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직 방언 기도를 못합니다.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방언기도라고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방언이란 것이 언어가 아니라 별 의미 없는 (또는 의미도 잘 모르는) 일종의 추임새이거나 주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제 귀에 들려 오는 대부분의 소리는 우리 말 기도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그리 길지 않은 거의 동일한 음절의 되풀이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게 해 주시옵소서, 룰룰랄라 아브라카대브라, 저희 아들놈 제발 정신 차리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브라카대브라 룰룰랄라, 제발 경기 좀 풀어 주셔서 예전처럼 사업이 잘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 . . . . .
남의 기도를 오래 귀 기울여 들을 수는 없는지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들의 기도는 그 방언 부분을 빼내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굳이 그 “방언”을 사용하는 이유는 아마도 1) 본인의 언어 습관상 한 생각과 또 다른 생각 사이의 이음 부분을 메우기 위해 2) 기도가 쉬지 않고 이어지는 듯한 효과가 있기에 남들 보기에 또 자신 생각에도 기도를 “잘 한다”고 여겨질 것이기에 3) 방언기도를 하는 신령한 믿음의 소유자임을 내세울 수 있기에 4) 기도 시간의 길이로 믿음의 정도를 측정하려는 사람들 눈에 인정받고자 기도 시간을 늘이기 위해 중 어느 하나 혹은 둘 이상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런데 더러는 언어처럼 들리는 방언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혀 들어 보지 못한 그러나 언어 체계를 갖춘 듯한 말로 오랫동안 기도를 이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개중에는 현존하는 어떤 외국어로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본인은 그 외국어를 평소에는 전혀 알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현존하는 언어이든 이미 없어진 또는 애초부터 우리 인간들에겐 주어지지 않은 언어이든 간에 언어로서의 체계를 갖춘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둘로 나뉘는 듯합니다. 자신이 말하는 방언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고 있는 사람. 전자는 머리 속으로는 한국어로 또는 영어로 기도를 드리는데 혀가 제 멋대로 움직여 도대체 말인지 소린지 분간 못할 전혀 생소한 소리가 입으로 나온다 하더군요. 물론 이제는 그 소리에 익숙해져 있고 어느 정도 통변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만나 보았습니다. 후자는 자신이 뭐라고 소리 내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합니다. 여태껏 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말이 막히지 않고 줄줄이 흘러 나오는데 그 뜻은 모르나 머리 속은 맑아지고 가벼워지며 마음 속에 평화와 기쁨이 차오른다 더이다. 그렇게 기도하다 문득 정신차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 가 있더랍니다.
그렇다면 양쪽 모두 임의로 또 의도적으로 방언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긴데, 이들은 한결같이 이제는 자기들이 임의적으로 방언으로 기도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그 말을 어떻게 구사하는지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것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인지 제겐 도무지 이해되질 않습니다.
한 때, “하늘의 언어”라는 방언으로 기도를 하면 영이신 하나님과의 소통이 빠르고 원활하여 더욱 깊고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그날부터 한동안 제게도 방언을 주십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하나님과 오래 대화하고 싶으니 제발 제게도 방언을 주세요 하고 때론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주로 생각으로만 기도를 드리거나 고작해야 웅얼웅얼 제 귀에만 들릴 정도로 기도를 하는지라 그래서 안 되는 건가 하고 일부러 크게 소리를 내어 기도도 해 보았습니다만 제 혀는 제 정상적인 위치와 모양을 충실히 유지할 뿐 도무지 딴 짓을 하질 않더군요. 언어는커녕 주문이나 추임새 같은 소리라도 난다면 좋겠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혀 꼬부라진 소리조차 나질 않기에 하나님께 방언 주십사는 기도 그만 하겠다 말씀 드렸습니다. 굳이 방언으로 기도해야만 하나님께서 내 기도 받아 주시는 것도 아니고, 또 꼭 주셔야 할 것이라면 제가 달라기도 전에 주셨을 텐데, 주십사 간구했는데도 안 주시는 것은 제겐 필요 없거나, 없는 것이 저를 위해 낫기 때문이리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믿음 생활이 몇 년인데 아직 방언도 못 받았느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에겐, 믿음 생활이 몇 년인데 아직도 방언에 의존하지 않으면 제대로 기도도 못하느냐고 되물을 작정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기분이 드는지 체험해 보고 싶습니다. 방언하시는 분들, 특히 무슨 뜻인지 알고 임의로 그 방언을 쓰실 수 있는 분들, 정말 부럽습니다. 여느 언어와 마찬가지로 방언도 자주 쓰지 않으면 잊어 버리든지 잃어 버린다고 들었습니다. 이왕 받은 귀한 선물, 아끼지 말고 쓰십시오. 아마도 제 몫까지 얹어 열심히 기도하라고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모두 성실한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길 부러움 담아 간곡히 응원 드립니다.
2010년 9월 9일
이 아침 정말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기쁨을 주셨습니다.ㅎㅎㅎㅎ
김유상님이 정말 재미있어요.ㅎㅎㅎㅎ
신앙생활에 과연 방언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묵상기도와 주로 말씀읽고 조용히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방언기도가 과연 필요한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조용한 시간들을 훨 좋아하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