지만 죽음을 막을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인간' 역시 동일한 판단 잣대로 무결한 것인가?

 

-> "하나님은 능력이 있는데 방관하시는 것이 부당하다" 라는 주장이 나오는 근원적 원인일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이런 경우를 '인간'에 대입해볼 때, 그리스도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자가 아닌 자 조차도

     '막을 능력이 있는데 막지 않고 지켜만 보는 것은 악이다'라는 통념이 있습니다.

 

   이 조건을 조금 약하게 만들어서, '악'이 아니라 그냥 '죽음' 이 정도로만 약화시켜도 위의 3가지 문장에서의 하나님에 대해 들이대는 잣대와 인간에게 들이대는 잣대의 이중잣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절벽이 유명한 곳에는, "위험하니 사진촬영 하지 마시오" 같은 문구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매년마다 아슬아슬한 명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사진 혹은 동영상)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굳이 위험한 곳에서 포즈를 취하다가 죽는 사례가 나옵니다. 최근에 나온 인플러언서 여자도 그러다가 목숨을 잃었죠.

 

  실제로 벌어지는 이 상황에서, 제 지인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저는 그자에게 호감도 비호감도 없다고 가정합니다. 살려줄 인센티브도 없지만 죽일 인센티브도 없는 것이죠.

    이 가정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다 지켜봤으며, 심지어 "기계 중립적"으로 그 지인에게 

 

   " 이 곳은 위험하다.  사진을 그렇게 찍으려다가 떨어져 죽을 수 있다.

     나는 경고했다. 너의 선택이고 너는 죽음을 각오했고 나는 지켜볼 뿐이다"

 

   라고 미리 선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인은 절벽으로 갔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로 떨어졌으나

      천만다행으로 겨우 겨우 절벽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 사람의 힘이 다해서 손을 놓는 순간, 그는 사망확정입니다.

    

   이 상황에서 사회 통념상으로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언질까지 다 했지만 그래도 매달려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선이다.

          왜냐하면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방관하는 것은 악이기 떄문이다'

 

          라는 것이 적용됩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저의 자리에 하나님을 대입해봅니다

 

         그런데 이중잣대적으로 하나님은 '그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악이 이 세상에 있으므로 그 능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악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라는 1번과 2번 명제에 부딫혀서 저 자신, 그러니까 '인간'의 경우도 단 하나의 조건만 바뀌었는데도 

 

이중 잣대가 되어 버립니다.

 

         사실 제가 적은 사고실험 상황에서는 '중립'을 가정했지만 하나님의 경우 성경에 씌인 대로라면

         

         인간을 사랑하고 악행을 싫어하시므로

 

 

             조건 상으로는 더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있지만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악이 아니다' 라고

         판별을 내리는 것에 대해

 

 

         " 왜 동일한, 아니 오히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은 선이지만

                능력이 있는 인간이 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악이라고 하는가"

 

           라는 것에 대한 모순, 이중잣대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적으신 다른 글에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 앞에서 물에 빠져가는 사람을 보면 구하지 않겠는가' 라는 문장을 쓰셨던 것을 기억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그 예시 자체가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의 예시라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전 목사님께서 기독교 셰계관에서는 성악설도, 성선설도, 진화론도 아니라고 하신 것에 저는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사람을 눈 앞에서 보고도 (목사님 묵상의 단어 상) 천사의 내면이 강한 사람은 구하려고 할 것이며, 악마의 내면이 강한 사람은 도리어 발로 차서 죽일 것이며, 반반인 사람은 그저 중립적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해당 부분 : '믿는 않는 청년들에게' 카테고리에서 인간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라는 제목으로 작성하신 글)

 

이런 걸 떠나서 저는 각종 악한 인간의 뉴스를 보면서, 이제는 정말 진지하고 눈 앞에 물에 빠진 사람을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구할 수도, 방관할 수도, 어쩌면 도리며 뭍으로 나오려는 사람을 발로 차고 깔깔 웃으면서 오히려 죽음으로 몰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례도 많이 봤지만, 어떻게 인간이 저렇지 라는 사례도 많이 봐서요. 허우적대는 사람을 발로 차서 죽음으로 몰아넣고 깔깔 거리면서 웃는 인간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무튼, 다시 돌아와서

 

     '능력이 유무'에 따라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가 단순히 그것을 하지 않은 것은 악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기독교적 대답이 분명히 나와야 할 것이고, '만약 능력이 있음에도 발휘하지 않고 악한 상황으로, 혹은 안타까운 상황으로 흘러가게 바라만 보는 것이 악이라면, 인간과 하나님에게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해 명확히 소명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 사고실험 가정에서는 심지어 조건을 약하게 만들어서 '악을 방관한다' -> '사망을 방관한다' 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납득이 쉽지 않습니다. 유리하게 조건을 만들었는데도요.


