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사분의 일이 범죄자?

조회 수 3713 추천 수 382 2005.07.16 20: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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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5에 John Salamone이란 사람이 술 마시고 단발 엔진 소형 비행기를 위험하게 몰다 활주로에 있던 비행기들을 들이박고 착륙한 죄로 23개월 징역형에 처해졌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5%로 펜실베니아주의 음주 운전 상한 규정 0.08%를 두 배 가량 넘었다. 그러나 펜실베니아주 법정은 음주비행이 아니라 부주의로 인한 대재앙을 유발하려 했다는 죄목으로(convicted of risking a catastrophe and reckless endangerment) 그를 기소했었다. 물론 음주 비행에 관한 규정이 없었던 것도 원인이지만 그가 핵발전소 근처 상공을 술이 취한 채 비행했기 때문이었다.

금년 6/8일에는 America West 항공사의 전직 조종사 두 명이 음주 비행으로 5년간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정조종사 Thomas Cloyd와 부조종사 Christopher Hughes는 2002년 7/1 피닉스 행 여객기를 활주로로 끌고 나가기 위해 마이아미 공항 탑승구에서 후진하다 공항 경찰에 의해 강제로 이륙 정지되고 체포되었다. 안전 검색대를 통과할 때에 그들에게서 술 냄새를 맡은 공항 직원이 신고했기 때문이다. 조사결과 그들은 그 전날 밤 출발 6시간 전까지 맥주 14병(미국식 작은 병일 것임)을 나눠 마셨고 체포 당시 플로리다주 음주 운전 상한치 0.08%를 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음주 운전은 거의 살인 미수에 해당하는 죄로 보고 형벌이 아주 엄격하다. 자신이 사고 나서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골프채로 사람을 때려도 살인미수 죄로 취급한다. 티타늄 강철로 된 골프 헤드로 잘못 맞으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두 경우에도 인명 피해는 하나도 없었다. 두 번째 경우는 비행기 이륙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자는 핵발전소와 충돌했다면 엄청난 재앙을 일으켰을 것이고, 후자는 잘못하면 조종사 본인들뿐 아니라 탑승객 전원이 몰살했을 가능성을 판결에 감안한 것이다. 개인의 자유에 앞서 그 자유로 인해 유발되는 책임을 더 중요하게 따졌다.

이왕 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미국에선 남들이 보는 공공장소에선 술을 못 마신다. 공원에서 바비큐 구어 먹으면서 술을 마셨다간 당장 경찰에 체포된다. 심지어 자기 집 앞 마당에서 술 마셔도 잡혀간다. 그런데 뒷마당에서 마시는 것은 괜찮다. 대부분의 미국 집이 앞 마당은 담이 없이 개방 되어 있지만 뒷마당은 펜스로 둘러쳐 가족들만의 프라이버시 공간이기 때문이다. 주류 판매 허가를 받은 식당이나 바를 제외하고는 남들 보는 앞에선 술을 못 마신다.

음주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음주에 수반되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술을 먹고 추태나 행패를 부리거나, 서로 싸움을 하거나, 남의 사유물을 파손하거나, 심지어 음주 운전으로 자동차를 살인 병기로 바뀌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타인에게 부담을 주거나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자라는 어린아이들에게 음주로 인한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금년 8.15에 650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대사면이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우선 너무나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이 앞선다. 단순히 수치적으로만 볼 때에 사면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여 감안하면 거의 국민의 4 내지 5 분의 일이, 나아가 아이, 노인, 여자들을 제외하면 왕성하게 활동하는 성인 남성의 거의 전부와 맞먹는 숮자의 국민이 어떤 형태로든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는 말이다. 거기다 동일한 죄를 범했지만 처벌 받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시켜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기만 하다. 광복 60년간 뼈 빠지게 일하고 잘 먹고 잘 살게 된 결과가 겨우 이 모양인가?

그 중에 음주 운전 전과도 상당수 포함될 것이라고 들었다. 그들을 따로 벌을 더 심하게 주고 기왕에 하는 사면에서 제외하라는 뜻이 아니다. 시민이 법을 지키고 사정당국이 법을 집행하는 기본적인 자세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의 예를 하나 들었을 뿐이다. 법에 대해 무식하지만 법을 만들고 좀 귀찮지만 누구나 반드시 지키게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더불어 사는 아름답고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잘 했느냐 못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남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고 또 사회 전체가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도 반드시 감안해야 하지 않겠는가?

군주가 다스리던 시절에는 그 은혜에 감사해서 왕의 명령에 더 절대 복종시키려 왕 임의로 하는 무차별적인 대규모 사면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마 그 때에도 술에 취한 왕이 아니라 제대로 상식을 갖춘 왕이었다면 반드시 왕 앞에서 회개하고 두 번 다시 같은 범죄를 범하지 않을 가능성, 서약, 바뀐 모습을 보고 사면을 내렸지 않았을까?

