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over 와 Left-over

조회 수 644 추천 수 29 2012.01.03 18:52:57
Hang-over 와 Left-over


저희와 담을 사이에 둔 이웃은 아주 성실하고 마음씨 좋은 히스패닉 젊은 부부입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두 자녀와 할아버지 한 분과 주인 닮아 선해 보이는 개 한 마리, 조촐하게 다섯 식구가 삽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흠이 있습니다. 심심하면 친구들 불러서 파티를 하는데 라틴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밤늦게는 그러지 말아달라고 한두 번 부탁을 드렸지만 잠시 그 때  뿐입니다.

그저께 마지막 날은 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집에 새벽 두 시쯤에 돌아 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또 모여서 파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인 받은(?) New Year Eve 파티니까 음악도 더 크게 틀어 놓고 새벽 서너 시까지 쿵쾅거리고 놀았습니다. 이웃사촌끼리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어 2011년의 마지막 날 밤의 잠자리는 뒤숭숭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바로 옆집이라도 밤 열시 이후까지 떠들면 냉정하게 911에 전화해버립니다. 가끔은 확 전화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솟구치지만 꾸준히 전도하고 있기에 그럴 수도 없습니다.

대신에 저희는 매년 설날에 이곳 LA 지역에 사는 이전에 담임했던 유학생교회 식구들이 저희 집에 모입니다. 떡국을 나누며 지난해의 안부를 묻고 새로운 한 해를 축복합니다. 올해도 오후 다섯 시에 모여서 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우며 서로 위로 권면 도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곤 예의 바르게(?) 9시 반쯤에는, 실은 음악 틀고 춤추는 파티가 아니라 옆집에 전혀 방해가 안 되었지만, 다 헤어졌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방식이 동서양이 다른 것 같습니다. 서양은 마지막 날 밤에 신나게 파티를 하고, 동양은 설날에 친척 친지들과 교제를 갖습니다. 한국도 제야에 종로 보신각의 타종 행사를 하지만 대체로 경건하게 보냅니다.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 미국식의 떠들썩한 카운트다운 파티가 많이 유행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잠간 어느 쪽이 나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설날에 모이는 것이 나은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옆집의 새해 첫날은 쥐죽은 듯 조용했지만 한해를 구상하느라기보다는 틀림없이 숙취가 풀리지 않은(hang-over) 탓이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저희 집은 새해 첫날부터 조금 부산하긴 했지만 서로 덕담을 나누었고 음식 남은 것(left-over)도 손님들에게 싸서 나눠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 생각이 논리적이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초점은 언제 모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친교를 나누는지 여부였습니다. 쉽게 말해 술을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이전 불신자 시절에는 설날에 친척 친지 만나면 술을 마셨기에 첫날부터 숙취에 빠지는 꼴입니다. 그럼 숙취는 마지막 날 밤에 끝내고 새롭게 새해를 시작하는 서양식이  오히려 나은 편이 되지 않습니까?

마지막 날이든 첫 날이든 친구 친지들과 술 마시며 즐겁게 보내는 일을 비난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모인 중에 한 분이 농담으로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하루에 두 번 예배보기는 생전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통상 송구영신예배는 자정을 넘겨 마치니까 이미 새해가 되었고 또 몇 시간 지나지 않은 같은 날에 신년예배까지 드렸다는 뜻입니다. 간혹 과장이 심한 신자는 이년을 거푸 교회에서 보냈다고도 합니다. 결국 연말연시를 보냄에 동서양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고 예수님과 함께인지 아닌지로 나뉠 뿐입니다.  

저도 이번 연말연시에는 솔직히 조금 피곤했습니다. 아내가 집안 일로 뉴욕 언니 집에 갔다가 12/31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또 임시로 출석하는 교회의 송구영신예배 설교를 부탁 받았습니다. 그러니 공항에 갔다가 곧바로 교회로 갔는데, 연말 교회파티 중도에 빠져나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서 잠시 잠을 붙였을 정도입니다. 그리곤 다시 신년예배에 갔다간 저녁모임 준비 때문에 식사교제도 하지 못하고 급히 돌아왔습니다. 교회나 공항이나 저희 집에서 고속도로로 50분 정도 거리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혹 졸린 눈을 무릎 쓰고 하루에(?) 꼭 두 번이나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의아해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이후의 신자의 일생은 오직 예수님으로 시작하고 예수님으로 마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계22:13)입니다. 예수님만이 지난해는 물론 올해의 내 인생의 주인이어야 합니다. 세월의 흐름을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뜻이 바로 송구영신예배가 지닌 근본적 뜻입니다.

물론 현실적 이유도 충분히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해를 보내면 hang-over는 결코 생기지 않고 오직 left-over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숙취후유증과 남는 양식이라는 단순한 뜻이 아님은 이미 짐작하셨겠지요? 골치 아픈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으되, 모든 면에서 그분의 은혜가 차고 넘친다는 뜻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남자장정만 5천명이 넘게 배가 부르도록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넘게 남았습니다. 하늘에서 부어주시고자 예비해놓은 복은 차고도 넘칩니다. 그분의 은혜의 창고에 재고가 떨어지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신자에게 내주하는 성령님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을 영원히 마르지 않게 샘솟게 만드십니다.  

문제는 우리 신자입니다. 자꾸만 그분 앞에 나아갈 때에 양손에 잔뜩 들고 나갑니다. 손에 든 것이 고통, 상처, 슬픔, 한숨이면 당연히 괜찮습니다.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잠잠히 아뢰면 됩니다. 그보다는 현재 상황을 스스로 지레 염려하고 의심하며 불만을 품다가 불순종을 넘어 불신까지 가버립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윤리 종교 영적 편견, 선입관, 고집 등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선 아무리 그분이 채워주려야 줄 수 없습니다. 쏟아 부을 곳이 더 이상 없어서 그분 은혜의 left-over가 땅에 생겨야지, 천국에서 땅에 내려오지도 못한 채 left-over로 계속 머무른다면 큰일, 아니 우리만 손해 아닙니까?    

저희 홈피의 회원과 방문자 모두에게 새해에 예수님 안에서 기쁘고 감사한 일로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각자에게 올해 부어주시려고 예비하신 주님의 은혜와 권능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차지하셔서 하늘에 left-over가 없게 되길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양손에 쥔 것을 다 내려놓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도그분의 손만 꼭 붙들고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우리 머리카락까지 세신 바 되었고 침 삼키는 순간도 놓치지 않으시니까 말입니다.

1/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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