PeaceTiger

2023.10.27 04:37:44
*.94.131.106

단순히 그런 식의 논지로만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방관(?)을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악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영광과 선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그분의 더 큰 선한 계획을 완성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이 우주가  창조된 이후 루시퍼나 아담의 반역과 원죄가 없었더라면 세상은 좀더 탈없이 편안하긴 했겠지만, 죽어 마땅한 죄인마저 의인으로 바꾸어 속량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한번 구속이라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새하늘과 새땅이 단순히 천사들과 인간의 죄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가정했을때 유지되었을 흠없는 옛하늘과 옛땅보다 무한히 더 가치있고 위대하고 아름답고 절대적인 이유입니다.

성경탐닉자

2023.10.27 05:45:32
*.23.152.191

 인간이 눈 앞에서 구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구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악이라고 말하고 있는게 맞죠?

 

제가 기억이 안나는데 구절이 어디 있던거 같은데..

PeaceTiger

2023.10.27 06:52:57
*.94.131.106

(야고보서 4장)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아마 이 구절이신듯 한데.

 

분명한것은 하나님께서 방관하신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약 그렇게 따지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접 행하시는 가장 두렵고도 무서운 일은 죽은 후의 심판을 내리는 일인데, 그걸 두고 하나님이 너무하다 할 자격은 없지 않습니까? 그 심판을 당할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자 이 땅에서 고난과 어려움을 주어 경고하는것이 과연 방관이라 볼수 있을까요?

성경탐닉자

2023.10.27 15:48:39
*.23.152.191

저도 하나님이 방관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귀결해서 생각했을 때 이런 문제에 부딫힌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전에 밝힌 적이 있긴한데 저는 20세 하나님을 만나긴 전에 누구보다도 심한 안티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MBTI 상으로 어떤 논리적 구조의 허점을 꿰뚫어보는 것이 능한 ENTP 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윤리와의 모순, 그리고 다른 조건은 모두 동일하게 가정한 채 하나만을 바꾸어서 사고실험을 하는 경제학적 방식인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이라는 ceteris paribus가 비교 대조의 장단점을 알기에 굉장히 탁월하였기 떄문에 이런 방법을 많이 썼고 실제로 다른 조건을 동일하게 하고 하나만 바꾸는 사고 실험은 경제학 뿐만 아니라 합리적 판단의 토대이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했을 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를 포함한 '합리적인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신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공정성'에 대한 의문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극렬한 안티 크리스천일 당시 이러한 논법으로 믿지 않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뀐 지금에서도 논리적으로는 완전하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논리적으로 말입니다.

배승형

2023.11.02 20:59:10
*.233.81.131

로마서 1장에 하나님께서 동성애자들에게 그 더러움에 내어버려두사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회개하기를 원하지만 고집을 피우면 내어버려 두십니다.

또한 왕을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도 아니요 왕으로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더 악한 길로 갈 것을 아시면서도 왕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조금 더 깊게 말씀 드리자면 하나님께서 사탄과 귀신들에게 그러합니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너 왜 그렇게 했냐고 물어보셨지만(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뱀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벌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장과 천사들은 한 번의 범죄로 영원히 어두움에 버려졌습니다.

그러기에 귀신들이 예수님을 보고 벌벌떨면서도 회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어버려 두시면 천사장이든 천사이든 인간이든 어느 피조물이라도 스스로 선을 행하고 회개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배승형

2023.11.02 20:46:31
*.233.81.131

죽어마땅한 죄인으로 왜 태어나게 하실까요?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데 왜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원죄를 가진 채 지옥갈 운명으로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원죄 때문에 모든 불행과 불의와 고통과 비참과 처참이 이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렇게하신 후 -죽어 마땅한 죄인마저 의인으로 바꾸어 속량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라고 하기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배승형

2023.11.02 20:53:10
*.233.81.131

이것이 (한번 구속이라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새하늘과 새땅이 단순히 천사들과 인간의 죄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가정했을때 유지되었을 흠없는 옛하늘과 옛땅보다 무한히 더 가치있고 위대하고 아름답고 절대적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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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주관적인 생각이라 생각됩니다.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되지만, 다같은 천국인데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날마다순종

2023.10.27 06:49:48
*.14.99.253

PT님이 이미 포괄적인 답을 하셔서 조금 다른 관점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아주 간략히 적어봅니다.

 

예를 든 상황에서 본인의 자리에 하나님을 대입한다고 하셨는데, 이 가정부터가 개인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비유입니다. 온 우주를 통틀어 이 세상은 딱 두부류의 존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존하시는 하나님과 그분께서 창조한 피조물 이렇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인간을 포함)이 하나님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들과 구별되어 오직 하나님 그분만이 거룩하십니다. 