이제 가뜩이나 술 마시기 좋아하고 마신 채로 운전해도 “죽어도 내 마음이야”라고 큰 소리 치는 한국인들에게 음주 운전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선거철만 다가 오면 한량 없이 관대한 정치인들이 국민 화합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또 풀어 줄 텐데 뭘 걱정하랴. 더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 죽어도 내가 죽지 네가 죽냐 하고 음주 운전도 마음 놓고 하게 생겼다. 그나마 하나 남은 향략 산업마저 망하게 할 수 없어 이러는가?

한국에서 법은 다 죽었다. 사람들 사이에 법을 꼭 지킬 용의와 필요는 벌써 없어졌다. 어떤 기관이나 개인도 국민은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이젠 들먹일 수 없게 되었다. 정치인들, 법조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막걸리 받아 먹고 표 찍어 주는 우리 국민들 잘못이다.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정치인들이 머리가 나쁘거나 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틀림 없이 한국 국민들에게 먹힐 수 있는 조치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면에 해당되는 물경 650만 명이 그 은혜(?)를 받고 나면 다들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쬐끔 미안하고 쑥스럽기는 하지만 우선 그 동안 나를 불편하게 묶고 있던 법적 제약이 없어졌으니 기분 좋아질 것이다. 당장 남이야, 사회야, 정치야, 경제야,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나만 편하면 된다는 것이다. 말로는 다들 정치 박사이고 그럴 수 없는 애국자이면서 더불어 살겠다는 마음은 하나도 없다.

한국은 이제 흥청망청 술 마시고 취할 일 밖에 더 이상 남지 않았다. 장래 이 나라가 이 민족이 어떻게 될지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이젠 불초 소인도 건방지고 일방적인 미국 양키 놈들의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접어야 할 것 같다.    

http://www.nosuchjesus.com

7/16/2005


운영자

2005.07.18 15:23:18
*.108.166.115

1) 현재 파업을 벌리고 있는 A 항공사 조종사들의 쟁의 요구 조건 중에는 음주 측정 검사와 승진시에 영어 시험을 없애라고 합니다. 음주와 영어는 승객의 안전과 절대적으로 직결되는 사항입니다. 그들 뜻은 다들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알아서 할테니 자율에 맡겨 달라는 것이고 특별히 음주 측정은 사고 후나 임무 후에 해달라고 합니다.
물론 말은 좋지만 인간이 자율로 해서 제대로 선하게 되는 경우도 드물고, 사고 후에 측정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규정들이 조종사들을 못 믿고 힘들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인데도...
조종사라면 최고 지식을 갖춘 최고 직업인인데도 조금이라도 귀찮은 것은 못 참고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2) 음주 운전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한 것 같습니다. 필자가 잘못 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음주 운전으로 벌을 받은 자들 중 일부가 나서서 불공평하다며 사면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엎어치나 메어치나 결과적으로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제 말 대로 이 조치가 국민들에게 먹혀 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습니다. 음주 운전은 위법 사항의 한 가지 예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포인트는 법을 지키고 집행하는 자세가 문제이며, 또 이런 대규모 사면으로 해서 더 이상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인식의 확산이 우리 사회를 완전히 혼돈으로 이끌 것이며 그것을 고치자면 무한한 노력이 필요 할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왕에 한 잔소리 하나만 더 부치면, 이런 조치가 실제로 시행되었을 때에 그 사면을 받은 국민들 중에 일부가 이런 부당한 조치는 받지 않겠다고 나서지 않는 한 한국은 희망이 사라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부시가 상속세를 없애겠다고 하니까 맨먼저 반대하고 나선 이가 빌게이츠를 비롯한 최고 부자들이었습니다.)


김인기

2005.07.29 04:19:32
*.231.106.2

제 생각을 조금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저는 조종사들이 음주측정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이해합니다.
언젠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경찰옆을 지나가는데 음주운전단속중이던 경찰이 그냥 보내길래 제가 물었습니다.
왜 측정을 하시지 않는지 궁금했거든요.
기사분이 그러시더군요.
만약에 택시기사가 음주운전으로 걸리면 택시기사도 망하고, 잘못 사고가 나면 승객도 망하는거라구요.

즉 경찰과 택시기사들 사이에는 '택시기사라면 음주운전은 하지 않겠지'라는 암묵적인 인정이 있다는겁니다.
조종사들이 바라는 것도 이런 수준으로 스스로를 인정해달라는 요구로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리 미덥지 못하다보니 회사측에서는 그러수 없다고 맞서는 상황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음주측정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의 성숙도가 우리의 이상이라 생각합니다.
조종사들이 그만큼의 성숙도를 보이지 않아서 이 문제가 쟁점이 된 것인지, 아니면 회사측의 언론에 대한 호도로 일어나는 오해인지는 제 영역이 아니니 알 수 없지만, 회사도 조종사들도 하나만 물러나서 생각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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