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속담에 “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하는 것은 많은데, 잘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사람을 일컫는, 바로 저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많은 것에 관심이 있어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지만, 아주 잘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 잘 하고 싶은데 한 가지도 잘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못하지는 않기에 버리지는 못하고 보듬고 있는데, 더 잘 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많이 괴로워 했었지요. 그래서 저는 살리에리의 고뇌를 이해합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성공한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모차르트처럼 천재는 아니었으나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었으며 한때 모차르트와 리스트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 모차르트에, 당시 궁전 악장이었던 살리에리가 경박하고 버릇없는 모차르트에게 모멸을당한 후에 왜 자기에겐 모차르트와 같은 재능을 주지 않았느냐고 하나님께 항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재능을 주지 않으시려면 음악에 대한 열정 또한 안 주셨더라면 자기가 모차르트에게 조롱을 당할 일도, 그로 인해 이토록 괴로워할 일도 없지 않았겠느냐면서. 여지껏 자기는 음악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겨왔는데, 이젠 더 이상 하나님을 위한 곡을 만들지 않겠노라며 악보를 다 찢어 불 속에 던져 넣습니다. 영화의 어느쯤엔가—아마도 마지막 장면이었던지?—자기가 모차르트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독살했노라고 고백을 하고는 (이것은 근거가 없는 낭설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간병인의 손에 이끌려 정신병동으로 돌아가면서 외친 살리에리의 절규가 너무도 애절하여 제 가슴을 떠나질 않습니다. “Mediocre! Mediocre!”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때, 구원의 감격에 겨워 저는 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아시다시피 딱히 이렇다 하게 잘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 1등을 하질 못했습니다. 예전엔 그 때문에 속이 상했던 적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제 마음을 다 하고 성품을 다 하고 힘을 다 하여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그 기도를 드렸던 날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저는 1등은커녕 탈락은 면하잔 절박한 심정으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뒤좇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선 제게 재능을 안 주시는 대신에 제게 체념과 아량을 더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예전만큼 저의 재능없음을 괴로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만큼이라도 할 줄 아는 것을 감사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재능을 그리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그들의 재능을 알아 보고 그 재능에 경탄하며 찬사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 눈엔, 모두가 다 천재들로만 비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고맙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이 세상을 저는 좀 더 편하고 즐겁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Genius is one per cent inspiration and ninety-nine per cent perspiration. Accordingly, a 'genius' is often merely a talented person who has done all of his or her homework.”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만들어진다. 즉 천재란 주어진 숙제를 다 한 재능있는 사람일 뿐이다. 발명왕 에디슨의 유명한 말입니다. 그의 이 말이 맞다는 것은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오랜 피눈물나는 훈련과 연습과 절제와 희생이 그들의 재능을 뒷받침하고 있는지를. 그래서 그들이 고맙고 그들이 존경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지만 재능이 없다는 핑계로 혹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흘리지 않은 피땀과 피눈물을 그들이 대신 흘리는 동안 나는 편하게 신을 원망하며 지냈을 뿐임에도, 그들이 그렇게 이룬 결실을 내게도 나누어 주어 나로 함께 기뻐하고 감격하게 해 주니까요.
얼마 전부턴, 하나님께서 제게 다양한 관심만 주시고 특출한 재능은 주시지 않은 것이 제게 베푸신 은혜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를 잘 하는 데에만도 그렇게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따르는데, 그 많은 관심사를 다 잘 하려면 얼마나—아니 그게 가능하기나 하겠습니까? 곰곰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선 제게 그 수고와 고통을 면해 주시고, 그것들의 진가를 즐기는 데에 꾝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관심과 재능을 주셨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감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13년 4월 15일
재능보다 더 귀한 아량의 은사가 너무도 귀하고 부럽습니다.
저도 그런 은사를 주십사 아부지께 기도해야겠습니다. ^^