 

다른 피조물과 달리 각별한 사랑까지 받으며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들의 배역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마르지 않는 긍휼로 한없이 낮아지셔서 인간의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이 도저히 어떻게도 갚을 수 없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최고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거기에 더해 그 끝을 모를만큼 한없이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에게 친히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요. 그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우리 자신부터 말입니다. 주님의 그 가르침은 한귀로 흘리고 아니 아예 귀담아 듣지도 않은 채, 끝없는 탐욕과 전쟁으로 얼룩진 인류역사가.. 또 비록 총칼은 들지 않았어도 보이지 않는 국가간에 민족간에 사회안에 직장안에 가족간에 끝없는 시기와 질투와 증오와 거짓이 난무합니다. 혹시 나는 적어도 남을 죽이거나 전쟁을 반대해라고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고선 세상과 구별되어 유일하게 거룩하신 그분께 하는 말이 하나님은 뭐하길레 저런 악을 손놓고 놔두나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런 악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지 않냐는 거죠^^

 

이건 정말 우리 인간이야 말로 이 세상의 주인이고 또 그러기에 우리 인간이 싸지른 배설물도 하나님보고 치우라는 말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종이고 심부름꾼으로 전락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체험하고 깨달은 우리 신자만큼은 감사는 못드릴망정 또 말씀에 늘 순종치 못할망정, 적어도 이런식의 인식은 없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성경탐닉자

2023.10.27 15:50:01
*.23.152.191

이런 식의 인식 자체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식 자체가 극렬한 안티 크리스천의 기본 인식이기 떄문이고 논리적인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변증학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믿지 않는 형제에 대해서' 납득시키는 부분이 이런 부분에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날마다순종

2023.10.27 16:30:17
*.14.99.253

네. 당연합니다^^ 불신자들이야 논할것도 없이 그렇지만 제가 말씀드린 건 우리 신자들 조차 그런 불신자처럼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점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낭여

2023.10.27 07:24:46
*.29.188.145

고민해볼 주제네요. 말씀해주신 부분을 깊이 고민은 안해보고 가볍게 생각만 해보자면, 1. 해결할 능력은 있지만 악을 방치(또는 방관)하는 것는 기본적으로 통념과 같이 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세상 악에 대해 가만히 계시는 것(또는 침묵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런 접근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악의 문제를 해결하셨죠. 물론 그 해결의 단계는 '이미'와 '아직'에 동시에 걸쳐 놓여 있습니다.

2) 그렇다면 원래 질문이 '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악을 일일히 단번에 해결하시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게 되겠죠? 그리고 여기에 대해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면 죄인인 우리들이 구원받을 수 없고 바로 심판 받아야 하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라고 일반적으로 추측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세상에서 보이는 고난이나 악들을 보고 왜 이런 악들을 허용하시는가?라고 디테일하게 파고들었을 땐, 하나님의 섭리(또는 일하심)의 큰 그림이나 깊은 뜻을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라고 할 수 밖에 없겠죠. 욥기에서 욥이 고난을 당하며 왜 이런 일을 허용하시냐고 물었지만 그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네 위치를 알라고 하셨듯이 말이죠.

3)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선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세상에 악을 허용하는) 일하시는 데에는 깊고 선하신 뜻이 있으시겠지라고 믿을 뿐이죠. 이를 불신자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신뢰의 문제니까요.

낭여

2023.10.27 07:27:14
*.29.188.145

어쨌거나 악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개인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선 팀 켈러의 '고통에 답하다'라는 책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성경탐닉자

2023.10.27 15:51:05
*.23.152.191

대학시절, 기독교 대학을 다녔습니다.

 

당시 고학년 대상으로 '고통과 악' 이라는 수업이 있었고 다분히 기독교 관점에서 다루는 수업이었는데 1학년 때 멋모르고 수강했다가 바로 첫 주차 때 너무 어려워서 드랍했던 기억이 있어요.

나중에 들을걸...안듣고 졸업한게 아쉽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배승형

2023.11.02 21:37:38
*.233.81.131

날마다 순종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과 인간 관계는 조물주와 피조물과의 관계로 구분됩니다.

또한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명령(계명)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신명기를 묵상하면서 인간에게 그 많은 계명을 주셨지만 인간은 그 중 한 계명이라도 완전하게 지킬 수가 없는데 왜 하나님은 계속 명령하실까를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지어 창세기 1장에는 천지창조를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조차 많은 명령들을 하고 계십니다.

 

고통은 이 명령 때문에 세상에 생겨났습니다.

오직 완전자만이 지킬 수 있는 명령을 불완전자인 피조물에게 하신 것입니다.

명령을 지키지 못한 인간은 죄인이 되었고 원죄를 가진 인간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지은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의 운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음을 아셨기에 고통 속에 천국을 숨겨 두셨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수고스럽게 밭을 가는 자만이 보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짜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할 인간을 왜 만드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은 인간에서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다스리게(왕노릇하게)하기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창1:26

그리고 그 명령은 계22장 성경의 마지막장에서 완성됩니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가서야 하나님의 명령은 온전히 완성됩니다.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는 그 중간에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왕(족장들을 포한해서)들의 이야기와 그 명령을 온전히 수행한 예수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너무 축약해서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master

2023.10.27 13:49:31
*.115.238.98

기독청년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완벽하게 실현되는 이상향이 세워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 그분의 이 땅을 다스리는 원리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질문의 발단부터 잘못되었기에 사실상 질문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기독교에선 하나님과 인간에게 이중적인 잣대를 대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이 질문처럼 어떤 사안에 대한 논리의 전개나 판단에서의 공정성, 객관성, 합리성의 차원에서가 아닙니다. '날마다순종'님의 말씀대로 그분과 인간은 존재론적으로(윤리적 성품이든 의를 실현하는 능력이든 모든 면에서) 아예 비교자체가 안 됩니다. 그런데도 동일한 입장에 두고서  서로 대조하여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심스럽다고 여기는 것은 엄격히 말해 어불성설입니다. 

 

물론 여러 분들의 의견이 분분하듯이 신앙적으로 조금 더 정리해야 할 세부적인 과제는 여전히 다수 남아있습니다. 지난주부터 제가 이전에 묵상한 내용을 메모한 것이 너무 많은데 나이가 나이인 만큼 더 늦기 전에 주일설교로 옮기려 했으나 잠시 중지해야겠습니다. 마침 게시판의 비슷한 주제의 질문에 주일 설교로 답변드리려 했는데, 상기 질문에 대한 답변 내용이 더 광범위하므로 합쳐서 이참에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이라는 주제로 시리즈로 다뤄보겠습니다. 이번 주는 게시판 질문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다뤄야 하니까, 아마도 내주(11/5)부터 시작할 것 같습니다. 하나씩 차근하게 따져 나가보도록 합시다. 샬롬!

 

성경탐닉자

2023.10.27 15:56:45
*.23.152.191

목사님 감사합니다.

 

카톡에서도 드렸듯이 저의 이런 질문들은 제가 논리적 부분에서 하자가 있으면 기가막히게 그걸 찾는 ENTP 성향이 있기도 하고 또 저 역시 20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누구보다도 극렬한 안티 크리스천이었던 시절에도 가졌던 '납득이 되지 않는 모호한 논리성 구조' 에 대해서 스스로 정리하다보니

 

내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구나

 

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늘 밝혔듯이 스스로 말썽꾸러기 신자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늘 감사하게 여기고, 이런 질문을 하면서도 목사님께 혹여나 공격적으로 받여들여지지 않나 걱정되기도 하지만 늘 그렇지 않다고 격려해주셔서 질문드려봅니다.

 

이 논제를 보고 출발한 것 자체가 목사님의 연재 목록인 '믿지 않는 청년들에게' 라는 부분에서도 파생되었고 저 역시 믿지 않았던, 극렬한 안티크리스천이었던 시절의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필요한 해소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이중잣대가 '옳다' 라고 하는 것은 저를 포함한 크리스천에게는 당연한 것일수 있겠지만 그 어떤 세대보다도 특히나 '내로남불' 에 굉장히 민감한 현대의 세대에게는 자세한 설명이 없이는 납득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세대는, 저도 30대 청년이기는 하지만 특히 20대와 10대 청년들은 '내로남불'에 대해서 굉장히 굉장히 민감합니니다. 같은 청년이라고 할 수 있는 저조차도 다른 세대라고 느껴질 정도로요. 최근 들어서 한국에서 남성만 군대에 가는 것에 대해 '불공정하다'는  헌법 소원이 최근 10년 간 3차례나 있었으며, 과거 몇 십년동안 아무런 논란이 없었던 '여자경찰은 똑같은 돈을 받고서 왜 출동해서는 남자경찰과 같이 안하느냐. 강도가 여자경찰이라고 봐주냐// 신체 체력검정도 남녀와 완전히 같은 기준이어야한다' 라는 것이 누구보다 강한 세대이니까요.

그 어떤 세대보다도 동일 조건/동일 노동에 대해서 최소한 완전히 기계적으로나마 '동일하게' 대우받아야한다고 믿는 세대입니다.

 

무튼 '믿지않는 청년들에게' 중에서도 20대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이중잣대'에 대한 부분을 넘어서야 한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특히 20대 에게요. 제가 본 지금 20대들은 그렇습디다...

master

2023.10.28 02: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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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연관된 주제를 일부 다뤘으니 지난주(10/22)와 이번주(10/29) 주일설교도 꼭 함께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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